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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는 'OO에 산다는 것'을 주제로 2021년 첫 기사 공모를 합니다. 4월 14일까지 기상천외하고 무궁무진한 시민기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편집자말]
12년째 서울시 은평구에 살고 있다. 20대 중반 독립한 이후 2번 이사를 하긴 했지만, 증산역에서 새절역으로, 또 구산역으로 이 근방을 맴돌고 있다. 

과거 고양군 은평면이었다가 1949년 서울시로 편입된 은평구는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20대 시절 내 친구들에겐 별 인기 없는 동네였다. 다들 마포-합정의 일명 '힙하다'는 라인에 살고 있다 보니 만나면 "너도 어서 거기서 나와라"는 요구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나도 '힙한 동네'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 내게 은평구는 최적의 장소였다. 우선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쌌고, 회사가 있던 상암동과는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할 만큼 가까웠다.

나는 당시 '은평구' 신사동에 살고 있었는데, 한 취객이 저녁 시간 상암동에서 택시를 탄 뒤 "신사동으로 가주세요" 했더니 강남구 신사동에 도착해 있더라는 놀림같은 우스갯소리를 듣는다는 것 빼고는 부족할 게 없는 동네였다.

도둑 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
 
 도둑과 함께 내 아파트 분양권이 날아갔다.
 도둑이 들었던 그 집 자리엔 아파트가 곧 들어설 예정이다.
ⓒ envato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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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에서 처음 정착한 집은 '옥탑방같은 2층'이었다. 분명 등기부등록상엔 2층이라고 돼 있었는데, 기존 1층 집이었던 곳에 빨간 벽돌로 2층을 증축한 거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그나마 공간에 비해 전세가 싸 4년을 거기서 살았는데, 문제는 2013년 12월 31일에 터졌다. 마감 근무를 마치고 자정 가까운 시간 집에 돌아와보니 현관문 유리는 깨져있고, 집 안엔 검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집이 비어 있는 사이 도둑이 든 거다.

없어진 건 없었지만, 그날의 충격으로 한동안 밤이면 쉽게 잠들기 어려웠다.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당시 집주인에게 전하자, 수많은 집주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인 "우리가 살 땐 안 그랬는데"가 돌아왔다. 도둑 사건 때문인지 다가오는 만기일에 월세로 돌리거나 나가달라는 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다.

당시 그 지역은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고, 그곳에 오래 살았던 나 역시 일정 자격을 충족해 관련 서류들을 이미 제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별 수 있나, 나는 짐을 꾸렸다. 임대주택 입주권도, 이주비도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떠난 그곳엔 유명 건설사 이름의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힙 플레이스와 먼 은평구가 좋은 이유
 
 불광천의 벚꽃
 불광천의 벚꽃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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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사한 뒤, 모두가 꿈꾸는 아파트와는 더 멀어진 기분이지만 나는 지금도 은평구에 살고 있다. 북한산이 보이고 불광천이 흐르는 이곳의 진가를 살아본 사람은 안다. 자전거 타고 30분 남짓이면 한강에 도착하고, 동네 곳곳엔 옛날 시장들이 남아 있다. 지금이야 유명해졌지만 증산역부터 응암역까지 이어지는 불광천 벚꽃길은 몇 년 전만 해도 동네 주민들만 걷는 한적한 벚꽃 명소였다.

'은평구 살이' 12년차인 내가 요즘 빠져 있는 건 서오릉이다. 쉬는 날이면 운동삼아 그곳에 다녀오곤 한다. 서오릉은 행정구역상 고양시이지만, 구산역에서 차로 5분이면 가닿을 만큼 은평구와 가깝다. 

처음엔 이사한 집이 불광천 자전거길과 멀어져 '한강 대신 여기나 가볼까' 싶어 택한 장소였다. 사실 서오릉이 누구의 무덤인지도 잘 몰랐다. 그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경주를 옮겨온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아니나다를까 '경주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능이 주는 고즈넉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경주와 꼭 닮았다.

서오릉 안에는 소나무길과 서어나무길 산책로가 따로 있어 땀 빼며 걷기에도 딱 좋다. 어린이나 노인, 다자녀 부모 등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혜택도 많아 주변 주민들이 산책 삼아 많이 와서 걷는 모양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선 야외의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 주차장이 꽉 차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오릉에 있는 조선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무덤인 익릉의 모습.
 서오릉에 있는 조선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무덤인 익릉의 모습.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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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말고 행복감 주는 집에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한강뷰 집은 아니지만, 나는 이곳이 좋다. 불광천과 서오릉 등 주변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공간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전세를 옮겨 가며 은평구에 계속 사는 이유다.

이곳도 요즘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운 철도가 놓인다고 해 집값이 들썩들썩 거린다. 나처럼 집 없는 보통 사람들에겐 다음에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얼마나 더 올려줘야 할지 걱정거리가 느는 기분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시끄러운 요즘, 어디에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돈 말고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집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은, 죄다 돈으로 환산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은,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중략)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실제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 <청춘의 돈 공부> 김성진 p.186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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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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