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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 단재 신채호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탱크를 앞세워 남한을 침공하면서 3년간의 한국전쟁은 발발했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흔은 많은 곳에서 아픔과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천만 관객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흥남철수 작전에서 피난민을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이미 포화 상태였던 부산, 경남을 지나 거제도에 닿는다.

이후 거제도에는 17만 포로와 10만 피난민들이 들어왔다. 10만 지역민들은 자신의 삶터를 양보했다. 지금 거제도 인구가 약 20만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상황과 인프라를 고려할 때, 아주 어마어마한 인원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이념은 수용소 안에서도 작은 전쟁으로 번졌다. 죽고 죽이는 사건이 빈번했다. 수용소가 철거되면서 발굴된 시신이 1200여 구라고 하니, 막사 안에 가득 찬 공포가 어땠을까 상상하면 몸이 떨린다. 거제도는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조성했다.

1999년에 개관해 올해 20년 차가 되는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를 테마로 한 다양한 관람물들로 꾸며져 있다. 전쟁으로 시작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유적공원의 규모는 6만4224제곱미터(약 1만 9000평)로 걸어서 돌아보는데 약 한 시간이 족히 걸릴 정도로 아주 크다.

지난 3월 10일, 최근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대중과의 교류를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다녀왔다. 

세대를 거듭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끊어진 대동강철교를 설명하고 있는 유순도 해설사. 방문시 해설사와 동행하면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다.
 끊어진 대동강철교를 설명하고 있는 유순도 해설사. 방문시 해설사와 동행하면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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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아버지께서는 독립과 전쟁의 역사를 자주 이야기해주셨다. 그때 그 이야기가 나에게는 마치 만화영화처럼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계속해달라고 채근하며 조르기도 했었다. 그때 들은 역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일차원적인 서술이 아닌 입체적인 이야기로 마음속에 새겨져 아직도 내게 강하게 남아 있다.

이처럼 역사는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중 가장 훌륭한 방법은 부모가 자식에게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되는 역사는 마지막에 결국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무엇을 남겼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이어지는 의식의 길을 걸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오래된 미래'라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적공원은 부모와 자식들에게 놀이공간이자 배움의 장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인터랙션'이라는 참여형 체험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매표소 앞에 안내되어 있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실행하자 유적공원을 다니면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남침하는 탱크 모형을 시작으로 잔존 유적지까지 총 24개의 관광코스를 따라 주어진 문제를 풀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이 게임은 최근 유행했던 '포켓몬 고' 등과 흡사해 아이들에게 아주 흥미로울 것 같았다.

실제로 유적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게임과 다양한 이벤트로 꾸며진 체험활동 신청이 매번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유적공원은 단순히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저 그런 전시물로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오늘'이었다.

날이 좋은 어느 주말에 아이와 함께 이곳을 천천히 걸으며 게임을 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각 테마에 얽힌 전쟁 역사를 설명해주는 상상을 해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주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테마파크로 변모
 
'거제POWGO'라는 게임앱을 실행하는 모습. 전시관에 들러 문제를 풀고 아이템을 확보하고 있다.
 "거제POWGO"라는 게임앱을 실행하는 모습. 전시관에 들러 문제를 풀고 아이템을 확보하고 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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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수용소 생활을 주제로 한 관람코스를 지나 평화의 터널이라고 부르는 POW전시관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참전국들에 대한 전시를 한다고 한다. 당시 방문했을 때는 22개 참전국 중에서 네덜란드군에 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들이 마련된 공원이 나왔다. 아이와 함께 전시를 보고 마지막은 가볍게 놀 수 있도록 마련된 것 같았다.

놀이공원 끝에 자리잡은 '평화미래전시관'에는 '거제도'라는 영화가 매 정시에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하게 소재로 활용된 '돗드준장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35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이었지만 흥미롭게 전개되는 서사와 익숙한 배우들의 열연에 좋은 점수를 줄만한 영화였다. 

유적공원을 모두 둘러 본 다음 전시관 맞은편에 있는 모노레일 탑승구에 도착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높이 솟은 해송들 사이로 급한 경사를 올라가며 내리쬐는 햇살을 몸으로 받았다. 약 20여 분 올라갔더니 수용소의 통신시설 유적과 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에 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역사는 변화한다.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재해석되며 새로운 교훈을 주거나 영감이 되기도 한다. 이 유적공원 또한 변하고 있었다. 견학코스로 존재 가치를 찾는 지루한 기념관이 아니라 참여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흥미는 관심을 부르고 관심은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한다. 가볍게 놀러 왔다가 아픈 역사를 배우고 또,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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