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빈센조 ⓒ tvn

 
2019년 말, 서초동 대검찰청 앞이 손에 촛불을 든 시민들로 꽉 찼다. 당시 시민들은 사법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며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 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속 사법부는 정의롭게만 그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 속 사법부가 과거에 비해 더욱 무능하고 파렴치하게 그려지는 건 우연한 일일까, 아니면 시대상을 반영한 것일까.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준기 분)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 홍차영(전여빈 분)과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인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에서 법정은 회화화된다. 국내 최고의 로펌 대표와 판사의 '협잡'이 자연스럽다. 판사가 그들의 입맛에 맞춰 판결을 하는 것이 하등 이상하지 않다. 그런 법정이기에 법정 안에 말벌을 풀어 판사를 농락하고 판결을 늦추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한다. 

압권은 15회 정 검사(고상호 분)의 배신이었다. 그는 그동안 남동부지검 모든 검사들이 재벌과 손을 잡고 사건을 주무르는 것을 당연시 하는 가운데에서도 우직하게 '바벨 그룹'의 비리를 밝혀 법 앞에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거의 유일하다시피했던, '정의'의 상징이었던 인물이 막상 바벨 회장인 장한석(옥택연 분)이란 줄을 잡자 태세를 전환한다. 자신을 어디까지 올려줄 있느냐고 천연덕스럽게 재벌 회장과 '딜'을 하는 검사라니. 결국 드라마는 사법적 시스템의 그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짚는다. 

그 어떤 사법적 정의에도 기댈 수 없다면, 과연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이에 드라마가 내놓은 '답'은 '사적 복수'다. 이는 <빈센조>뿐 아니라 SBS 금토드라마 <모범 택시>의 방식이기도 하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인공의 복수

지난 11일 방영된 <빈센조> 16회, 바벨의 장한석은 결국 빈센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기 위해 투병중인 그의 어머니를 죽인다. 그 사실을 알게된 빈센조는 '마피아' 출신 변호사임에도 그간 자중해 왔던 봉인을 해제해 버린다. 앞서 이 드라마는 시작과 함께 여주인공 홍차영 변호사(전여빈 분)의 아버지 홍유찬 변호사를 잔인하게 살해한 바 있다. 

인권변호사로 '지푸라기' 로펌을 이끌던 홍유찬 변호사는 바벨 그룹이 철거하려는 금가 프라자의 입주자들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바벨 화학의 불법적인 약품 제조 과정을 폭로하려 한다는 이유로 우상 로펌에 합류한 최명희(김여진 분)의 하수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은 정의롭지만 무능한 아버지에 반발하여 우상의 변호사로 속물적인 삶을 살던 홍차영을 돌려 세운다. 이후 그녀는 지푸라기 로펌을 이어받아 아버지가 하려던 모든 일에 앞장선다.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빼앗긴 두 주인공에게 '브레이크'란 없었다. 거기에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이라는 '가속 패달'이 달린다. 마피아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범죄 집단'이다. 그 출신인 빈센조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억눌러왔던 마피아 식의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는 '허가증'을 손에 쥔 셈이다. 본격적으로 '악'으로 '악'을 징벌할 모든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빈센조>가 극의 초반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죽게 하고, 이제 남주인공의 어머니를 '적'에 의해 살해당하게 하며 그들의 '복수'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SBS의 금토 드라마 <모범 택시>는 아예 설정에서 부터 '복수'를 전제한다.

복수해드릴게요
 
 모범택시

모범택시 ⓒ sbs

 
살인마에게 아버지를 잃은 장성철(김의성 분)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택시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파랑새 지원센터를 설립해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 하지만 법망은 성글고 그 성근 법망을 통해 범죄자들은 유유히 빠져나가는 한편, 범죄 피해자들의 울분과 분노는 달래질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목도한 그는 지원을 넘어 '단죄'의 택시, 모범 택시를 운영한다. 

그리고 그 모범 택시에 역시나 연쇄 살인범으로인해 가족을 잃은 김도기(이제훈 분)를 기사로 들어앉힌다. 모범 택시를 운영에 참여하는최주임(장혁진 분), 안예은(표예진 분)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법'의 사각 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위해 일한다. 첫 사건은 성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법'의 해석에 따라 짧은 형기를 마친 채 유유히 세상으로 나온 조도철을 모범택시로 '납치'하는 것. 이어 보육원 출신으로 지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젓갈 공장에 감금, 폭행, 성폭행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한 여성으로부터 복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지난 16일 방영분에서는 역시나 학교 폭력으로 힘들지 않게 죽으려는 방법을 구하던 한 남학생의 사연이 공개됐다. 

에피소드들을 보면, '법'은 범죄자 처벌에 취약하거나, 범법자들이 사각지대를 이용해 법망을 피해가려 한다. 심지어 젓갈 공장 에피소드나 학폭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듯이 약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은 사안을 방기하거나 가해자와 한 편이 되어 피해를 가중시킨다. 결국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줄 시스템이 없다. 결국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모범택시'를 부를 수밖에. 

피해자들은 죽기 위해 선 한강 다리 난간에서, 죽을 방법을 찾으려 들어간 사이트에서 모범 택시를 부르고, 그렇게 모범택시는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복수'를 해준다. 

<빈센조>의 시작도 본의 아니게 금가프라자 일에 엮여 홍유찬 변호사와 친해지게되면서 부터였다. 그러던 것이 홍유찬 변호사의 죽음, 이제 빈센조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대리적 임무가 '나의 복수'로 본격화됐다. <모범 택시>는 게임의 버튼을 제시하고 피해자 스스로 복수를 선택하도록 한다. 주저하던 피해자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피해자의 복수가 시작된다.

설계된 복수

<빈센조>나 <모범 택시>는 노골적으로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치 예전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보여지듯이 총에는 총으로 라는 식이다. 극단적인 복수의 방식만큼 그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자극적이다. 
 
 빈센조

빈센조 ⓒ tvn

 
극의 초반 빈센조는 장한서 회장의 베개에 주사기를 꽂아 놓는 데 그쳤지만, 이제 자신을 쫓던 킬러들에게 총을 쏘고, 적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극은 회차를 거듭할 수록 보다 자극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복수' 대행을 해주어야 하는 <모범택시> 역시 다르지 않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피디 출신답게 감독은 시청자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한 특정 사건과 설정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폭력적인 가해 장면을 통해 피해자의 처지에, 그리고 그의 복수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복수'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 이상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복수 버튼이 눌러지면 공깃돌을 놀리듯 설계에 의해 가해자들이 반대로 '농락'당하고, 린치당하고, 결국 드럼통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지거나, '사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검찰에 '개혁'이 필요한 건 맞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것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희화화되고, 파렴치범이 된 드라마 속 검찰이나 경찰에게서 개전의 여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드라마 속 이런 설정들은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 부재'를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결국 총을 든 전직 마피아의 복수극이나, 복수 대행극이 아니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해보인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악도 1차적이거니와, 그 악에 대응하는 '선의'의 악 역시 대응 방식은 똑같이 폭력적이거나, 1차원적이다. 과연, 그런 '복수'가 우리 사회를 구할 수 있을까?  

폭력적 방식에 대한 논의는 가해자의 폭력 행진 앞에 무색해진다. 복수의 상황이 극악한 만큼 '적'에 대한 '폭력적 린치'에 무덤덤해진다. 사적 구금에 대한 의문이 범죄자의 악행으로 덮인다. <빈센조> 16회 10.572 %, <모범 택시> 3회, 13.6% (닐슨 코리아 기준)로 케이블과 공중파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빈센조 모범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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