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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산책 나가요."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좋은 산책길을 보여주고 싶어서 벼르고 있었던 차였는데 잘됐다. 세상은 온통 초록이 뒤덮고 있는데, 맑은 공기 한 번 맘껏 못 쐬게 해주는 게 미안해서 그래! 오늘은 한 번 나가보자 하고 집을 나섰다.

고민 없이 향한 곳은 집으로부터 20분 거리에 있는 남강변 습지원 산책길. 조금은 덜 정비된 남강변의 상류쯤이 되려나. 맞은편에는 멋진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잔잔한 강물 위 윤슬은 보기 좋게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과 나무, 강물이 모두 하나가 된 순간. 아이들의 놀이터로 손색이 없었다.
▲ 진주 남강변 산책길 하늘과 나무, 강물이 모두 하나가 된 순간. 아이들의 놀이터로 손색이 없었다.
ⓒ 백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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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연을 보여주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직접 보여주는 게 힘들면 각 지자체의 '숲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아예 '숲 유치원'엘 보내는 부모도 생겨났다.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어린이집보단 맘껏 뛰어놀 잔디밭과 작은 동산 정도라도 있는 곳의 경쟁은 더 치열했다. 주말마다 캠핑족들이 늘어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일 거다. 나 역시 하늘 한 번 더 올려다보게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요즘이랄까.

하루는 남편이 "제주도 어때?"라며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같은 직종끼리는 소식이 빠르므로, 좋은 자리가 날 것 같다면서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는 얘기에 순간 솔깃했다. 천혜의 자연을 보유하고 있는 제주도라...

모래놀이 좋아하는 세 아이들에게 마음껏 바다와 나무들을 보여줄 상상을 하느라 몇 시간은 구름 위에 동동 기분으로 있었더랬다. 실제로 한 대학 후배는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자리 잡았다.

10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에서 집들이 돌아가며 공동 육아를 한다고 했다. 지척에 산과 바다가 널려있고, 아이들 수가 적으니 매일 같이 등교를 함은 물론, 자연과 더불어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삶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 후배 앞에서는 백번이고 질 것이 당연했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이리도 동경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하나일 땐 육아로 좌충우돌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둘째가 생기고 셋째가 태어나니까 환경이 이리도 중요한 것이구나 절실히 깨달았다.

직장을 비롯한 필요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가능한 것이 거주지 이동이라 마음먹는다고 해서 당장 선택을 할 순 없는 법.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진주에서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보여주자! 하고 다짐했다.

가까운 곳부터는 남강을 주변으로 만들어진 생태공원을 이용하거나 30분 거리에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 1시간을 넘게 달리면 닿는 남해 바다 등 갈 수 있는 곳엔 다 가보자는 심산이 일었다. 코로나 방역에 위반되지 않는 선이라면 근교의 캠핑장을 이용하거나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야외를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들판에 풀어놓으면 쉽게는 나뭇가지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은 잘 논다. 돌멩이 몇 개만 있어도 던지고 놀거나 쌓으면서 재미를 찾는다. 막내는 개미 한 마리만 쫓아도 하루를 다 보낼 수 있는 기세로 자연에 뛰어든다. 세 아이가 노니는 모습을 보는 동안만은 엄마인 내 마음에도 자연이 깃든다.

그러다 잠시 또 생각에 잠겨본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씨를 보이는 날이 앞으로 거의 사라진다면?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반년에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그럴 때가 온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우리 부모 세대들이 물을 사먹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처럼 언젠간 공기를 캔으로 사 마시는 시대가 정말 오면 어떡하지?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겠다는데, 지금도 북극의 빙하는 계속 녹아 사라지고 있다는데... 푸름에 묻혀 맘껏 뛸 수 있는 지금이 사진 속,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자니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나라도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분리수거는 확실히 해둔다. 플라스틱을 하나라도 쓰게 되는 날엔 꼭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런 노력이 작은 보탬이 되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자연 속을 뛰어다닐 수 있다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건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아이셋 워킹맘의 미친 세상 이야기)


태그:#자연,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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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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