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9 18:15최종 업데이트 21.04.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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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이후 가장 위축된 인간 활동은 좁은 의미의 문화, 곧 예체능이다. 굳이 '좁은 의미'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는 인간의 정치, 경제 등 모든 활동이 곧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예술과 스포츠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 활동으로부터 가장 자유롭다. 그래서 '좁은 의미'라는 수식어 없이 문화 자체로 불리기도 한다. 아이러니는 문화가 산업이 되는 시대의 팬데믹은 문화산업을 위축시키고, 이는 예체능(Liberal Arts)에 종사하는 자유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점이다.

독일과 같은 선진 유럽국가에서는 그래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지원정책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예체능 분야에 일정 기간, 일정 수입을 보장받기 어려운 직종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긴급지원대책(Soforthilfe)에 프리랜서 예술가들에 대한 보호조치를 포함시키고 총 500억 유로 규모의 프리랜서·자영업자 지원 정책에 예술가들까지 지원금을 수급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수급 권리를 갖는다.


물론 소수 엘리트 예체능인들은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일반 예체능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협을 덜 느낀다. 그래도 땀과 시간으로 연마한 자신의 퍼포먼스 또는 그 결과를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실감은 유명-무명 예체능인 모두 마찬가지다. 그것은 생활고와 관계없이 문화적 존재감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연, 전시, 경기 기회는 예체능인들에겐 문화적 생명과도 같다.

코로나19와 정치 때문에
 

2020 도쿄올림픽 공식 포스터 갈무리. ⓒ 국제올림픽위원회

 
올해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의 정상적 개최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체육인들의 상심은 그래서 일반인과 또 다르다. 도쿄올림픽의 개최 여부는 일본 방역당국이 얼마나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는 개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방역 능력이 관건이다. 전 세계의 스포츠 마니아들이 개최지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7월의 팬데믹 추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결국 해외 관중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최 측 일본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지만 더 큰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해외 관중 없이라도 올림픽을 강행하는 이유가 선수들의 문화적 존재 이유를 보장하기 위함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참가 선수들로서는 대회 취소는 피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파행은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5일 북한이 이번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하면서 일본은 뒤따라 불참이 이어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측은 불참의 공식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를 들고 있지만 새로 들어선 미국 정부와의 본격적 협상을 앞두고 벌이는 샅바싸움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 올림픽과 같은 대회는 참가 여부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참가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선수들 자신들이 내렸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한과 같은 획일적 전체국가가 아니더라도 이념적 이유로 올림픽에 불참한 경우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미소(美蘇)로 갈라진 지구촌 양대 진영이 한 차례씩 불참을 주고받으며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다.

내년으로 예정돼 있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미국이 보이콧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불참 압력을 받는 나라가 한둘이 아닐 테고, 참가와 불참 사이에서 고민할 나라 역시 늘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보이콧 가능성에 펄쩍 뛰면서 대응 카드들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도쿄올림픽 참가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이슈가 미중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 패키지로 올라갈 수 있다. 결국 이리 저리 주고받는 협상 사이에서 올림픽은 얼룩투성이가 되며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어지게 될 것이다.

올림픽을 이런 정치적 문제에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낸 개념들이 올림픽 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이고 유엔의 '올림픽 휴전' 등이다. 그러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암묵적 동의하에 다시 치러진 것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고, 그 이후 국제대회에서 선수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기에 이른다. 강대국들의 진영 싸움 속에서 인권의 기본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가 제한됐던 것이다.

스포츠 정치적 중립

그런데 단체나 기구가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또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이행하는 것이 선수를 포함한 참가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중립이란 참가자들이 아무 표현을 못하도록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견고한 틀을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견고한 틀이란 국가나 기타 정치세력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더구나 지금까지 스포츠인들의 정치적 발언은 국가의 정치적 개입과 달리 특정 세력의 우월적 이익을 위하는 경우보다 보편 인권에 근거해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호소의 성격이 강했다. 대개의 경우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약자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장치로부터 차단된 경우가 다수다. 우월적 공권력에 감시당하는 소수민족들이 그렇고, 전통 윤리에 위협당하는 성소수자들이 그렇고, 개발 논리에 묻힌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그렇다.

찬반을 떠나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이슈에 대한 발언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많은 스포츠인과 예술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게 된 명성과 찬사를 이용해, 특히 시상식과 경연, 전시, 공연 등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관심의 순간을 이용해 그 관심을 자신이 바라는 사회적 이슈로 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주로 거대 자본과 거대 권력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예체능인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강요는 다름 아닌 이들 거대 권력에 대한 불편한 도전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2022년으로 예정돼 있는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는 모든 국가들이 지역 예선에 참가 중인 가운데 유럽의 몇몇 국가대표 축구팀 선수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표현을 노출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 중 착용하는 유니폼 상의에 카타르 월드컵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경기장 안팎에서 인권을 존중하자(Human rights on and off the pitch)", "축구는 변화를 지지한다(Football supports change)"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지역예선을 치르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회 참여 반대를 외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이들이 참가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카타르 월드컵 보이콧하는 유럽 선수들
  

노르웨이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 중 착용하는 유니폼 상의에 '경기장 안팎에서 인권을 존중하자'(Human rights on and off the pitch)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노르웨이 대표팀 SNS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 유치가 결정된 것은 지난 2010년. 당시 카타르와 유치 경쟁을 벌였던 나라는 한국, 미국, 일본, 호주였다. 최종 투표에서 카타르는 미국에 14대 8로 승리하면서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으나 투표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월드컵이 열리는 계절은 북반구의 경우 6~7월이 보통이다. 계절상으로도 그렇고 다른 대형 스포츠 행사와 중복 또는 유사시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6~7월의 카타르 날씨는 살인적 더위로 인해 실제 경기를 치르는 선수는 말할 것 없고 가만히 앉아 관람하는 관객도 힘들다. 당연히 투표를 앞둔 여론전에서 불리했던 카타르는 축구장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하는 등 '오일 머니' 외교의 정점을 보여줬고 결국 유치에 성공했다.

5년 후 2015년 국제축구연맹은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일을 11월 21일로 정하면서 겨울 월드컵을 공식 확정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유럽의 언론은 카타르 월드컵을 시한폭탄에 비유하기 시작했고 돈으로 매수한 월드컵이라는 소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2014년 영국의 언론들은 카타르 출신의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 모하메드 빈 함만이 카타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면서 국제축구연맹 (FIFA)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제축구연맹은 부인하기에  급급했지만 결국 관련자들이 하나 둘 사법처리되고 이듬해 제프 블래터 회장이 5선 당선 일주일만에 사퇴하기에 이른다. 2019년에는 과거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체포(후 석방)되는 일까지 벌어지며 국제축구연맹(FIFA)의 도덕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경기장 건설을 위해 들여온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공식자료로만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6700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가 숨졌다. 임금 체불은 예사고 찌는 더위 속에서 살인적 노동 강도가 그토록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인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 2019.12.15 ⓒ 연합뉴스

 
일부 언론에서 과거 콜롬비아가 스스로 반납했던 사례를 들며 카타르 월드컵 취소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까지 카타르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개최국이 반납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강제로 개최권을 박탈할 방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일부 대표팀 선수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스포츠맨으로서의 자세와 인권을 향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그들이 택한 것은 티셔츠와 보이콧. 티셔츠는 앞서 언급한 대로이지만 보이콧은 선수개인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일단 노르웨이 대표선수들은 지역예선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는 스포츠인으로서 본분이자 권리다.

하지만 만약 지역예선을 통과 본선진출이 확정되면 카타르에서 열리는 본선은 보이콧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복안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선수들은 소속 팀들과 이야기를 끝냈고, 노르웨이 축구협회 소속 프로팀들은 오는 6월 20일 투표를 통해 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 투표에서 보이콧 결정이 나면 노르웨이 축구협회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노르웨이 축구팀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웃나라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로 번지고 있다. 선수들의 자발적인 요구를 소속 클럽이 수용하고, 클럽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해서 협회가 이를 수용하는 월드컵 보이콧 사례가 나오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나온다면 인권의 역사에서, 스포츠의 역사에서 한 단계 진일보의 역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국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수들의 요구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보이콧을 행사하는 국제대회의 첫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중립은 표현을 보장하는 것이지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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