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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보면 돼지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저도라고 부르는 이 섬에는 거가대교의 다리 일부가 내려앉아 있다.

본래는 하얀 왜가리가 섬 꼭대기에 모여 있는 것이 마치 학이 앉은 것 같아 학섬이라고 불렸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뱀을 잡아먹는 돼지의 기운이 서려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그 기운을 받기 위해서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들은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거가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대통령의 휴양지와 해군기지로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곳이었지만, 놓인 다리로 인해 신비로움이 사라져 그 비밀스러운 역할도 어쩌면 퇴색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저도는 잘 다듬어진 둘레길과 함께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궁농항에서 유람선으로 약 20여 분이 걸리는 거리에 저도가 있다. 지난 3월 30일 여객선이 궁농항을 벗어나자 선장은 인사말과 함께 임진왜란부터 시작되는 거제도의 역사를 곁들여 양 옆으로 보이는 풍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배가 거가대교 아래를 지나 저도 가까이 붙자 뭍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던 건물이 선명해졌고, 선장은 저 건물은 대통령 경호원들이 지내는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곧 하선을 할 것이라고 알렸다. 
 
<연리지공원> 애초에 논이었던 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공원으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연리지공원> 애초에 논이었던 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공원으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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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정박하고 선수에 달린 문이 열렸다. 노란 조끼를 입은 안내원들의 손짓에 따라 입구에 서 있던 관광객들이 서서히 움직였다. 선착장 옆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이라고 모래 위에 새겼던 백사장이 나왔고 백사장 뒤에 서있던 돌담 가운데 뚫린 입구에 들어서니 연리지 공원이 나왔다.

공원 가운데는 벚꽃나무 두 그루가 만개해 사람들을 환히 맞이했고, 다듬어진 잔디는 초록빛에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이곳은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해대(대통령 여름 별장)로 지정한 뒤 골프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화해설사는 "원래 논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400년 된 해송과 동백나무의 둘레길  

 
저도 둘레길을 따라 가면 거가대교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저도 둘레길을 따라 가면 거가대교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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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해군 콘도 옆에서 시작되었다. 콘도는 거가대교 건설 당시 시공사가 공사비 절감을 위해서 저도를 가로지르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지은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저도를 책임지고 있는 해군 장군의 숙소와 해군들의 휴식지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 옆으로 놓아진 해안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되었다. 

해송과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크고 높은 사철나무 틈 속에 봄을 알리는 새싹도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20여분을 걷다가 전망대가 나왔고 다 같이 앉아 숨을 고르며 전망을 구경했다.

빨간 동백꽃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고 흔들리는 갈대 옆에 사람들이 들어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 거가대교에 차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제 2, 3 전망대를 지났고, 출발지였던 연리지 공원을 향해 걸으며 주변을 훑어보는 나에게 안내원이 잠시 서라고 불러 세웠다. 

"이 나무가 여기서 제일 오래된 나무입니다"라고 팔을 세 번은 감아야만 다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나무를 가리켰다. 밑동부터 가지까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다가 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보통 좀 크다 싶은 나무는 200~300년 된 나무입니다"라고 돌아서는 나에게 안내원이 말을 덧붙였다. 

새삼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나무와 자연들의 위대함에 놀랐다. 이대로 여기에 우두커니 서서 나 같은 사람을 몇 백, 몇 천이나 더 맞이할 섬 주인의 고매함과 푸근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들 옆을 지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게 느껴졌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우거진 숲 사이에 1920년대에 만들어진 우물과 막사가 보인다. 막사는 얼마 전까지 해군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우거진 숲 사이에 1920년대에 만들어진 우물과 막사가 보인다. 막사는 얼마 전까지 해군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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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에는 침략과 저항의 역사가 있다. 1920년대 일본은 이 섬을 방어진지로 구축하며 탄약고로 사용했다. 당시 살던 주민들은 쫓겨났다. 100년이 된 포진지와 탄약고, 그리고 우물은 침략의 역사를 품고 아직도 건재했다.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에 철조망이 아직도 쳐져 있어 침략과 전쟁이 할퀸 상흔이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독립 후 저도에는 새로운 주민이 정착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작은 섬이지만 어렵사리 논을 개간했고, 이후 노력은 결실을 맺어 풍년이 들면 주변 섬사람들까지 나눠 먹을 만큼 풍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별장이 된 후 그들마저 이곳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더 이상 주민들은 살지 않게 되었고, 황금빛깔 출렁이던 논은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골프장이 되었다. 이제는 공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강제 이주한 이들에게는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일 테다.  

아직 저도는 군사시설이기 때문에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다. 육로는 닫혔고,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야 된다. 유람선에서 내려 1시간 30분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즐기다가 다시 항으로 돌아가는 코스이다. 

막상 다 돌아보니 특별한 섬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 섬은 어쩐지 우리의 아픈 역사와 닮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졌던, 어쩌면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은 역사가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누군가의 사유지에서 공유지로 돌아가는 저도를 보며 권력이 소수로부터 다수에게로 분산되는 또 다른 역사의 필연적 숙명을 보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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