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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소라의 주위에는 항상 동물과 꽃들이 함께 합니다. 학교에서 키우는 오리들과 놀고 있는 소라.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소라의 주위에는 항상 동물과 꽃들이 함께 합니다. 학교에서 키우는 오리들과 놀고 있는 소라.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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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꿈틀리에 온 지 한 달이라는 흘렀다. 사실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할 일을 하고 수업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까지 찾다 보면 이미 해는 꼴딱 넘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사이 나는 변했다.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빨리 감기를 한 것 마냥 흘러간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흐른 것이 아니었다. 내게 여러 가지 추억을 남기며 흘러갔다. 나는 여태껏 그 기회들을 전부 무시한 채 살아왔다. 그 사실을 꿈틀리에 와서야 깨달았다. (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버린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심어주었으니까.)

이제는 많이 다르다. 더 이상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느껴질 뿐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마음가짐과 주위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그것들이 내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울한 사람

과거의 나는 분명히 '우울한' 사람이었다. 즐거운 일이라고는 간간이 일어나는 작은 이벤트 따위에 불과했다. 마치 기본 상태가 '즐겁지 않음'으로 설정된 아바타 같았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사람은 고통스러웠던 일을 잊어버리기 힘들다던데 나 역시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여전히 남아 계속해서 영향을 줬다. 때문에 내게는 도움이 조금 필요했다.

전문가를 찾기로 했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내 생활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물론 여전한 구석도 있었다. 발표를 위해 사람들 앞에 설 때면 불안함에 떨고는 했다. 언젠가는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다니기를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내 눈가에 붙어 흔들리던 허전함의 출처를 찾아 지워주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남아있는 한 언제까지고 이 허전함은 남아있을 것이며 갑작스럽게 고개를 내밀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빠의 제안
 
미술 디자인반 수업중. 드림캐쳐를 만들고 있는 소라.
 미술 디자인반 수업중. 드림캐쳐를 만들고 있는 소라.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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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먼저 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빠였다.

'꿈틀리라는 곳이 있는데, 1년 쉬어가는 학교다. 농사도 짓고 오리도 있다. 별도 잘 보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으로 가득한 이 학교는 마치 혜성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여타 다른 혜성과는 다르게 밤하늘에 머물러 숨을 쉬고 있었다. 내 어둑한 밤하늘에 하나의 빛이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고민했다.

'기숙학교라니, 사이가 틀어지면 일 년 내내 힘들겠다.'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나는 1년 꿇은 사람이 되는 건가? 사회의 시선이 나쁜 건 아닐까? 내신도 바닥을 치는데?'
'그곳에서 내가 의미 없는 일 년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색의 구름이 몰려왔다. 알록달록한 비구름이었다. 그러나 결국에 선택한 것은 꿈틀리였다. 여러 가지 방안 중 가장 내게 맞을 거로 생각했다.

'일 년 꿇는 게 아니라 쉬는 거다!'
'내 인생을 다시 다지는 계기이다!'


그런 생각을 품고,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걱정을 품은 채로 과감한 선택을 했다. 어차피 전부 보편적인 길과는 다르게 어지럽혀진 길, 차라리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야 말겠다. 그렇게 어영부영 꿈틀리에 왔다.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정 맞지 않으면 도중에 나갈 수도 있다고 했지 않나'

나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입학식 날 친구들 앞에서 별명이 지어진 이유를 설명하고 나니 손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결정을 끝마치고 예비학교를 문제없이 보냈다. 꿈틀리에 오기 전 했던 수많은 걱정은 어느새 뒷전이었다. 나는 웃고 있었다.

밝아진 얼굴
 
농사 수업중. 감자심기. 감자의 눈을 찾고 있는 소라.
 농사 수업중. 감자심기. 감자의 눈을 찾고 있는 소라.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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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에 온 뒤로 '밝아졌다'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내 스스로도 그 사실을 크게 실감했다. 사람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학교생활은 더없이 편안했다. '학교' 그 자체에 큰 반감을 지녔던 나에게 '학교가 즐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곳이 꿈틀리였다. 정말로 즐거웠다. 학교에서 어깨를 펴고 활짝 웃으며 생활한다. 내가 살아온 곳과 너무 달라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변했다. 좋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참으로 상쾌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나는 많이 변했고, 미래를 볼 줄 알게 되었다. 과거의 그림자를 떼어낼 준비를 하며 앞을 바라볼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옆을 본다. 조금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며, 옆을 보지만 멈추는 것이 아닌 삶을 살기로 했다. 고장 난 태엽이 다시 돌아간다. 더 이상 멈춰있기만 하기는 싫다. 남은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언제나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옆을 보고 걸으며, 앞을 볼 채비를 한다. 다만 천천히,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나는 걸어 나갈 준비를 한다. '옆을 볼 자유' 덕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꿈틀리인생학교 6기 박지우(별명 소라)가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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