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6 18:48최종 업데이트 21.03.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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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대통령은 이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는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혁파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라면서 "권력 적폐 청산을 시작으로 갑질 근절과 불공정 관행 개선, 채용 비리 등 생활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전날인 15일에도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가) 그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몰두하고, 드러나는 현상에 대응해왔을 뿐"이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을 날로 심화시키고, 우리 사회 불공정의 뿌리가 되어온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일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임 후 줄곧 집값 잡기가 부동산 정책의 전부인 듯 이야기해 온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처음으로 부동산 불로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최대 질곡임을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음에도,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50년의 농지개혁으로 토지소유가 매우 평등한 상태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이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는 사이에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해 대수술이 필요한 상태에 도달했음에도, 문 대통령은 그런 인식을 갖지 않은 듯 행동했다.

정권 초기에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를 내세웠지만 정작 대통령은 그 세 가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부동산 불로소득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동산 투기란 거대한 괴물과 같은 존재인데도 그것을 제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내내 단기 시장 조절 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적당히 관리하면서 거기에 약간의 주거복지 정책을 추가하는 정도로 부동산 정책을 펼쳐왔으니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2.4 대책을 발표해 대대적인 공급 확대 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했으나, 이는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존재 증명용'으로 내놓은 '헛다리 정책'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엉뚱한 방향

임기 말이라 해도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정확해지고 있으니 반가워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전체 발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아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적폐', 즉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청산할 수 있는 근본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그 방안이 무엇인지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 제도 개혁을 강조하면서 내놓은 것이라곤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자는 내용뿐이다. 대통령은 이번 LH 직원들의 투기가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래와 불법 투기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온전한 인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 것'이 있으면, 주변의 벌들이 몰려드는 법이다. 벌이 몰려오는 것을 막으려면 단 것을 치우면 된다. 이를 그냥 두고 몰려오는 벌을 쫓으려고만 한다면 벌을 막지도 못하고 자칫 벌에 쏘이기 쉽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이를 등한히 한 채 공직자 단속에만 골몰한다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단 것을 치우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해서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주택공급에서 공공의 역할을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에 집중하는 것이다. 토지보유세 강화에 따르는 조세저항이 두려우면 기본소득과 연계하면 되고, LH 자금 사정으로 미루어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만 공급하기가 어렵다면 LH를 해체하는 대신 토지주택청을 설립해 일을 맡기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직자의 불법 투기를 비난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문 정부의 책임도 크다.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발생한 집값 폭등 현상을 공급확대로 해결하려는 엉뚱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정책을 추진한 것도 문재인 정부요, 2.4 대책으로 서울 곳곳에서 급진적인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하도록 가속 페달을 밟은 것도 문재인 정부다. 필자는 최근 발간된 책 <다시 촛불이 묻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경제개혁>(동녘)에 실린 글 '부동산공화국 해체를 위한 정책 전략'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2.4 대책의 내용을 살피면, 사업 지역 내 부동산 소유주의 이익은 철저하게 보호되고, 사업을 시행할 LH와 SH에는 엄청난 일거리가 주어지며, 건설업체도 상당 기간 일감 걱정을 덜게 되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사업을 통해 공공이 확보할 개발이익은 공유된다고 밝혔지만, 그 이익의 약 75%는 부동산 소유주에게 직간접의 혜택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국토교통부가 무주택 서민들의 눈앞에서 부동산 소유주와 공기업 그리고 건설업체를 위한 '개발의 향연'을 펼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안겨주면 부패 발생은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야말로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자고 역설하면서도, 2.4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저기 단 것을 계속 깔아놓으면서, 달려들면 혼내겠다고 벌들에게 엄포를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율배반의 전형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을 넘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LH서울지역본부에서 진보당 송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당원들이 몰수와 처벌을 촉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LH서울지역본부 현관 유리문에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도둑놈 소굴' 등 항의글이 담긴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다. ⓒ 권우성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개발정책을 틈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투기를 감행한 자들이 어디 LH 직원뿐이겠는가? 전국의 개발지역을 모두 조사한다면, 국민이 경악할만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그리고 우리 사회 유력자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짐작한다. 국민의힘에서 전수 조사에 반대하면서 자체 조사를 주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역설한 "이해충돌방지법의 신속한 제정"은 즉각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공직자와 부동산의 연결 고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부동산백지신탁제와 부동산소유상한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고위공직자는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을 자진 매각하거나 지정된 수탁기관에 백지 신탁해야 하며, 계속 보유할 경우 보유 부동산 중 일정 가액 이상에 부과되는 초과 소유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부동산백지신탁제와 부동산소유상한제를 시행할 경우, 그들과 부동산의 연결고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인사청문회 때마다 고위공직자가 곤욕을 치르는 볼썽사나운 일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지나치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고위공직자들에게 자진 매각, 백지 신탁, 계속 보유라는 선택지를 부여하므로 그들의 자유와 권리가 크게 제약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희생하는 것이라곤 단 하나, 정책을 활용해 불로소득을 챙길 기회뿐이다.

네가지를 기억하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부동산 적폐 청산의 요체가 될 수 있으니 무척 중요하다.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하듯이, 정책의 순서도 중요하다. 

첫째, 4년 내내 미뤄온 부동산 보유세 강화의 장기목표와 로드맵 그리고 조세저항 해소방안을 마련해서 공표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를 회피하고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단기 시장 안정 정책으로도, 장기 근본 정책으로도 적절치 않은 2.4 대책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이명박의 개발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 온 지난한 노력을 기억한다면, 감히 이런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  

셋째, 국회에서 이해충돌방지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LH 5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내용을 갖춘 것인지, 만일 그렇다면 국회가 법안을 정말 통과시킬 것인지 국민이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넷째,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백지신탁제와 부동산소유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두 제도는 고위공직자와 부동산의 연결고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고위공직 후보자 그리고 국민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다. "부정한 투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근본적 제도개혁을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두 제도를 외면할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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