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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는 'OO에 산다는 것'을 주제로 2021년 첫 기사 공모를 합니다. 4월 14일까지 기상천외하고 무궁무진한 시민기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편집자말]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 이름은 신광리다. 새로울 신, 빛 광. 하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신광리에는 빛나는 새로움이란 없었다. 그곳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갈 때마다 "여긴 어쩜 그대로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듬성듬성 한 간격으로 위치한 집주인들은 바뀐 적도 없고 바뀔 리도 없다.

2001년, 나는 신광리를 떠났다.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서. 내가 떠나던 날 엄마는 "엄마 근처서 고만고만 살다 시집이나 가지" 하며 눈물을 훔쳤다. 고만고만 한 삶밖에 꿈꿀 수 없는 그 동네를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홀가분하게 떠나왔다.

서울 강남구에서 시작한 첫 독립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을 돌파했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월 서울의 주택 종합 평균 매매가격은 8억975만원으로, 전월(7억9천741만원)보다 1천234만원 오르며 처음 8억원을 넘겼다. 사진은 3월 2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을 돌파했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월 서울의 주택 종합 평균 매매가격은 8억975만원으로, 전월(7억9천741만원)보다 1천234만원 오르며 처음 8억원을 넘겼다. 사진은 3월 2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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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아본 적 없는 나의 첫 독립은 서울시 강남구에서 시작됐다. 이유는 딱 하나. 나의 큰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형제 중 가장 부유한 큰아빠 집에서 나는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강남. 하루에 버스가 7번 오는 신광리에서 살던 여자아이는 강남이라는 동네가 주는 위화감에 잔뜩 쫄았다.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촌스러움을 들킬까 자꾸만 움츠려 걸었다. 구부정하게 걷는 나에게 큰아빠는 "영지야, 어깨를 쫙 펴고 걸어야지 구부정하게 걸으면 안 돼" 하며 슬쩍슬쩍 용돈을 쥐어 주시곤 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큰집을 떠났다. 친구와 25만 원씩 나눠내던 서교동 2층 원룸부터 그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온 신길동 반지하 집, 장마에 물이 반쯤 잠겨 다시 옮겨야 했던 신월동 옥탑까지. 참 많은 시간들을 어깨를 쫙 펴지 못한 채 걸었다.

지방대에 변변한 뒷배경도 없이 꿈 하나만 믿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 나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혼나는 기분으로 20대를 보냈다. 왜 그랬을까? 자신감을 가지기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초라하다고 느낀 탓이겠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할 노릇이었다. 한평생 한 곳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만 봐온 내겐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또 다른 지역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서울 사람이 부러워 아등바등 서울로 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강남, 강남 지역 사람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아파트,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 아파트의 로열층을 동경하더라는 식의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막내 작가 시절에 한 친구가 어느 날 내 귓속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  

"저쪽 팀 막내 있잖아. 강남 OO아파트 산대. 대박이지?"

난 뭐가 대박인지 몰라 "거기가 어딘데?"라고 답했다. 그 친구는 바람 빠진 풍선의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 사는 곳을 세분화해서 평가하는 것은 내게 제법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지역에서 다른 동네란, 그저 앞, 뒤, 옆 동네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는 곳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고 싶은 곳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살 곳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내가 가진 돈에서 맘에 드는 동네를 고르면 되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우와' 하는 곳에 살고 싶었으나 나는 돈이 별로 없었으므로 싸고, 가성비 좋은 동네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흐르듯, 밀리듯, 쫓기듯, 동네에서 동네로 옮겼다. 문득 신광리 사람들은 어떻게 한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누구의 채점도 바라지 않는 삶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신광리. 이 곳 사람들은 터전을 옮긴 적도 옮길 일도 없다.
▲ 내가 살던 고향 "신광리"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신광리. 이 곳 사람들은 터전을 옮긴 적도 옮길 일도 없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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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시골에서 산 세월과 도시에서 산 세월이 거의 맞먹는다. 서울살이란 뿌리내리는 삶이 아닌 환경에 따라 옮겨 다녀야 하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워갔다. 나도 더이상 동네를 그냥 앞, 뒤, 옆동네 쯤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서울 깍쟁이가 되어 갔다. 사는 곳에 대해 열등감을 갖기도 하고, 부러워도 하고, 절충안을 찾기도 했다.  

나는 지금 서울 인근 신도시에서 살고 있다. 재정 상태에서 무리를 했지만 강행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의 절충안쯤 되는 곳이었다. 아파트, 30평형대, 도보로 초등학교가 있을 것, 서울과 근접할 것... 왠지 이 정도는 돼야 움츠린 어깨를 쫙 펴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또 어느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하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어데 사는 데가 뭐가 중요하노? 정 붙이고 살면 다 똑같지."

딱, 우리 노친네다운 말이네 싶다가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한평생을 한 곳에서 묵묵히 살 수 있었던 거겠지 싶다. 엄마에게 사는 곳은 정 붙인 곳이었고, 나에게 사는 곳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또 누군가에게 사는 곳은 우월감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도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흔히 우리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사 갈 집을 고르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어느 동네로 이사 가고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몇 평짜리에 살 수 있나 정도로만 생각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다.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정해진 답도 없다.우리가 써 나가는 것이 곧 답이다. 아무도 채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문해보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문득 나는 누구에게 채점을 바라고 '사는 곳'을 정해 왔는지 생각했다. 이 지역이 아니면 안 되고, 아파트가 아니면 안 되고, 몇 평 이하면 안 되고. 주변의 시선과 편견에 갇힌 채 정작 중요한 걸 놓쳐온 건 아니었을까?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서울이든, 신광리든, 강남이든, 신도시든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그저 열심히, 열심히, 살아간다. 사는 배경을 토대로 사람의 가치를 나누는 우매한 사람들 눈에만 다를 뿐이다. 

나는 어떤 눈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눈은 또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 나는 잠시 자문해 보았다.
 
▲ 생각 날 때 마다 꺼내보는 고향 모습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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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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