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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든 사이에 표지
▲ 우리가 잠든 사이에 표지 우리가 잠든 사이에 표지
ⓒ 봄볕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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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담은 그림책을 한 권 골라보았습니다. 영국 작가 믹 잭슨이 쓰고, 존 브로들리가 그린 <우리가 잠든 사이에>입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앞, 뒷표지를 쫙 펼쳐보면 별빛 가득한 하늘 위에 떠 있는 침대에 한 소년이 기분 좋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 아래로 마을과 산, 바다가 보이지요. 깊은 밤이지만 마을 곳곳에 불이 켜져 있고 일하는 사람들과 움직이는 차들이 보입니다.

이 거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표지의 소년이 이불 속에서 토끼 인형과 사이 좋게 그림책을 보다가 잠이 든 모습이 보입니다. 손전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니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 모양입니다. 
"아늑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는 건
스르르 눈이 감기는 기분은 정말 좋아."

소년이 침대 속에서 기분 좋은 아늑함을 누리는 순간에도 도시의 거리와 건물 안에서 낮과 다를 바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들과 쉼없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밤새 열려있는 가게들, 대기 중인 소방대원들, 환자를 돌보는 병원과 아기를 재우는 부부의 집안도 보이지요. 생김새도 다르고, 하는 일도, 성별도 다르지만 세상이 어제와 다름없이 굴러가도록 멈추지 깨어 있으면서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을 바깥 들판에 살고 있는 동물들과 자연의 풍경, 그 들판을 촉촉히 적시는 비는 냇물을 이루고 냇물은 강으로 흘러가고 강물은 바다를 찾아갑니다. 바다에는 배들이 떠있고 밤하늘이 그 바다 위에서 고요하게 빛나고 있고요.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 못 드는 순간, 어둠 속에서 혼자인 것 같은 순간, 세계 반대편에서는 태연한 일상이 지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썰매를 타고 헤엄을 치는 것처럼요. 

우리의 마을은, 세계다

얼마 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인종 혐오로 인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기네스 펠트로와 같은 해외 유명 배우 뿐만 아니라 국내외 인사들의 추모 및 #STOP ASIAN HATE(아시안 혐오를 멈춰라)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서구의 국가들에서 아시안 혐오주의가 발생하는 지금, 언제가 돼야 예전과 같은 여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을까, 이미 발생해 버린 특정 인종에 대한 배척과 폐쇄적인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예측이 되지 않네요.

이 그림책은 영국의 글작가와 화가가 만들어낸 작품이지만 매우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고정적인 성역할을 탈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은 마을은 곧 세계의 은유라고 할 수 있지요.

소년의 마을에서부터 출발하여 마을 밖 들판, 하늘, 바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모습까지 시선은 세계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밤에 잠든 사람들과 아침에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의 바통 터치는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처럼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룻밤의 풍경을 통해 우리가 눈을 감고 잠든 시간 동안 세상을 유지시키고 일상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숨은 노고에 대한 감사 뿐만 아니라 나와 외모와 언어, 사는 곳이 달라도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침체된 경기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지만 지난 1년간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유로운 교류와 소통의 세상을 단절시키고 폐쇄적인 혐오의식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낮과 밤이 이어지듯, 세상의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은 결코 서로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공동체적 존재임을 이 그림책은 알려줍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 일상을 시작할 때, 누군가는 비로소 잠자리에 들기도 하지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잠든 사이에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배척과 혐오가 아닌 이해와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믹 잭슨 (지은이), 존 브로들리 (그림), 김지은 (옮긴이), 봄볕(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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