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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 없이 책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 없이 책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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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넷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10시부터 4시까지 아이 한 명도 없이 지내게 되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정말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항시 대기해야 했고 아이가 많다 보니 횟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했다. 어쨌든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6시간이 확보되었다. 무엇을 할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 없이 책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학부모 독서동아리에 가입했다. 지역 도서관 주부 독서회에도 들어갔다. 교회에서도 엄마들끼리 책모임을 만들었다. 원래 하던 동네 모임까지 합치면 총 4개이며 온라인 독서모임까지 6개였다. 

모임이 있는 날은 그 전날부터 긴장했다. 책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밤을 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모임은 갈 수가 없다. 전날 밤에 아이들 컨디션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기침이라도 하면 내일 일찍 병원에 갔다가 모임에 갈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열이 나면 참여는 포기해야 했다. 한두 번 빼고는 거의 참석했다. 독감에 걸린 시기 말고는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였고 별 탈 없이 다녔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에 첫째는 남편과 같이 등교했다. 나는 둘째, 셋째, 넷째를 깨워 씻기고 옷을 입혀서 밥을 먹인 뒤 어린이집 차에 무사히 태우기까지 마치 전쟁통 같았다. 모임 간다고 집 정리를 끝내지 않고 나서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청소와 설거지까지 서둘러 끝내야 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일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이들은 나의 속도에 맞출 수는 없었다. 최대한 재촉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면서 모임에도 늦지 않게 출발하기 위해 쉴새없이 움직였다.  

내가 책모임에 최선을 다했던 이유 

헐레벌떡 도착한 책모임은 꿀 같은 시간이었다. 맛있는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며 아이들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 할 수 있다. 다른 사람 이야기도 집중해서 들으며 바로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을 바로 던질 수 있다. 모임 이후에 먹는 점심은 모임의 꽃 중의 꽃이다. 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지만 사실 그날 점심에 뭘 먹을지 제일 궁금하고 기대됐다.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맛있는 메뉴를 근사한 곳에서 먹었다. 다 하지 못한 책수다를 반찬 삼아. 

웬만하면 모임에 빠지거나 지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언제든 아이들이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피곤하거나 쉬고 싶을 때,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는 때 빠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항상 다음 모임 참여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참석을 하도록 자신을 다독였다. 또한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모임이지만 이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며 자신과의 다짐이었다. 사정이 생기면 가지 못해도 이해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모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책모임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엄마라는 똑같은 입장에서 동일한 책을 읽었어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나와 비슷한 나눔에 함께 공감하고 감동을 받았고 전혀 다른 반응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불편한 적도 있었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참석 여부까지 고민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한 책을 두고 나는 극찬했지만, 한 엄마는 저자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쾌해했다. 논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내내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모임마다 이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즐거웠던 것만큼 힘들기도 했다. 피하거나 도망칠 궁리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책모임을 왜 가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결국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아이들 챙겨 등교 등원 시키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애를 써서 만났는데 똑같은 내용만 듣는다면 오히려 그 모임이 시간낭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제도 책을 통해 풀게 되었다. 

혼자 책을 읽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들 

정재승의 <열두발자국>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 중에 이런 게 있다. 그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더 나은 삶과 미래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겸손한 태도와 다른 의견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를 강조하면서 '결국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p.53) 주장한다. 과학적인 설명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뇌과학자인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순간은 감정적으로 불쾌할 수 있지만 '내가 판단하는 이 생각은 정말 맞을까', '나는 어떤 근거로 이런 생각을 확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좋은 계기라고 여기기로 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장착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 이 다짐을 행동으로 이어지게 했던 작은 사건이 있었다. 

모임을 하던 중에 엄마들끼리 '독감 주사를 맞느냐 마느냐'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독감 백신 주사에 대한 불신이 있고 예방접종을 했어도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것을 보고 아이들도 맞추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어떤 엄마는 '아이들도 많은데 꼭 맞히라'고 강권했다.

처음엔 선을 넘은 듯한 그 발언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와서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3시간 동안 독감에 관해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의 판단을 지지하는 내용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순간 '나는 왜 독감주사를 불신하고 맞히지 말자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민 끝에 아이들 백신주사를 맞히고 나도 맞았다. 집단 면역을 위해 결정한 일이었다. 일주일 사이에 내 생각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줄을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는 왜 독감주사를 그토록 당당하게 신뢰하지 않았는지 웃음이 났다.

그 엄마 강권대로 주사를 맞혔다는 결과보다 다른 의견을 통해 내 생각의 근거를 다시 따져보면서 그 전과 반대인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후 나눔 가운데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데 많이 너그러워졌다. 

넷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종일 육아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동안 육아 기간을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책모임 중독자로 살았다. 1년 동안 꾸준하게 참석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조금 넓혀진 것 같다. 혼자 책을 읽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배움의 기회였다. 소소한 실천과 행동으로 작은 변화들도 경험했다. 다른 중독과 달리 책모임 중독은 한번 쯤 빠져봐도 좋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다. 

태그:#책모임, #엄마책모임, #정재승, #열두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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