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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을 사서 공주시 도심하천인 '제민천' 산책로를 걸었다. 제민천(濟民川)은 금학생태공원(수원지)에서 시작하여 금강으로 4.21km 흐르는 하천으로, 열여덟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커피 한 잔을 사서 공주시 도심하천인 "제민천" 산책로를 걸었다. 제민천(濟民川)은 금학생태공원(수원지)에서 시작하여 금강으로 4.21km 흐르는 하천으로, 열여덟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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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제법 내린 다음 날, 지인들과 밖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 모이면 온몸 구석구석이 삐꺽대어 불편하다는 하소연부터 꺼내기 마련이다.

서로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동지애를 확인하면 쑥떡 보관법, 장아찌 저장법, 맛깔나게 봄나물 무치는 법 등등 평범한 일상이 수다거리로 등장한다. 비록 마스크를 쓴 채 불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모두가 즐거웠던 점심 모임은 짧은 봄날처럼 후딱 지나가 버렸다.

모처럼 만났는데, 점심만 먹고 헤어지기 아쉽던 차에 지인 하나가 공주교육지원청에 볼일이 있어 들러야 한다기에 길동무를 자청했다. (공주 원도심을 흐르는) '제민천'을 따라 걸어가자는 내 제안에 쿵짝이 잘 맞는 지인은 "날씨도 좋으니, 그게 좋겠다"며 앞장섰다.

4.21km에 달하는 제민천에는 열여덟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지인과 나의 산책 코스는 열다섯 번째 교량인 금성교(상)에서 열일곱 번째 왕릉교까지였다.

커피를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3월과 다른 4월 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올봄에는 큰비가 없어서 벚꽃이 한꺼번에 지지는 않았는데, 며칠 안 봤다고 그새 벚꽃은 라일락, 철쭉, 유채꽃에 뭇시선을 뺏긴 채 피었다 진 흔적만 남겨 놓고 있다. 제민천 주변으로는 노오란 빛을 발하며 시선을 끄는 애기똥풀도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기 시작했다.
 
최근 공주우체국을 흐르는 제민천에는 오리 한 쌍이 살고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공주우체국을 흐르는 제민천에는 오리 한 쌍이 살고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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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황새바위 인근을 흐르는 제민천에서는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다.
 공주 황새바위 인근을 흐르는 제민천에서는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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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제민천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경계를 늦추었기 때문일까? 주변에 수달을 봤다는 목격자가 많다. 아직 내 눈엔 안 띄어 수달의 서식 여부는 확신할 수 없으니 반가운 '~카더라' 통신으로 여긴다.

대신에 공주우체국 인근을 흐르는 제민천에서 늘 붙어 다니며 노니는 오리 한 쌍은 여러 번 봐 왔다. 제민천의 열 번째 다리인 봉산교에서 열두 번째 다리인 교촌교 일대에 자주 출몰하는 이 둘은 이미 지역 명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금성교(상)에서 열여섯 번째 다리인 웅진교로 향하는 길에 지인과 나는 왜가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인기척에 놀라 도망갔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포착된 걸 보면 이 일대를 나와바리(?)로 두고 있나 보다.

'찰칵찰칵' 요란을 떨며 왜가리를 사진에 담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왜가리한테 한 번 더 눈길을 준다. 일면식도 없는 중년 여인은 스스럼없이 "무슨 새예요?" 물어왔다.

새 이름이 퍼뜩 떠오르지 않아 답은 얼버무리고 난처한 웃음으로 무마해 버렸다. '으이구, 이 새대가리? 하필 이럴 때 나쁜 머리를 가리킬 때 쓰는 이 단어만 떠오를 건 또 뭐람.... ' 나이를 먹어가며 신체가 제때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종종 이렇게 머쓱한 일을 만들기도 한다. 

지인은 수도권에 살다가 아이들 건강 문제로 고향에 내려와 여러 해를 보내고 있다. 정착 초기에 아이들과 제민천에 발 담그고 생물 채집하며 하하 호호하던 한때를 들려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 직업을 약초꾼으로 착각할 만큼 기관지, 천식, 피부에 좋다는 건 뭐든 캐고 뜯어다 먹였단다. 이제 엄마와 산으로 들로 다니던 아들과 딸은 도시에서 키운 병치레가 많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모성애에 대가 없이 응답해준 자연의 치유력이 새삼 놀랍다.
 
금성교(하)에서 제민천을 바라보니 날이 따뜻해지면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곳곳에 보인다.
▲ 제민천의 4월 풍경 금성교(하)에서 제민천을 바라보니 날이 따뜻해지면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곳곳에 보인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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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바닥을 보일 즈음 드디어 왕릉교에 다다랐다. 볼 일을 끝마치고, 열여덟 번째 다리인 금강교(하)에 서서 왕릉교 한식 회랑 쪽을 바라보았다. 그림 같은 봄 풍경이 펼쳐져 있다. 물오른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잎이 올라오고, 맑디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산책길에 오른 사람들은 유유자적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유로운 시간에 기대 있다. 

'큰돈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너무 좋은 도시인데....'

지금 제민천은 어느 곳에 가든 수려한 경관을 뽐낸다. 코로나19 탓이 크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과 안식을 몇몇 사람만이 독점하다시피 즐기니 한편으론 좋다가도 또 한편으론 아쉽고 속상하여 푸념 섞인 말이 쏟아진다.

큰 도시는 그곳만의 장점이 있지만, 작은 도시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이 봄의 위안과 행복감은 천만금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다. 한창 때 같지 않아 몸뚱어리는 여기저기 성치 않지만, 쓸데없는 욕심만 버리면 마음만은 늘 이팔청춘이다. 힘들이지 않고 몇 발짝 뗐을 뿐인데 예고 없이 찾아와 준 달달한 하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태그:#제민천, #봄나들이, #생태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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