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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수 주변의 선교장 해운정 금란정 경포대 허균 난설헌생가 초당솔밭의 설경
▲ 경포호수주변의 설경 경포호수 주변의 선교장 해운정 금란정 경포대 허균 난설헌생가 초당솔밭의 설경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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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귀소본능이 있다. 타관에서 아무리 잘 살고 명성을 날리더라도 두고 온 고향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타향살이가 힘이 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균도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소망은 관직을 벗어던지고 귀향하여 자연과 책을 벗삼아 한가를 즐기는 삶이었다. 「고향 강릉을 그리워하며」등 몇 수가 있다.

여기서는 「경포를 그리워하며」를 소개한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주변은 소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주변은 소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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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포를 그리워하며

 내 고향집은 경포의 서쪽에 있으니
 바윗돌 골짜기들이 회계 명승과 같아라
 물고기와 새들을 사랑하며 산과 호수를 거닐던 시절
 명예와 이욕도 다 우스워라, 한때의 방편일 뿐
 우연히 글을 지어 봉래전에 올렸더니
 무지개와 같다고 글솜씨를 칭찬하셨네
 궁궐 문을 떠난 뒤로는 쌀 구하기에 시달리며
 동쪽으로 낙향한 뒤 귀뚜라미 소릴 열 차례나 들었어라
 베옷도 다 떨어지고 구레나룻도 서리 같지만
 고향쪽을 돌아다 봐도 돌아갈 꿈은 아득해라
 공연스레 입을 놀려 자주 거리낌을 당한 뒤로
 끓는 국에 손을 데자 풋김치도 불게 되네
 제비 참새 따위가 다락에 모여 으스대니
 신룡은 오히려 진흙바닥에 웅크리고 있네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이 참으로 이 같으니
 두 다리가 있어도 청운의 꿈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네
 귀문관 밖으론 나그네 길이 널찍한데
 같은 또래 젊은이들은 황금띠를 띠고 있네
 조롱에 갇힌 새가 파득대다가 날지를 못해
 슬피 울다가 그 몇 번이나 남쪽 가지를 그렸던가
 누런 띠풀은 쓸쓸하고 하늘은 바다에 닿았는데
 독기에 젖은 안개는 한낮에도 부유스름해라
 객실은 괴로와서 시루 속에 앉은 듯한데
 한낮의 오동나무 그늘에선 얼룩닭이 우는구나
 아무리 굶주려도 꾸어 먹을 곳이 없고
 장어 냄새 고약해라 논에는 피도 많네
 그댈 그리면서도 그댈 만날 길이 없어
 술이 생겼다지만 그 누구와 잔을 나눌까
 반생 동안의 만남과 헤어짐은 슬픔과 기쁨이 많기도 해라
 사람의 일이란 게 어그러짐만 많아라
 따뜻한 햇볕 은택을 입어 시든 이 몸이 되살아나면
 여기로부터 동쪽길로 채찍질하며 돌아가리라
 고향 뜨락엔 솔과 국화 아직도 오솔길 셋이 있으리니
 느지막엔 농사일이나 즐기자고 내 스스로 결단했네
 산과 골짜기의 풍류가 우리들의 일이어니
 붕새의 길 따라잡으련 생각 다시는 않으리라
 내 이 몸이 강건하고 그대 또한 씩씩하니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산 찾아다님도 좋으리라. (주석 11)


주석
11> 허경진, 『교산 허균시선』, 143~14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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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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