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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둔덕에는 청마 유치환 생가가 있다. 그의 고향이 통영이냐 거제냐를 두고 아직도 설왕설래지만 그 논쟁을 떠나 그의 시 '거제도 둔덕골'에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라며 묘사했던 곳은 '생가'라는 명패를 달고 복원되어 있다.

둔덕마을은 봄이 오면 온통 유채꽃으로 뒤덮여 꽃구경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 덕분인지 둔덕에는 타향살이하던 딸들이 고향집을 개조해 근사한 카페(리묘)로 만든 곳도 있고, 그 옆으로 청년들이 운영하는 버거집(덕둔버거)도 있다. 또 청마생가 입구에는 파인애플을 모티브로 한 카페(파인에이플러스)가 마치 농촌에서 보기 드물어진 아이처럼 신선하게 자리 잡았다.

이처럼 둔덕은 정겨운 이름과 더불어 다양한 모습으로 요즘 이들에게 '핫플'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청마생가가 있는 곳으로 더욱 마음이 끌리는 곳이다.

청마 유치환의 생가와 기념관  
 
<거제도 둔덕골>에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라고 했던 집은 복원되어 있다.
 <거제도 둔덕골>에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라고 했던 집은 복원되어 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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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청마생가에 방문했다. 초가집 툇마루 아래 하이얀 고무신이 바르게 놓인 것이 과거와 현재의 경계처럼 보여 인상적이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눈으로 이곳저곳 훑으니 마당 한 켠에 봄을 맞이하러 막 고개를 든 꽃이 보였다. 흔들리는 꽃처럼 마당에서 뛰어놀던 그와 그의 부모 그리고 형제자매가 한 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청마의 외가는 거제에서 알아주는 갑부였다. 한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점잖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외향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강직한 성격과 후덕한 덕성 그리고 서정적인 시풍은 부모의 성향을 골고루 이어받은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낮은 담벼락 너머 몇 걸음 안 되는 길로 연결된 곳에 청마기념관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섰더니 입구 옆에 청마 동상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그의 시 '행복'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것은/사랑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시는 아주 구슬펐다.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애한을 애써 억누르는 것 같은 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마지막 고백처럼 들렸다. 그는 실제로 유부남이었지만 과부 시조 시인 이영도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청마는 그의 뮤즈에게 수백 통의 편지만을 썼을 뿐 실제로 만남을 갖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보이지 않기에 분명하게 보이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2층 규모의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반적인 기념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시구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가 찍힌 흑백사진은 연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썼던 글이 담긴 낡은 책은 세월만큼이나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채 유리막 뒤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청마기념관 앞에는 동상과 함께 그의 시 <행복>이 적혀있다.
 청마기념관 앞에는 동상과 함께 그의 시 <행복>이 적혀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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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육자였다. 여러 학교에서 선생과 교장직을 지내면서 시를 썼다. 시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청마는 "해결할 수 없는 고뇌와 더불어 겨루는 한마당의 결투"가 시라고 했다. 흔히 문단에서 청마와 함께 청록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조지훈이 이런 그를 두고 '영원한 혁명가'라고 했던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시는 삶을 짖누르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또는 사무치게 그리운 것에 대한 외침일 것이다. 그 몸부림과 외침으로 자기 앞에 놓은 생과 치열하게 다투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 <파도>

교장 선생의 모습을 한 시인의 마음은 이렇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이 사회적 괄시를 무시한 채 숱하게 탐했던 한 여인에 대한 갈구인지, 아니면 그가 추구했던 이상적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생가가 있는 마을 어느 담벼락에 쓰여 있던 이 시를 본 나는 어쩐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이 싣고 오는 향이 무엇인지 알아낼 요량으로 자꾸만 코로 깊게 숨을 들이켰다. 

시와 여행

우리에게도 분명 시적인 순간이 있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책상 앞에서,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하물며 밥을 먹는 그 순간에도 있다. 그것을 끄집어낸 시인들의 글향이 값비싼 향수보다 더 진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 거제도 둔덕마을 청마생가는 작고 볼거리가 많이 없지만, 그의 시를 읽은 이에게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쟁 쟁 쟁/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며 내리는 낙화 - <낙화>'처럼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거제 곳곳은 벚꽃으로 물든다. 이곳 청마생가로 이어지는 둔덕마을길 또한 벚나무 행렬이 이어지기에 '울림하며 내리는 낙화'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하는 건 시적인 순간을 찾아 나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청마 유치환은 친일논쟁부터 다양하게 평가받고 있지만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바위>'는 그의 바람만은 시대를 넘어 이대로 둔덕골에 남아 나 같은 나그네에게 묘한 감정을 주고 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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