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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 회사로 향합니다. 버스나 기차, 혹은 자가용을 이용해 일터로 향하는 분들도 계시죠.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걸어서, 혹은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각자의 일상을 시작합니다. 교육을 받기 위해, 경제 활동을 위해, 혹은 각자의 사회 참여를 위해 이동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이동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된 것일까요?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레 누리고 있는 이동권, 그래서 보편적인 권리라 생각하는 이것이 누군가에겐 여전히 닿을 수 없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제 우리 사회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 속 차별은 만연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007년 제정)은 장애인의 이동 및 교통수단 제공에 있어 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하거나 배제, 분리,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동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정된 지 10여 년이 넘은 이 법의 실현은, 장애인의 일상에서 여전히 요원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시조치로 제공하는 것이 '특별교통수단'입니다. 비장애인은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문턱이 장애인에겐 여전히 높기에 마련된 제도입니다만, 이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필요한 법정대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운영 규정이나 관련 조례도 제각각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충북 옥천군 특별교통수단 운영 현황을 짚어보며 그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법정대수 못채워도 이용률 낮아 '괜찮다'?
 
충북 옥천군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
 충북 옥천군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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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이동‧교통수단에 대한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는 게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이다. 이 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보행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150명 당 1대의 특별교통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흔히 '장애인 콜택시(장콜)'로 부르는 휠체어 리프트 차량(특장차)이 대표적.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를 지키지 못하고 있고, 다른 지역과 연계 이용의 어려움, 다른 교통약자(보행이 어려운 노인 등)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점 등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상당하다는 문제가 있다.

옥천의 경우 '옥천군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를 통해 총 11대의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중 특장차는 6대로, 법정대수 10대보다 4대가 부족하다(현재 운행 중인 11대 중 5대는 임차 택시). 하지만 옥천군은 예산을 비롯해 이용률 저조 등을 이유로 증차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 저상버스가 턱없이 모자라(옥천읍에서 대전 방면으로 나가는 607번 노선 1대가 유일) 휠체어 장애인에게 장콜이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임을 고려하면 옥천 장애인의 이동권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옥천군에 따르면 이용 대상자 2천여 명 중 실제 이용자는 200여 명 선으로 이용률은 10%대에 머무른다. 이처럼 '낮은 이용률'을 이유로 옥천군은 증차 자체가 시급하지는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애초 법정대수 및 홍보 부족으로 이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용자들의 지적이다. 일주일에 평균 4회가량 장콜을 이용한다는 휠체어 장애인 김병석(39, 청산면 한곡리)씨는 장콜 차량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원하는 때에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되거나, 혹은 장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용대상자가 많음을 지적한다.

김씨는 "옥천읍에 있는 일터로 출근하려면 아침 8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장콜이 오전에는 이용자가 많고 운영 시간 역시 출근시간과 맞지 않다 보니 저는 늘 제 시간보다 늦게 출근해야 한다"며 "주로 오전에는 이용자가 많아 오래 대기하거나 아예 이용이 어려울 때가 많고, 밤 10시 이후에는 사전 예약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어 긴급한 때에는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장콜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 그는 "장콜 수요는 현재 이용 결과만 놓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이용자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하지 못하는 수, 여기에 아직 장콜을 알지 못하는 잠재적 이용자 수까지 모두 합쳐서 봐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차' 지원 받았지만 결과는 '대차'?

이런 가운데 옥천군이 증차를 목적으로 국비를 지원받았음에도 '특장차 추가 확보'가 아닌 '기존 차량 교체'를 할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2019년 특장차 2대 추가 구입을 위해 국토교통부로부터 관련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이를 대차(내구연한이 만료된 차량을 새 차량으로 교체하는 것)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

이를 두고 지역 장애인권운동계는 옥천군이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애초 국비 지원의 목적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내구연한이 다 하지 않은 차량의 대차,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옥천군은 내부 협의를 통해 기존 차량 2대를 보건소 건강관리과로 '관리 전환'해 치매안심센터 이용자를 위한 차량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치매안심센터를 이용하는 노인 역시 교통약자로 볼 수 있고, 특장차를 추가 확보하진 못했지만 임차택시를 2대에서 올해 5대까지 늘려 보완했다는 게 옥천군의 설명.

옥천군 도시교통과 교통행정팀 박희철 팀장은 "예산상 여유가 있다면 특장차를 늘리겠지만 현재 그럴 수 없어 올해는 임차택시를 더 늘렸다"며 "비장애인 이용자가 임차택시를 쓰고 그만큼 휠체어 장애인이 특장차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내 시군 중에서도 법정대수를 맞춘 곳은 한 군데도 없고, 그나마 옥천처럼 60% 정도나마 충족한 곳은 군 단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특장차 한 대 당 운영 예산만 6천만 원 가량이라 현재 상황에서 더 확보하기가 어려움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옥천군의 설명에도 지역 장애인의 반발은 쉽게 사그라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여년 간 장콜 등 이동권 확충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임경미 소장은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이런 차별을 장애인이 겪어야 할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옥천군은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해 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일의 경우 애초 국비 예산 지원 목적에도 맞지 않고, 이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요구와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처럼 조례로 규정된 '옥천군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위원회'는 2018년부터 2021년 3월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옥천군이 장콜 증차가 아닌 대차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이동편의증진위원회 등 규정상 마련된 논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셈이다.

특장차 예산을 지원하는 국토부는 옥천군의 대차 계획에 대해 '상황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특장차 지원의 목적은 증차가 원칙'임을 밝혔다. 국토부 생활교통복지과 채수호 담당자는 "시군 단위까지 운영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처음 듣는 얘기라 충청북도에 우선 상황을 확인해본 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원칙은 '증차' 목적이 맞다"고 설명했다.

농어촌형 '중형 저상버스'도 실현 미지수
 
충북 옥천군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
 충북 옥천군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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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의회 이용수 의원은 옥천군이 법정대수를 충족시키는 데 우선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의원은 "'임차 택시' 증차를 했다고는 하는데 이걸로 해결이 되는 거면 '법정대수'가 왜 있겠냐"며 "당장 법정대수를 완전히 충족하기 어렵다면 점진적으로라도 이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특별교통수단은 사실상 24시간 운영이 어려운 점 등 여러 모로 보완돼야 하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지역 장애인권운동 단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책 마련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국장 겸 장애인 야학 '해뜨는학교' 최명호 교장은 "치매안심센터 이용자 역시 특별교통수단을 함께 이용하면 될 일인데 이렇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뺏어간 것"이라며 "옥천군이 이야기하는 임차택시 역시 휠체어 장애인은 여전히 이용할 수 없고, 그나마도 택시 기사 상황에 따라 다른 이용자의 이용 가능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장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지자체에게만 맡기게 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도 특별교통수단 운영에 한계가 많은 이유"라며 "국가가 이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농어촌형 저상버스로 기대를 모은 '중형 저상버스' 도입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도로 기반이 좋지 않은 농어촌에서 운행 가능한 중형 저상버스 개발 및 도입을 약속해왔고, 옥천군 역시 중형 저상버스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농어촌형 저상버스가 상용화된 지 오래 되지 않아 대다수 지자체에서 도입을 꺼린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9년 도내 지자체 가운데 국토부에 중형 저상버스 지원을 신청했던 괴산군은 결국 사업을 포기했고, 제천시는 자체 예산을 더해 대형 저상버스 도입으로 운영계획을 수정했다. 중형 저상버스 운행을 담당해야 할 지역 운수업체가 어려움을 표하는 것 등이 그 이유다.

지난해의 경우 중형 저상버스 국비 지원을 신청한 도내 지자체는 한 곳도 없었다. 옥천군 도시교통과 담당자는 이에 대해 "올해 업무를 맡게 돼 이전 상황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고, 중형 저상버스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장애인 이동권 침해' 장콜 용도변경, 즉각 중단하라" http://omn.kr/1ssje

글 박누리
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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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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