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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연분홍 등불들을 환하게 켜 둔 것 같은, 창원시 청량산 진달래.
 마치 연분홍 등불들을 환하게 켜 둔 것 같은, 창원시 청량산 진달래.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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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봄이 왔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봄은 살랑살랑 우리들 곁으로 찾아왔다. 연분홍 진달래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되면 더욱 예쁜 청량산(323m,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여기저기 꽃망울을 톡톡 터트리는 산길에서 봄을 흠뻑 느끼고 싶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40분께 진달래 보러 집을 나섰다. 청량산은 내게 상큼한 첫사랑 같은 산이다. 산을 찾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량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게 행운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임도로 오르는 길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들을 보자마자 벌써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연분홍으로 곱게 물들인 옷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연분홍 물감으로 점점이 꽃무늬를 찍어 놓은 듯한 가녀린 진달래들을 바라보며 임도에 이르렀다.

봄이 내 마음에 꽃침을 놓았다 
 
화사하게 덧칠하는 진달래 꽃길에서 내 마음도 연분홍 꽃물 들고.
 화사하게 덧칠하는 진달래 꽃길에서 내 마음도 연분홍 꽃물 들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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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팍팍한 내 마음에 연분홍 꽃침을 놓았다.
 봄이 팍팍한 내 마음에 연분홍 꽃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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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봉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 부스러기 내려앉은 눈부신 꽃의 자태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겨우내 메마르고 삭막했던 곳을 화사하게 덧칠하고 있는 진달래 꽃길을 걸으니 내 얼굴도, 마음도 점점 연분홍 색깔로 꽃물이 드는 것 같았다. 봄이 팍팍한 내 마음에 연분홍 꽃침을 놓았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

- 함민복의 '봄꽃' 중에서
 
거친 바위를 디디는 재미도 간간이 있던 첫 봉우리에서 내려와 두 번째 봉우리로 천천히 올라갔다. 여기서 청량산 정상까지 거리는 2.3km. 연분홍 물감을 풀어 키 큰 나무들 사이사이에 예쁘게 색칠해 놓은 듯한,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연분홍 등불들을 환하게 켜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봄을 밝히는 꽃등처럼 군데군데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에 내 마음마저 환해졌다. 게다가 폭신폭신한 흙길이 계속 이어져서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연분홍으로 물들인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연분홍으로 물들인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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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레 뻗은 마창대교가 어느새 보이고
 시원스레 뻗은 마창대교가 어느새 보이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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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돝섬을 바라다보며 내 젊은 날의 풋풋한 추억에 잠기곤 했던 긴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한때는 청량산을 찾을 때마다 여기에 앉아 마음의 배를 타고 그 섬으로 떠나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바다 쪽 나무들 키가 훌쩍 커져 바다가 가려지면서 더 이상 돝섬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웠다.

이곳서 청량산 정상까지는 1.8km 거리다. 살바람이 불어와 가녀린 진달래 꽃잎들이 팔랑팔랑 흔들렸다. 시원스레 뻗은 마창대교가 어느새 보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이따금 마창대교 건너에 있는 카페로 가서 이야기 나누던 옛 동료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전 일터에 들어온 유기견을 돌본 것이 인연이 되어 가까워진 사이로 고마운 사람이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발길을 붙잡았다. 노란색은 화려해서 학창 시절에 참 좋아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노란 색깔을 보면 왠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노란집>이 연상이 된다. 화려한 노란색에서도 깊은 슬픔이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고흐의 그림에서 보았다.

마음이 쉬어 가는 자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청량산 정상에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청량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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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10분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좋다. 정말이지, 마음이 쉬어 가는 자리다. 작은 새가 이 나무, 저 나무로 경쾌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올라왔던 길로 다시 하산을 했다. 꽃들과 눈을 맞추며 걷다 보면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산이다. 꽃 멀미가 날 만큼 진달래에 취한 하루였다. 연분홍 꽃물 든 내 마음에도 화사한 봄이 왔다.

태그:#연분홍진달래, #창원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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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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