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 책겉그림 한비야·안토니우스 반 쥬드판의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 푸른숲 | 관련사진보기 |
나이가 들어 결혼한다면 어떨까?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을까? 더욱이 60대에 결혼할 생각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외국인과 함께라면? 다들 제정신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이혼한 전력이 있는 남편이라면, 다들 말리려 하지 않을까?
하지만 서로가 잘 안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것도 10년 넘게 만난 사이였다면? 서로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면? 더욱이 청소년 시절부터 각자 열심히 돈을 벌어 학비와 용돈을 조달했다면. 한 번쯤은 용기를 내서 같이 살도록 격려하지 않을까? 60대에 만났으니 30년 넘게 사이좋게 잘 살아보라고.
한비야와 안톤의 결혼 이야기다. 한비야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북후 헤라트의 긴급구호 현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녀는 월드비전 중동 지역 총책임자였지만 햇병아리 신입 구조 요원이었는데, 안톤이 그녀의 보스였다. 그 후로도 2003년 이란, 2004년 이라크, 2005년 인도양 쓰나미 현장에서 서로가 '전우애'를 다졌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3년간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이 되어 제네바와 뉴옥을 오가면서부터 둘 사이는 진전된 관계로 발전했다. 그때부터 동료애를 넘어 '찐한 친구 사이'로 깊어졌고, 4년 열애 끝인 2017년에 둘은 결혼했다고 한다. 와우! 축하할 일이 아닐까?
이건 일상의 습관보다는 시간관념의 차이다. 한 사람은 오래 먹고 자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행복과 직결된다고 믿는 차이!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거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거나 상대방이 바뀌길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이 아무리 바꾸려고 노력해도 잘 바뀌지 않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71쪽
한비야·안토니우스 반 쥬드판의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에 나온 이야기다. 아무리 함께 하기로 결정했더라도, 각자의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1년에, 3개월은 한국에서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함께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각자 살아가는, 결혼생활 3년 차 부부의 삶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일명 '3-3-6 신혼생활'에다 국제결혼이라면, 그것도 60대 신혼이라면, 둘 다 너그러울 것 같은데, 그런데도 두 사람은 초기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걸까? 이 책을 보니, 둘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먹고 자는 문제까지 충돌했다. 비야는 꿀벌처럼 쉬지 않고 뭔가를 하려는 성격인 데 반해, 안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유를 즐긴다. 여행할 때도 그녀는 사진을 찍어대고 뭔가 처리하는 데 바쁘지만, 그는 여행 자체를 느긋하게 즐기는 스타일이다.
더욱이 안톤은 욕실 세면대 아래 서랍장에 온갖 수건을 넣어두고 살지만 비야는 바람이 잘 통하는 선반 위에 그걸 펼쳐놓고 쓰길 원한다. 그는 의자 위에 뭔가를 올려놓거나 걸쳐놓는 걸 싫어하지만, 그녀는 걸쳐놓길 원한다. 그는 과일이나 채소를 제 때에 사다가 먹고자 하지만, 그녀는 장을 봐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꺼내먹길 원한다.
더 힘든 것, 3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 먹고 자는 문제가 그것이다. 비야는 아침을 간단하게 그것도 빨리 먹지만 안톤은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먹는 스타일이다. 더욱이 그녀는 한밤중까지 일하기 때문에 늦게 자는데, 그는 제 때에 자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만큼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고 그게 증폭돼 심각한 문제로 변한 경우도 많단다. 그걸 경험하고 난 뒤, 또 '336 신혼생활' 3년을 지나오면서, 그 부부 나름대로 일상의 평화를 위해 지킬 것을 정한 게 있다고 한다. 녹색 소파에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과 오전 10시 전에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금지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면 오해도 풀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단다.
결혼 전 썼던 유언장, 달라진 하나... "네덜란드에도 유골 안치해달라"
물론 더 중요한 실천방안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둘이 '교차통성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침이면 둘이 15분가량 소리를 내서 차례로 기도를 하는데, 그때마다 서로가 들을 수 있도록 한단다. 그때 각자의 뜻을 하나님께 얘기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만큼 확실한 소통법도, 잔소리 방지법도 없다고 얘기한다.
나는 10여 년 전에 유언장을 써 놓았다. 한 영성 수련회에 갔는데, 내일이 죽는 날이라는 가정하에 유언장을 쓰고 관 속에 누워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직업상 위험한 재난 지역에서 일해서일까? 이 과제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기회에 제대로 한 번 써 볼 작정으로 깜깜한 골방에 들어가 굵은 양초가 거의 다 탈 때까지 생각한 후 써 내려간 유언장이 대학노트 5쪽을 훌쩍 넘겼다.- 285쪽
한비야는 안톤을 만나 결혼하기 10년 전에 이미 유언장을 써놓았단다. 큰 골자는 인위적인 생명연장치료를 하지 말라는 것, 장기 및 시신 기증은 서약대로 잘 처리해 달라는 것, 남은 재산은 가족과 형제들에게 반을 주고 나머지 반은 사회에 환원해 달라는 것 등이다. 남편을 만난 지금 달라진 것은 딱 하나다. 유골의 절반은 납골당에, 그 절반은 네덜란드에 안치해 달라는 것.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둘이 신혼여행을 떠난 이야기, 신혼여행 중에 스페인어와 살사댄스를 배운 이야기, 곳곳의 여행지에서 기부한 모습도 담겨 있다.
이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30대에 만나 60년 넘게 사는 것도 좋지만, 60대에 만나 30년 넘게 사이좋게 사는 것도 행복하겠다는 것. '336 신혼생활' 3년 차 부부의 삶을 통해서도, 배울 것은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