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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아바나 포레스트에서 마주친 부두교
 
아바나 포레스트
 아바나 포레스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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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는 아바나 베다도를 대충 다 돌았는지 우리에게 가보고 싶은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가 제안했던 혁명광장이나 말레꼰, 혁명박물관 등을 우리가 이미 다 가봤다고 하자 그는 난감해하며 올드카를 아바나 외곽으로 몰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수풀이 깊이 우거진 열대 숲이었다. 명칭은 아바나 포레스트. 여행객 보다는 쿠바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마리오는 이곳에서 쿠바인들이 결혼식을 올리거나 다채로운 행사도 많이 갖는다고 했다.

실제로 차를 세워놓고 숲을 거닐다 보니 여행객 보다는 쿠바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중에서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그네를 타며 결혼식 사진을 찍는 신부도 있었다. 우리로 치면 이곳은 결혼식 야외 촬영을 하는 서울 남산 쯤 되는 것 같았다.
 
결혼식 사진을 찍고 있는 쿠바 사람들
 결혼식 사진을 찍고 있는 쿠바 사람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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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나무와 그 나무를 뒤덮는 넝쿨식물의 거대함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주문 읊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얼핏 보니 생닭을 잡아 그 피를 사람들에게 바르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황급히 우리는 자리를 피했지만, 아바나 포레스트에서는 워낙에 그런 의식이 자주 열리는 듯했다. 숲 곳곳에 닭과 개 등 동물들의 사체와 뼈가 널려져 지나가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끔 했다.

마리오에게 우리가 봤던 장면을 설명하자 그는 그게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의 풍습이고 부두교라고 가르쳐줬다. 좀비의 기원으로도 유명한 부두교는 아프리카 서부에서 서인도제도로 팔려온 흑인들이 퍼뜨린 관습으로서, 산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부두교는 특정한 장소에서 의식을 치른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 아바나 포레스트가 부두교의 성인 듯했다.

짠했다. 아직까지 부두교가 전승되는 건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곳까지 노예로 끌려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종교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결국 쿠바가 아직까지 활기찬 이유는 중국인이나 아프리칸 등 이렇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문화를 잊지 않고 활달하게 교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쿠바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의 힘이고, 발전의 원동력인지도.

다시 올드카를 타고 아바나 시내로 들어섰다. 여전히 거센 파도 때문에 말레꼰 옆 차도는 통행제한이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맛보겠냐며 마리오는 경찰 몰래 부둣가를 질주 한 뒤 우리를 내려주었다. 땡큐! 마리오. 그대가 원하듯이 돈 많이 벌고 행복하기를.

빈부격차의 현실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입가심으로 나온 럼주를 한 잔 걸친 뒤 밖으로 나왔다. 올드카를 탈 때만 하더라도 오락가락 하던 비가 이젠 더 이상 아바나 시내를 활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의 산책은 무리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쏟아지는 비를 잠시 피하기 위해 대로변 건물 안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그곳은 백화점 1층인 듯 고급 브랜드 매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시계나 보석 등 꽤나 비싼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괜히 궁금한 마음에 옆에 가서 보니 그 가격대가 우리나라 돈으로도 100만 원 이상 하는 제품들이 부지기수였다.

놀라웠다. 이 매장은 그 위치 상 여행객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럼 결국 이런 제품을 살 수 있는 쿠바인들이 적지 않다는 뜻 아닌가. 쿠바도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90년대부터 살기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이야기일 뿐, 시간이 가면서 계급 간 격차는 점점 커지는 듯했다.

실제로 가이드가 우리에게 알려준 쿠바의 현실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관광버스를 모는 기사의 한 달 수입이 약 40쿡(약 5만 원)인데 반해, 그 옆에서 가이드를 돕는 현지 가이드의 수입은 약 1,000쿡(약 120만 원)이라고 했다. 쿠바 정부가 관광산업을 외화벌이의 주요 수입원으로 발전시키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의사의 한 달 수입이 약 60쿡인데 반해 여행 가이드의 수입은 1,000쿡이라. 그러니 쿠바 사회에서 여행업계에 종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득권일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많은 엘리트들과 고위급 관료의 자제들이 그 일을 한다고 했다. 우리의 현지 가이드도 쿠바의 터키 주재 대사의 아들이라던가. 어쩐지 다른 쿠바인들과 좀 다른 것 같더라니. 
 
아바나 외곽의 아파트 단지
 아바나 외곽의 아파트 단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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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했다. 어쨌든 쿠바는 모든 인민이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아닌가. 그런 사회에서 250배가 넘도록 수입 격차가 나고, 힘 있는 관료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니. 물론 쿠바 정부는 그래도 의료와 교육은 무료이고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인간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그것은 현실 공산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였다.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국가. 그리고 그 관료주의로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의 빈부 격차. 과연 쿠바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로 인해 자본주의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불어올 텐데 부디 쿠바 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고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쿠바의 색깔
 
원색의 그림들
 원색의 그림들
ⓒ 박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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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스포 거리로 들어섰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체 게바라 티셔츠를 사기 위해 여러 기념품 가게를 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쿠바에 왔는데 오리지널 쿠바산 체 게바라 티셔츠 한 장 정도는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간 기념품 가게들. 그러나 정작 눈에 띄는 건 체 게바라 티셔츠 대신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갖가지 기념품들이었다. 쿠바 국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공예품들과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등. 물자가 부족한 쿠바에서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보다 수공예품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기념품들 중에서도 특히 원색의 그림과 그릇들에 눈이 많이 갔다. 무채색이 익숙한 내게, 화려한 색감은 그 자체로도 매우 도발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뜨거운 적도 지역에서 살아가는 쿠바인들의 정열인가? 과연 그것은 틈만 나면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쿠바인들과 어울렸다. 괜히 올드카 색깔이 화려한 것이 아니겠지.

그러나 쿠바에 마냥 화려한 색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바나 외곽에는 쿠바 혁명 이후 공산주의 철학에 맞춰 지어진 듯한 회색빛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고 차갑고 딱딱한 모습이 경직된 공산주의의 집단주의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화려한 색감의 그림과 무채색 아파트의 공존. 그것은 결국 현재 쿠바가 겪고 있는 현실이었다. 공산주의도, 그렇다고 자본주의도 아닌 사회 시스템. 과연 쿠바는 그들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가까운 미래의 한반도 남북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원색의 그릇들
 원색의 그릇들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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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일행들이 비를 피해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서로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즐겼는지 이야기하기 바쁜 사람들. 그것은 마치 쿠바 판 <알쓸신잡>과 같은 모습이었다.

내일은 아바나를 떠나는 날. 아쉬웠다. 시간이 있으면 쿠바 아바나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을 텐데. 과연 내 평생 다시 이곳에 올 날이 있을까? 다시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었고, 럼주와 함께 각자 살아온 날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바나의 마지막 밤이 흐르고 있었다.

태그:#쿠바,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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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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