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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공공도서관 주관 주사랑지역아동센터 협업하여 진행하는 2021년 <담벼락에 책쓰기> 수업 사진
 해남공공도서관 주관 주사랑지역아동센터 협업하여 진행하는 2021년 <담벼락에 책쓰기> 수업 사진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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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 강의를 하기 전, 저는 차수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그 전날에 수업 현장에 맞는 계획으로 좀 더 구체화 하는 편입니다. 이런 이유는, 수업은 그 현장에서 끝나는 행사가 아니고, 그 수업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 앞으로의 삶에서 조금이나마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대상은 학우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는 저 역시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수업 초년 시절에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날 내게 무엇을 듣고 싶어할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성인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해야 할 때 해야 할 고민이었습니다. 초․중․고 학생을 만날 때는 다른 사고를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행 교육과정상 학습과목에 따른 커리큘럼에 관한 계획은 학생 당사자가 아닌 교육 운영자가 짜기 때문에, 대개 학생들은 수업 전, 오늘 이 시간 무엇을 이뤄야지 하는 목표 의식을 갖기 어렵습니다.

담당 교사가 그들에게 이 장소에 앉아 있으라고 했고, 학생들은 필기구를 손에 들고 차분하게 앉아 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3분이 지나면 학생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3분 안에 이 수업의 당위성이나, 목표 의식에 관한 공감이 결여 되면 그날 수업은 학생과 저의 대결 구도로 갑니다.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이죠. 제 입장에서는 '이것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로 더 톤을 높이며 말을 합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빨리 수업이 끝났으면...' 하고 귀를 닫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둔감해지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그 수업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저대로 수업을 들을 만한 학생을 쫓아다니며 나머지 학생에게는 등을 보이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그날 수업에 해야 할 것들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더 절절하게 표현됩니다. 마치 바닷바람에 말라가는 오징어와 같이 온몸을 배배 꼽니다 .

무엇을 말해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할까, 무엇을 알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사실 한 보따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바로 수업을 진행하는 제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학생들의 관심은 그날 점심에 나올 급식 메뉴가 궁금했고, 어제 밤늦게까지 했던 게임에 대해 좀 더 말하고 싶고, 다음 시간에 제출해야 할 수행과제에 대해 집중하고 싶다는 것을 저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제 일상에는 글쓰기 수업이 특별한 한 꼭지이지만 학생들의 일상에는 그날 있는 1교시부터 6교시 수업 중에 하나일 뿐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모래사장에 모래 부스러기를 가져다 놓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찾아야 된다고 강조하는 격이었습니다. 싫음의 표현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수업의 틀을 깨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을 질문할까. 무엇이 어려울까, 무엇이 답답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 시작은 종이 치고 나서였지만 제 수업 시작은 제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이거나 반대로 학생들이 그 교실에 입장하는 순간부터였습니다.

전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 일주일 어떻게 보냈냐. 요즘 이러이러한 드라마가 유행하는 데 봤냐, 오늘 급식 반찬은 뭐였냐 등등 일상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러면서 그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컨디션이나 몸짓 등을 판별하거나 관찰했습니다. 반응이 의외로 좋았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갖는 불변의 법칙인 5분 안에 관객을 사로 잡아야 한다는 공식처럼 3분 안에 학생들의 관심과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는 스피치의 법칙에서도 벗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첫 문장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단락이 통일 돼야한다. 당신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전략은 적어도 이 학생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한두 시간의 수업일망정 그 시간에, 나도 여기 있어요, 학교를 오다가 강아지를 만났어요, BTS 좋아요, 마스크가 싫어요 등과 같은 말을 해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되면 그것을 글로 또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글을 쓰라고 교사가 지시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붙임쪽지나 노트에 샤프 자국을 남겼고, 사절지에 색연필이나 사인펜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 위해서, 혹은 제 글을 쓰기 위해서 공부했던 로버트 맥기, 스티븐 킹, 빌 루어바흐의 메시지가 지금 당장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우리가 참고해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내 표현을 정말 세련되게 하고 싶고, 와 기발한데, 너 천재 아니야? 라는 소리를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내 글을 읽어줄 독자를 정하고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첫 독자는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쓰는 이 글에 독자로 정한 분들은 이렇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은데 막연하게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입니다. 각설하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구별해서 사고해야 합니다. 그 페이지를 읽는 그 시간 동안 독자는 무엇을 원할까요? 현란한 수사적 표현이나, 좋은 말이라 불리는 명언, 명구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멀뚱멀뚱 서 있지 마시고, 여기 창가 쪽에 앉으시겠어요.' 다시 말하면, 나는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 매우 반갑다. 어려워 마시고 우리 이야기 나눌래요'라는 어감이 필요합니다. 소재 찾기가 어렵다면, 필자가 상정한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제가 글쓰기 수업이라는 틀에 얽매여 전쟁 같은 수업을 했던 지난 어리석음을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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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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