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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월> 포스터
 <당신의 사월> 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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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진도 앞바다의 비극이 벌써 7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 속도다. TV 모니터로 전복된 배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뜨거운 시간을 건너 기억과 망각이 서로 앞다투어 세월호를 밀어내기 시작한 시간이 언제부터였을까.

4월 초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주현숙 감독, 2019)의 개봉 소식과 포스터에 그려진 커다란 노란 리본을 보면서도 이전에 보았던 <부재의 기억>(이승준 감독), <로그북>(복진오 감독)과 같은 세월호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다룬 작품이라고 짐작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봐야지'라며 조금 미뤄뒀다. 그러다 우연히 포스터를 찬찬히 읽어보니 노란 리본 위에 쓰여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을 기억하는 우리의 이야기, 당신의 리본을 보여주세요"

'우리'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항상 '그들과 나', '그들의 슬픔'으로만 생각했던 내게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나의 기억'과 '나의 슬픔'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일단 보자"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는 편안한 기타선율과 함께 평범한 도시의 아침을 비춘다. 출근하는 거리의 시민들, 지하철 풍경, 등교하는 학생들, 아침밥을 준비하는 주부가 차례로 등장한다. 무겁고 긴장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즈음 화면 속 주인공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서촌에서 커피를 파는 카페사장,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인권활동가, 진도 어민 등 특별하진 않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삶은 세월호 이후 달라진 각자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날 밤의 장면 있잖아요. 선수의 앞부분만 부표처럼 떠 있는 장면. 저곳이라도 뚫어야 되는 게 아닐까? 밤새 그 장면을 저만 보지 않았을 거예요. 서치라이트들이 배를 비추고, 왜 배만 보여줬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B급 호러 무비도 아니고. 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람객이 된 것 같은 무기력들." (카페 사장 박철우씨 인터뷰 중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단어, 다큐의 첫 화면에 등장했던 '트라우마'였다. 트라우마는 사건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도 겪게 된다는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박철우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TV 화면으로 배가 침몰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본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였던 그때를 떠올렸다.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 문이 닫히고 창문이 닫혀 있으면 이게 지금 배 안이고, 그 바깥이 바다고 우리를 구해주지 않고 그럼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조수진 교사 인터뷰 중에서)

각자의 리본은 크기도 빛깔도 모두 다르지만

세월호 관련 다큐와 영화에서 본 생존자, 유가족들이 아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고백에 어느새 마음이 축축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의 사월>이 단지 시민인터뷰로 구성된 세월호 다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풍부한 생생한 현장 영상과 뉴스 등을 편집하여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다.

세월호 단식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했던 야만의 얼굴들과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특별조사를 반대했던 뻔뻔한 얼굴들도 등장한다. 단원고 학생들의 제적 처리로 통곡하는 유가족의 모습과 기억 교실 이전, 특별 분향소 철거, 생존 학생의 편지 낭독 등 짧은 기사와 뉴스 이면에 생략되었던 세월호 참사의 다양한 감성을 또박또박 엮어간다.

"(시신을) 수습해와야 했던 잠수사들은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상상할 수 없는데 국가가 그분들도 다 버린 거잖아요. 아무도 돌보지 않고. 신기하죠. 컴퓨터의 딜리트(delete) 버튼이 생각나요. 우리한테 필요 없는 국민은 다 지운 느낌? 너무 끔찍하죠." (정주연씨 인터뷰 중에서)

<당신의 사월>은 각자의 시간 속에 녹아든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감정들이 어떤 무늬와 결로 새겨졌는지 차분히 관찰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고3이라는 이유로 슬픔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지닌 채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던 이유경은 단원고 기억교실에서 봉사를 하며 슬픔에 동참했다.

고 문지성 학생의 시신을 수습했던 팽목항의 어부 이옥영씨는 동거차도에 설치됐던 돔하우스를 옮겨와 자신의 집으로 옮겨왔다. 돔하우스는 세월호 인양작업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로 사용되다가 2018년 9월 철거되었다. 이옥영씨에게 돔하우스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이다.

"언제든지 엄마, 아빠들이 (진도에) 한 번씩 올 거 아니냐고. 그러면 돔이 있는 것하고 없는 것하고 틀릴 것 같어." (이옥영씨 인터뷰 중에서)

<당신의 사월>은 2016년 4월 16일 이후 마음이 편치 않은 개인들이 각자의 노란 리본을 단단하게 조이고, 잘 보이도록 매무새를 고치는 이야기다.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노란 빛깔의 희망들을 내보이며 '잊지 않을게'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각자의 리본은 크기도, 빛깔도 모두 다르지만, 누군가의 리본을 보며 안도를 하고, 나 역시 리본을 달아 누군가에게 '잊지 않을게'라는 조용한 안부를 묻는다. 새삼 주현숙 감독이 2021년 봄 하늘에 매달아준 노란 리본에 마음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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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당신의사월, #주현숙, #세월호, #노란리본, #콘텐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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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비평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디지털과 인문학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강의와 연구, 비평을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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