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7 재보궐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7 재보궐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모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의 진원지다.

20일자 <경향신문>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이) 지금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백조가 오리 밭에 가면 오리가 돼버리는 것과 똑같은 거지"라며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합류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내비쳤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은 윤석열이 별도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TV조선과의 지난 19일 인터뷰에서도 윤석열이 마크롱 대통령을 모델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석열 총장이 자기 스스로 하나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갖고서 출마하면, 그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대통령후보로서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그는 아래와 같이 마크롱 사례를 제시했다.

"자기 스스로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대통령 출마를 해서 당선이 되고, 당선이 되고 나니까 전통적인 두 정당이 무너지고 마크롱의 앙마르슈라는 정당이 하나의 다수 정당이 되는 그런 형태를 갈 수도 있다고 저는 봐요."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도 마크롱 사례를 추천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아니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정 정당에 들어간다고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예요. 프랑스의 마크롱은 선거 한 번 치러본 적 없는 사람이예요.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하다가 장관 시켜주니까 1년 한 게 정치 경력의 전부지. 이런 식으론 프랑스가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니까 집어치우고 나간 거예요. 그래서 올랑드가 마크롱을 배신자라고 했어요. 국민의 신망을 받은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서 기성 거대 양당(사회당·공화당)이 붕괴했잖아요."

마크롱 모델
 
지난 12월 13일 유럽 이사회 후 기자회견하는 마크롱 대통령 모습. 2018.12.16
 지난 12월 13일 유럽 이사회 후 기자회견하는 마크롱 대통령 모습. 2018.12.16
ⓒ AF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977년에 태어나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27세 때인 2004년에 재무부 금융조사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마크롱은 2006년에 중도좌파인 사회당에 입당했다. 한국과 달리 많은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위험시되는 일이 아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는 사회당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을 지원했다. 이 선거에서 루아얄은 25.9%로 2위를 기록했고,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31.2%로 당선됐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2018년부터 국민연합)의 장마리 르펜은 10.4%로 4위를 기록했다.

2008년에 유대계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 들어간 마크롱은 35세 때인 2012년 대선 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를 지원했다. 올랑드가 사르코지 대통령을 이기고 당선된 뒤 마크롱은 공직으로 복귀했다.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거쳐 2014년에 경제산업디지털부장관에 임명됐다. 사회당을 나오는 계기는 이 시기에 형성됐다. 마크롱법으로 불리는 우파 경제정책을 사회당 정권에서 추진해 좌우 양쪽의 비난을 받은 일은 그가 독자노선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그는 2016년에 영어 march(행진)와 철자가 비슷한 앙마르슈(En Marche)를 창당했고, 이를 발판으로 2017년 5월 대선에 승리하고 뒤이은 6월 총선에서 577석 중 308석을 획득했다. 이 총선에서 공화당(우파)은 112석으로 제2당이 되고, 민주운동(중도파)과 사회당(좌파)은 각각 42석 및 30석을 얻었다. 2012년 총선에서 280석을 얻은 사회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말대로 마크롱으로 인해 기존 양당이 몰락에 가까운 추락을 경험했던 것이다.

윤석열이 독자 노선을 걸을 경우에는 마크롱과 비슷한 면이 생긴다. 정치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을 만든 마크롱과 비슷하게, 윤석열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창당 작업에 임하게 된다. 비슷한 점은 더 있다. 진보적 정당에서 우파 색깔을 드러냈다는 점도 비슷하고, 집권당에서 장관급을 지내다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만둔 점도 비슷하다.

가까운 여성의 존재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마크롱이 22세 연상의 은사를 이혼시키고 결혼한 이력은 그의 언변과 더불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요인이다. 윤석열의 경우에도 장모 최은순의 존재가 대선 가도에서 도덕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유사성을 갖고 윤석열에게 마크롱의 길을 추천하는 것은 섣부르다. 독자 노선으로 새로운 정당과 새로운 정치구도를 만들어낼 개인적 역량이 윤석열에게 있는가 하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마크롱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정치환경이 한국에 존재하는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정치환경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민주연합의 지스카르 데스탱을 제치고 대통령이 된 1981년 이래로 프랑스 정치는 외형과 달리 실질적으로 양당체제 비슷하게 운영됐다. 이런 시스템이 2010년대 들어 극우세력의 영향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동유럽을 휩쓰는 극우 열풍이 프랑스 정치권도 강타한 결과다. 2017년에 <의정연구> 제23권 제2호에 실린 오창룡 당시 서울시립대 연구교수의 논문 '2017년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과 프랑스의 정당정치'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5공화국이 수립된 1958년부터 1970년대까지 드골주의 우파와 자유주의 우파, 공산당과 사회당이 경쟁하는 4당 체제가 유지되었고,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중도우파 연합과 중도좌파 사회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양당체제가 지속됐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에는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이 크게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양당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낙태 반대, 외국인 이민 제한, 사형제 부활, 유럽연합(EU) 반대 등을 외치는 국민전선은 2009년 유럽의회 선거 3석 획득, 2010년 지방의회 선거 118석, 2012년 총선 2석, 2014년 유럽의회 24석, 2015년 지방의회 선거 356석, 2017년 총선 6석, 2019년 유럽의회 선거 21석 등을 기록했다.

대선 득표율을 보면, 눈이 더욱 크게 떠진다. 국민전선 창당 주역인 장마리 르펜은 1988년 대선에서 14.4%(1차 투표 기준), 1995년 대선에서 15.0%, 2002년 대선에서 16.9%, 2007년 대선에서 10.4%를 기록했다. 그는 2002년에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그의 딸인 마린 르펜은 2012년 대선에서 17.9%(3위), 2017년 대선에서 21.4%(2위)를 기록했다. 2017년에는 결선 진출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극우세력이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2017년 대선에서 한국 극우정당인 새누리당의 조원진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은 0.3%다. 작년 21대 총선에서 전광훈의 기독자유통일당과 조원진의 우리공화당을 포함해 11개 극우정당들이 기록한 득표율은 도합 4.1%다. 프랑스 극우세력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기침체가 확산되는 속에서, 극우세력의 급부상은 정치안정을 희구하는 프랑스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기성 정당들에도 위기감을 주었다. 이는 그런 위기를 막는 데 역부족인 기성 정당들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고, 젊고 유능하며 언변이 탁월한 데다가 흔치 않는 결혼 경력을 가진 마크롱이 프랑스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특별히 혁신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내세운 대선 공약은 그리 신선하지 않다. 2017년 8월에 한국경제연구원이 발간한 <KERI 칼럼>에 실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당선의 의미'에서 이 연구원의 유정주 기업제도팀장은 마크롱의 공약을 이렇게 정리했다.
 
"대표적인 경제공약 중 하나는 세금부담 완화다. 법인세를 현행 33%에서 2022년까지 25%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부유세·주민세 등 국민이 부담하는 각종 세금도 면제하거나 감면한다. 또한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의 해고 부담 완화를 위한 노동개혁도 추진한다. 공공부문도 축소한다."
 
새로운 시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그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준 것은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중도세력을 공고히 해 극우세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서가 마크롱 신드롬의 동력이었다. 극단적 정치세력을 막고 정치안정을 이루려면 중도파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중도적 가치로 극우를 견제하려는 프랑스인들의 의지는, 중도파 거물인 프랑수아 바이루 전 교육부장관이 극우 견제를 명분으로 마크롱 지지를 선언한 일이 대선 판세를 바꾸는 데 기여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위 논문은 "2017년 2월 22일 바이루는 프랑스의 분열과 극우정치의 부상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마크롱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후 줄곧 3위권에 머물렀던 마크롱의 지지율이 (이후) 급등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에는 여야 정당을 공통적으로 압박할 만한 극단주의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우건 극좌건 마찬기지다. 그래서 극단주의에 맞서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힘들다. 유권자들이 기존 여야 구도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새로운 인물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인식이 생성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흉내 냈다간 낭패 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사의를 표명하던 중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사의를 표명하던 중 눈을 감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촛불혁명 이후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이 상승하고 이것이 정치권에 압력이 되고 있지만, 그런 압력에 맞서 여야가 단합할 필요성 역시 아직은 제기되지 않고 있다. 주류 정치권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주류 정치권을 뒤섞어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낼 필요성이 아직은 부각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크롱 같은 제도권 정치 신인이 독자노선을 통해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만한 여건이 지금의 한국에는 형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김종인 전 위원장의 말만 믿고 마크롱을 흉내 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누구라도 다 그러하다. 윤석열도 예외가 아니다.

김종인은 학자 출신이며 책사 스타일이다. 정치적 판세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그런 인물이 마크롱 출현의 정치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부정확한 분석이 나온 데는 국민의힘을 '흙탕물'로 생각하는 그의 인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는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흡수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한다. 이는 흙탕물이 백조를 불러들이는 일이라고 경계한다. 윤석열이 만든 정당에 국민의힘이 흡수되는 것은 몰라도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흡수하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이런 정서가 '윤석열이여, 마크롱을 따르라'는 부정확한 결론을 낳는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TV조선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그러니까 국민의힘이 (윤석열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으면 국민의힘을 따라가는 후보가 생겨날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도 생각을 할 수 있고. 외부의 큰 대통령 후보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갖고서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할 것 같으면, 거기에 국민의힘이 같이 합세할 수 있는 그런 방법도 있고 그런 거예요."

태그:#윤석열, #김종인, #국민의힘, #제3지대, #마크롱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