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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저녁을 치르고, 아이들이 완전히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내 시간이 생긴다. 그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소란스럽던 저녁은 온데간데 없고 고요한 정적만이 맴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그때서야 나의 반성은 시작된다. 왜 좀 더 부드럽게 말해 주지 못했을까, 화난 표정이 아니라 온화한 표정을 더 많이 지어줄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너희의 행동도 바뀌었을까...

그렇게 반성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에는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참으려고 애쓰고 덜 화 내려고 노력한다. (가끔 나의 참았던 응어리들이 애꿎은 남편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가기도 한다. 여보 미안.)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전에는 사실 등원 준비로 한가로이 화내고 있을 여유도 없다. 바쁜 아침을 무사히 치르고 아이들이 모두 등원하면 나와 남편에게 한동안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길어도 짧고, 짧으면 더 짧은 그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어느덧 그들이 돌아올 시간.

자, 이제 다시 육아 출근할 시간이야. 어젯밤, 반성 많이 했지? 오늘은 애들한테 화 많이 내지 말고 사이 좋게 평화롭게 잘해보자. 아자 아자! 주문과 다짐을 반복하며 아이들을 환하게 맞이하지만,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질수록 내 표정도 점점 어두워지고 결국에는 우르릉 쾅쾅 천둥 같은 목소리가 내 속에서 터져 나온다. 아... 오늘도 틀렸구나.

TV나 SNS에 나오는 우아한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 거야? 그런 육아가 가능하기는 한 거야? 우아한 엄마는커녕 우악스러운 내 모습을 자각할 때마다 그걸 바라볼 아이 못지 않게 나 자신조차도 힘들고 괴로웠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닌데. 나도 온화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희를 대하고 싶다구.

얼마 전 딸이랑 같이 모 브랜드 청소기 홈쇼핑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 방송에서 청소기 광고 영상이 나왔는데 딸이 유심히 보더니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영상 속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아이가 간식을 먹다가 바닥과 소파에 다 흘리고 뛰면서 장난치다가 화분이 넘어져 흙이 쏟아진다. 아이는 실수를 한 후 엄마의 눈치를 보지만, 그 상황에서 엄마는 '요 녀석~' 정도의 눈빛만 살짝 보내고 온화하게 웃으며 어질러진 부분을 청소한다. 그제서야 아이도 다시 환하게 웃는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그 광고 영상을 보며 딸은 "엄마도 저렇게 해줘~" 라고 한다. 네 살 아이에게도 영상 속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나 보다. "알았어. 엄마도 저렇게 되려고 노력할게"라고 말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하면 될 것을 "예솔이가 저 청소기 사주면 엄마도 저렇게 할게~" 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애한테 답변이랍시고 해버렸다. 참 내가 생각해도 못났다.
 
백조 처럼 육아하기
 백조 처럼 육아하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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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엄마가 로망이었던 소녀는 육아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점점 우악하게 변해갔다. 우아한 엄마의 꿈은 비록 현실적으로 좌절되었지만 오늘도 나는 고군분투 중이다. 한창 말 안 듣는 다섯 살, 세 살짜리를 혼자 보다 보면 큰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 위에서 우아하게만 보이는 백조도 알고 보면 수면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 그 발장구는 저마다 다른 모습일 테지만, 다들 그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아버지가 나를 볼 때마다 애들을 잘 키운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신다. 힘내라고 해주시는 격려의 말씀인지, 정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건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특별한 문제 없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걸 보면 나의 육아도 내가 스스로 점수 매기는 것만큼 아주 별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만 가끔 내가 참지 못하고 비치는 우악스러움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내 아이들의 정서로 남지 않게 조심하고 노력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나무라는 정도가 아닌 나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나오는 우악함은 분명히 나쁘다. 우아한 육아는 실패했지만(이건 추후 성공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우악한 육아가 자리잡아서도 안 된다. 치열한 육아 전쟁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갖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음의 평화가 생기면 우아한 느낌 정도는 낼 수 있으려나.

태그:#육아,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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