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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원전사고 발생 10년, '탈핵’은 왜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탈원전'에서 '에너지전환'으로 노선을 바꾼 문재인 정부와 그 과정에서 부침을 겪은 국내 탈핵운동, 올해 초 보수진영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정쟁화한 이유와 끝없는 원전 가짜뉴스까지, 아주 정치적인 의제로서 한국 탈핵의 현주소를 살펴본다.[기자말]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반핵운동으로 1987년 영광 주민들의 어업 피해 보상 투쟁을 꼽는다. 그 후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과 신규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 지역주민 피해보상운동이 반핵운동의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던 중 2002년~2003년에 걸친 부안핵폐기장 반대운동에서 반핵운동의 정점을 이루었다가 그 직후 정부 주도 군산, 경주,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의 주민투표로 인해 침체기를 맞는다. 3000억 원의 지원금과 관권·금권 선거에 경주 지역 주민 89.5%가 유치 찬성을 선택하면서 반핵운동 진영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후쿠시마 핵사고, '반핵'에서 '탈핵'으로 인식을 바꾸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핵사고는 한국 사회 반핵운동의 양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2만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는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그 참담함이 내 문제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절감하고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라 핵발전소 안전 규제와 방재에 대한 고민과 방사능오염식품과 생활방사선 등으로 관심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등장한 개념이 바로 '탈핵' 운동이다. '탈핵'은 '핵에너지의 사용을 막겠다'는 '반핵' 운동에서 한 발 나아가 '핵발전을 벗어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동안 반핵운동의 주제인 핵무기, 핵발전소, 핵폐기물 문제 이외에도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 에너지자립, 방사능 식품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이 탈핵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2014년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에서도 나타난다. 핵발전소 문제가 핵사고와 방사능 위험을 넘어 그 전기를 운반하는 송전탑 문제로 확장되고 핵발전 문제를 에너지정의와 인권의 문제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100만 서명운동과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공약
 
2016년 10월 11일,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본부 발족식
 2016년 10월 11일,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본부 발족식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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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핵운동 진영은 해마다 핵사고를 기리고 탈핵 세상을 염원하는 시민들과의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1주기 행사에 2000여 명이 참여했던 것을 시작으로 집회와 행진, 문화행사 등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를 확대했다. 그렇게 모인 힘은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의 성과로 나타났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노동계 등이 함께한 이 운동에는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33만 8000명이 동참했다. 이 서명의 내용은 2017년 대선 시기 주요 후보들의 공약으로 이어졌다. 특히 당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여러 차례 약속했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이 아니라 '공론화'로 후퇴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환영, 유감, 규탄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내부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 "정부정책에는 비판적이지만, 에너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공론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그 후에도 공론화 대응에 대해 '보이콧을 했어야 한다' 또는 '탈핵진영이 정부의 정책 후퇴를 용인했다'는 등의 내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 '공론화 대응'이라는 틀에 갇혀 오히려 찬핵 진영에 대한 대응이나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실천을 적극적으로 펼쳐 내지 못했다. 

결국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는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의 무책임함, 공론조사의 한계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결국 '건설 재개'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2017년 공론화는 지금까지도 탈핵운동 진영에게 있어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한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탈핵운동 진영 내부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등 다양한 고민을 남겼다. 

2021년, 국내 탈핵운동의 당면 과제 

앞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탈핵 정책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엉터리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공론화는 경주에 맥스터(MACSTOR)➊ 건설이라는 폭력으로 점철되었고, 월성 지역 주민들의 이주 요구는 여전히 묵살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영광 3, 4호기 공극 문제나 월성핵발전소 삼중수소 누출 문제 등 안전 문제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탈핵운동 진영은 이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넓어진 탈핵운동이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이후 다시 축소되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탈핵 이슈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사회적 쟁점이나 전국적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운동의 주체들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으로 역량을 옮겨가는 등, 탈핵운동이 침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탈핵운동이 지체하는 동안 핵산업계와 보수정당은 언제든 핵산업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기후위기에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한수원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신청 기간 연장을 요청했으며, 산업부는 신울진 3, 4호기 건설 인가 기간을 연장했다. 탈핵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 앞으로 10년간 핵발전소 10기가 수명 만료될 예정인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30년까지 수명 만료되는 국내 핵발전소
 2030년까지 수명 만료되는 국내 핵발전소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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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사회는 행동할 때만 얻을 수 있다

첫째, 탈핵을 앞당길 로드맵이 필요하다. 정부는 탈핵을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어떠한 행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신규건설 및 수명연장 금지, 조기 폐쇄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탈핵을 앞당기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특히 핵폐기물 문제와 재생에너지 시스템과 핵발전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탈핵을 앞당겨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이에 맞춰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탈핵정책과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탈핵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결정과 대중적인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 어느 하나도 미흡하다면 끊임없이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탈탄소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핵발전의 위험과 비경제성뿐 아니라 탈성장과 탈생산, 정의로운 전환의 모색은 탈핵 사회를 앞당기는 데 새로운 날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뉴스와 정쟁이 가득한 탈핵 이슈를 이제는 안전할 권리와 사회시스템 전환이라는 건강한 논의로 탈핵의 담론을 이끌어와야 한다.  

셋째, 탈핵운동의 핵심 의제를 선정하고 전국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2022년 대선은 탈핵운동이 주요 의제를 논의하고 공동의 연대를 만들어가기 좋은 마당이다. 문재인 정부보다 한발 앞선 시민사회 탈핵의제를 만들고 이를 확산할 전국적인 공동행동을 만들어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탈핵 로드맵과 담론은 분명한 의제와 전국적 연대가 없다면 공허한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은 분명 한국 사회의 탈핵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해다. 그리고 그 일 년을 무엇으로 채울지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➊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뜻하는 'Modular Air Cooled STORage'의 약자.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 후 교체돼 나오는 핵연료를 보관하는 설비를 가리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영경 님은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후쿠시마원전사고, #오염수해양방류, #탈핵, #국내탈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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