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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 소셜 네트워크, 프라이버시, 고독사. 인터넷의 등장 이후 전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스페인 왕립 학술원 행사에 초대되어 한 마디 할 때 에코의 사진을 찍어 겉모습만 핸드폰으로 전송하기 바빴다는 일화를 이야기했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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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나중에 유튜브에 올릴 생각인지 에코의 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쓰러진 남자를 도와주는 사람 없이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 후 SNS에 올리는 현상이 에코가 이야기한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을까?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 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남의눈을 의식한 행동이다.(중략)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 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 움베르토 에코

인터넷 기반으로 소셜미디어가 기존 신문과 방송을 대신할 거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신문과 방송의 힘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일반인이 만들어 올리는 내용을 점점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말하듯 인터넷의 정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처럼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다. 정보의 과잉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을 찾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디지털 세계가 다 죽어 가는 종이를 재발견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수지 타산일까? 정치적 고려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신문사를 지키려는 바람일까? 이런 경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나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만 흥미로운 건 지난 예언들이 뒤집히고 있는 걸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마오쩌둥이 틀렸을지 모른다. 종이호랑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 움베르토 에코
     
1부 늙은이와 젊은이, 2부 인터넷 세상, 3부 음모와 대중 매체, 4부 인종주의의 여러 형태, 5부 철학과 종교 사이, 6부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하여, 7부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로 총 7부로 구성된 이번 책에서 음모와 대중 매체 부분은 또 다른 관점을 선물로 준다. 특히 우연의 일치를 믿지 말라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기호학자답게 911 테러와 관련된 우연의 일치의 억지스러움을 소상하게 일러주기도 한다. 뉴스나 기사를 볼 때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과 관심분야라면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라는 쓴소리로 들린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내용은 대충 듣고 넘어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쓰고 읽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에코는 <유동 사회>라는 말로 이 사회를 진단한다. 유동 사회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정체성 위기와 가치의 혼란에 빠져 방향타가 되어 줄 기준점을 상실한 사회다. 과거의 인간 사회에는 어쨌든 우리가 믿고 기댈 중심이 있었다. 신, 인간성, 진보, 사랑, 자아, 이성, 자유 같은 이념이 우리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그와 함께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통이 와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젠 공동체를 묶어 주던 중심이 무너지면서 의지할 곳을 잃었다.

신은 죽고, 인간성에 대한 확신은 사라지고, 자아는 파편화되고, 비판적 이성 대신 도구적 이성이 판치고, 삶의 의미는 형해화하고, 공동체의 삶은 무너지고, 각자의 이익만 목청껏 외치는 이기적인 아우성만 남았다. 대신 돈이 나머지 모든 가치를 몰아내고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다 더해, 이제는 인공지능에 의한 파괴적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니,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로 가고 싶을까? - 박종대(옮긴이의 말 중)

대학원 재학 중 '소설과 영화'라는 수업에서 <장미의 이름>이란 작품으로 움베르토 에코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193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1980년에 발표한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은 전 세계에서 3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박학다식하다는 표현은 움베르토 에코 선생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수식어이다. 그는 201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자택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1년 1월에 번역 출간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움베르토 에코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yoodluffy/137
브런치에 중복 게제합니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은이), 박종대 (옮긴이), 열린책들(2021)


태그:#미친세상을이해하는척하는방법, #움베르토에코, #마지막선물, #장미의이름, #박종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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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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