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인생의 실패인가. 영화 <콜레트>는 남편의 굴레를 벗고 근사한 삶을 살아낸 한 여인의 이야기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는 불문학 소설가이며 배우이자 언론인이다. 그녀는 뮤직홀 공연 경험을 그린 <방랑자>를 시작으로 30여 권의 소설과 단편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1948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국장을 치른 두 번째 여성이다. 그만큼 그녀가 프랑스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녀는 말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삶은 근사했어요. 그걸 좀 늦게 깨달았지만." 그녀가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그녀의 인생이 전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영화 <콜레트>는 그녀가 겪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한다. 콜레트에게 결혼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콜레트의 남편 윌리는 파리에서 꽤 알려진 작가다. 하지만 그의 방탕함은 재정파탄으로 이어진다. 이때 콜레트가 썼지만,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학교에서의 클로딘>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클로딘 시리즈는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바람기와 낭비벽, 술과 도박은 또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몰고온다. 그는 콜레트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클로딘 시리즈에 대한 영구적 독점 판권을 팔아버린다. 이것을 안 콜레트는 윌리와의 13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이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만들어가는 거야

콜레트는 윌리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그런데 그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콜레트는 그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에 빠진다.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게,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꿈꾸어왔던 것과 다르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은 꿈도 꾸지 않는다. 대신에 자기의 마음을 다독인다. 그녀의 엄마가 묻는다.

"윌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별건 아니에요. 그냥 모든 게 처음이라서. 결혼 생활에 익숙해져야죠."


결혼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뭘까. 결혼이라는 틀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가는 것일까. 그럼 결혼 생활의 주인공은 누구지? 콜레트는 자신을 결혼 생활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화하는 듯하다.
 
"결혼 생활은 네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어머니의 현명한 조언이다. 결혼 생활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되어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남편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남편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콜레트

남편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콜레트 ⓒ (주)NEW, ㈜팬 엔터테인먼트

 
목줄을 느슨히 맸다고 안 맨 건 아니지

윌리와의 첫 번째 위기를 겪은 후, 콜레트도 파리의 사교계에 적응하며 별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만난 사람이 미시다. 미시는 결혼의 파국을 맞이해 변호사 입회 없이는 남편과 말도 섞지 않는다. 그녀는 머리를 짧게 하고, 여자에게 금지된 바지를 입고 다닌다. 그런 그녀가 콜레트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콜레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오히려 윌리를 두둔한다.
 
"남들은 다 행복한가? 윌리가 좀 까다롭긴 하지만 자유도 많이 줘."

그래도 윌리는 다른 남자들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자기는 그래도 다른 여자들보다 자유롭다고. 미시는 일침을 가한다.

"목줄을 느슨히 맸다고 목줄을 안 맨 건 아니지. 혹시 즐기는 거 아냐?"
 
콜레트는 이 질문도 스리슬쩍 반문으로 넘긴다.
 
"그럼 많이 잘못된 건가?"

막상막하다. 미시의 질문에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직시하지 않는다. 인정할 때 비참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미시는 클로딘 시리즈의 저자가 콜레트라는 것을 알아채고, 진실을 밝히도록 종용한다. 하지만 콜레트는 감히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한다. 다만 앞으로 출판되는 책에 대해서 공동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실어달라고 윌리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거절당한다. 그 후 콜레트는 책을 쓰지 않는다. 연극배우로 활동한다. 
 
 미시와 콜레트

미시와 콜레트 ⓒ (주)NEW, ㈜팬 엔터테인먼트

 
내가 못벗어날 줄 알았겠지

아버지의 장례차 고향에 들른 콜레트에게 엄마는 윌리와 이혼하라고 권한다.

"이혼해, 가브리엘! 당장! 은행계좌도 조사해보고. 그 인간 못 믿어. 술에 도박에...순 인간 말종이야."
"그만해요."
"너한테 걸림돌만 될 뿐이야, 가브리엘! 네 재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지. 이제 네 이름으로 새로운 작품을 써봐."


서로 별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엄마가 이혼을 권하는 데도, 콜레트는 이혼을 감행하지 못한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부담이 얼마나 컸길래 그럴까. 

그러나 때는 오기 마련이다. 그녀 몰래 윌리가 클로딘 시리즈 판권을 팔아버린다. 비로소, 꾹꾹 눌러놓았던 그녀의 분노가 화산처럼 분출한다.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결혼생활의 진실을 또렷하게 마주한다.

"지금 내 자신이 부끄러워. 오직 당신을 기쁘게 해 주려고 노예처럼 추억을 쥐어짜가며 글을 쓰던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었지.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당신의 욕망을 실현할 도구로 만들었어. 내가 못 벗어날 줄 알았겠지. 하지만 틀렸어."

<인형의 집>의 노라와 헬머의 최후를 보는 듯하다. 콜레트는 윌리와 이혼 후 소송을 통해 그에게 빼앗겼던 클로딘 시리즈의 저작권을 되찾아온다.

늘 네 자신을 믿어야해
 
 연극 배우로 활약하는 콜레트

연극 배우로 활약하는 콜레트 ⓒ (주)NEW, ㈜팬 엔터테인먼트

 
이제부터 새로운 출발이다. 남편을 기쁘게 하는 아내의 역할을 벗어버린다. 자기의 이름을 되찾는다. 

"이리 와, 예쁜 강아지! 누구도 네 본연의 모습을 빼앗을 순 없어. 넌 강한 아이야.
언제나 강했지. 늘 네 자신을 믿어야 해."


콜레트의 엄마가 그녀에게 들려준 말이다. 콜레트의 엄마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갇히지 않는다. 딸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살기를 원했다. 본연의 타고난 모습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격려한다. 어머니의 딸을 향한 믿음과 지지, 그리고 연대야말로 콜레트를 근사한 삶으로 이끈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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