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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모로 요새의 노을
 
모로 요새에서 바라본 아바나의 노을
 모로 요새에서 바라본 아바나의 노을
ⓒ 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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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 다시 일행들과 모여 아바나의 노을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향한 곳은 올드 아바나 건너편에 위치한 모로 요새. 스페인이 아바나항을 지키기 위해 1589년부터 40년 동안 지었던 곳이라고 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 배를 타고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단체 관광객의 버스는 바다 밑 터널을 지나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바나의 석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더니, 모로 요새 주변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관람료를 내고 요새 안으로 들어가니 적막이 주위를 감쌌고 우리는 조용히 아바나의 노을을 즐길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말레콘을 따라 늘어선 오래된 건물 사이로 해가 떨어지자 푸르스름한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씩 밝혀지는 올드 아바나의 야경. 낮에 보았던 관광지의 분주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오래된 도시의 황량함과 낭만이 서려 있었다.
 
모로 요새의 해질녘
 모로 요새의 해질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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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 모두 오래된 기적을 바라보며 각자의 상념에 빠져 있는데 가이드가 문뜩 이럴 때 어울린다며 스마트폰으로 쿠바의 음악을 재생했다. <Chan Chan>, <Guantanamera> 등 쿠바 오기 전 봤던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들었던, 오늘 하루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계속 들었던 그 음악들이었다.

뜻은 잘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멜로디와 가사. 20대에 여행을 다닐 때는 역사적 공간이나 문화재 등 그 모든 것을 눈에 담느라 바빴지만, 40대가 되자 보는 것 말고도 맛보고 듣는 것에도 품을 내게 된다. 사람들의 삶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쿠바 음악은 신나고 흥겨웠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이 기본에 깔려있었고 스페인의 라틴 유럽풍 선율이 얹어져 있었다. 여기에다 쿠바가 20세기 초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였던 탓에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미국 재즈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덕분에 쿠바 음악은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행 내내 길거리나 식당,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와 같은 짧은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에 쿠바인들이 가무를 좋아하는 듯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뜨거운 열대에서 지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런 흥이 필수일 것이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고 우리는 아바나의 야경을 뒤로 한 채 모로 요새를 나왔다. 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이라는 생각이 드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인 것을.

쿠바 음식의 비밀
 
쿠바 아바나의 야경
 쿠바 아바나의 야경
ⓒ 박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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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요새를 나와 저녁 식당으로 이동했다. 바다 건너 아바나의 야경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얼핏 봐도 점심을 먹었던 식당보다 훨씬 비싼 듯했다. 이 역시 단체여행이니까 가능한 호사였다. 쿠바에서의 첫 만찬. 기대가 됐다. 점심 식사도 맛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첫 저녁 식사인데 쿠바 음식의 정수가 나오겠지.

하지만 기대는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었다. 아침 호텔식을 처음 보고 나서 느낀 배신감이 또 밀려왔다. 애피타이저에 샐러드, 수프, 메인 등 쿠바의 요리가 코스로 나왔는데, 전반적으로 평이했다. 식재료가 풍부한 적도 지방에서 음식이 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식당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여행 내내 접했던 쿠바 음식들은 대부분 고만고만했다. 기본 메뉴도 비슷해서 대개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구이 중 선택이었다. 물론 랍스터 등 특별한 음식을 먹은 곳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특식일 뿐이었고, 쿠바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다. 
 
쿠바의 흔한 생선음식
 쿠바의 흔한 생선음식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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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쿠바 여행 책자들은 미국의 경제봉쇄를 그 이유로 들고 있었다. 원래는 쿠바 역시 모든 물자가 풍부한 열대 지역인 만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문화가 있었는데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음식들이 단조로워지고 맛이 없어졌다고 했다. 농작물의 대부분이 사탕수수이다 보니 식재료를 수입해야 했는데 그 길이 막혔기 때문이라나.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미국의 경제봉쇄로 환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경제봉쇄를 하게 되면 그 사회의 먹거리 문화도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 아마도 북한 역시 경제봉쇄 이후 많은 문화가 바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만은 손님들 앞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추는 악단을 보면서 내려놓아야만 했다. 어쩌면 쿠바 음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만한 것은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그 부족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즐기고 감사할 줄 아는 쿠바 사람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불만은 그들의 문화를 모른 채 맛만 탐닉하려고 하는 관광객의 오만한 감정일지도.

식사를 모두 끝낸 뒤 우리 일행은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수가 된 나부터 포함해서 여행에 참가한 모든 이가 자기 나름대로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곳 먼 쿠바까지 왔는지 등등. 모두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삶들이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거기에다 곁들어지는 쿠바산 럼주 혹은 모히또.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고백 아닌 고백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아바나의 밤거리

저녁을 먹은 뒤 도착한 숙소. 그러나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아바나의 밤이 궁금했던 터라 가이드를 따라 거리로 나섰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바나의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펍 앞에선 사람들이 시가와 함께 모히토와 다이끼리를 마시면서, 춤을 추면서 아바나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거리의 악사들
 거리의 악사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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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도 그 중 한 무리가 되어 자리를 폈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모히토는 달달했고, 시가의 독한 연기 냄새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아니, 오히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들이 그 궁금함에 시가를 나눠서 피우기까지 했다. 어쨌든 체 게바라가 사랑하고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도 없어서 못 피웠다는 쿠바산 시가 아니던가. 그래도 본토에서 한 모금 정도는 빨아봐야지.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밴드 한 팀이 옆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팁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삶을 영위했고, 우리는 그렇게 이국의 밤을 즐길 수 있었다. 음악 덕분에 더욱 무르익는 술자리. 그것은 우리가 끈끈해지는 과정이었다.

자, 내일은 드디어 혁명 광장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는 날이다!

태그:#쿠바,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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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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