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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작성 중인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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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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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 중에 택할 수 있는 연장입니다.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가 생각한 답입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글쓰기는 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왜 나는 글쓰기라는 연장을 삶의 도구로 선택한 것일까요? 시중에 판매되는 책 중에는 글쓰기가 '삶의 무기'라고까지 표현 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는 내 삶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 시켜 줄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발언이 공기 중에 휘발되어 날아가지 않고, 텍스트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글쓰기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도 변화의 미풍을 불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재밌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 자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전혀 없지 않을까요.

독서 토론이나,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까닭에 개인적으로 제게 자녀의 글쓰기를 부탁한다는 학부모를 종종 만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이제 앞으로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방법론 때문에 헤매다가 저를 찾아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담은 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정중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과외 형식의 글쓰기 교육은 제가 바라는 삶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여겨 마음 담아 거절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 한 권 낸 적 없는 무명인 제게 찾아오는 까닭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아시고 찾아왔냐고 물으면, 제가 오마이뉴스에 썼던 책 서평이나, 지역 주간 신문에 연재했던 몇 편의 글을 보시거나, 학부모로 참관했던 독서토론 수업 직후에 연락을 주셨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도 않거니와, 수업을 진행하면서 말하기가 청산유수였거나 적절한 제스처를 선보이며 참여한 학생에게 감동을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말을 버벅거리기도 하고,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폰트가 깨져 당황하기도 하고, 짧게 편집한 영상이 학교 교실 내 있는 컴퓨터와 맞지 않아 먹통이 된 적도 빈번했습니다.

토마스 프리드먼이라는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가 있습니다. 이분은 예수 탄생 이전과 이후를 뜻하는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를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뜻하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바꿔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시대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스레거나 농담으로 듣기에는 그 말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분명 우리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삶의 형태가 코로나 이전의 시대처럼 살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생활 습관인데, 코로나 19는 그것마저 흔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글쓰기이냐, 더 나아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글쓰기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가 그것입니다, 이 질문는 좀 더 토의를 해 볼 만합니다. 글쓰기의 본질이 삶의 변화를 위한 연장이라고 한다면, 저는 앞으로의 글쓰기의 방향이 단순 지식 전달의 택배꾼 노릇을 하는 텍스트 생산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더 나아가 내 공동체를 들여다보며 삶을 꾸리는 소회의 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 공동체 글쓰기, 지역의 무형자산인 설화, 전설, 민담, 개인서사를 아우르는 콘텐츠 글쓰기,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브랜드 글쓰기가 그렇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러한 글쓰기 양식들이 종종 있어왔지만, 어쩌면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힘을 얻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닌, 소재와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러한 플랫폼이 세상에 나와 있고, 좀 더 확장력이 커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공유하고 싶어하고 궁극적으로 물리적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미디어의 OTT(Over The Top) 산업은 기존 미디어 사업의 지형을 바꾸었습니다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송출 하는 서비스는 기존 방송국 중심의 권력까지 분산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여기에 만들어진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시청자층이 역으로 그것에 대해 댓글, 유튜브 방송 등으로 새로운 양태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모방을 뜻하는 밈에서 벗어나 패러디하고 기존 방송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서사를 창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다양한 개인 방송 플랫폼을 활용해 중계하기도 합니다.

인문 건축가인 유현준은 <공간의 미래>에서 학교 권력이 분산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온&오프라인 공간을 병행하는 지금의 수업의 양상을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산업화의 효율성에 기초하여 건축된 학교의 교실은 지식정보를 갖은 선생님을 일방향적으로 학생들이 바라보게 설계됐습니다. 교사 중심의 말하기와 평가 방식, 시간 설계가 교사로 하여금 권력을 갖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교사를 관리하는 교장은 학교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운동장에 그러한 학생들을 도열시켜놓고 훈육하는 교장의 모습은 권력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변화의 과도기에 서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글쓰기가 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쫓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현 주소를 자각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는 고전이라는 가치를 익히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 오래되고 낡은 것이 아닌 시대에 따라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세기를 걸쳐 책의 형태로 서가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글쓰기는 사람이 살아가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컵에 담을 것이냐 그릇에 담을 것이냐의 차이는 있을망정 중요한 것은 사람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내 생애 처음 써 보겠다고 계획하시고, 이런 의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글이라는 것이 결국 나와 다른 사람의 소통의 매체라고 한다면, 그 '다른 사람'이 내 머릿속에 있냐라는 물음입니다. 피상적인 '다른 사람'이 아니라, 펌을 했는지, 긴 머리를 했는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을까. 무엇을 알고 싶어할까. 무엇을 공감하고 싶어할까 등등의 질문 목록을 뽑아 봐야 합니다. 그 '다른 사람'이 최초의 독자가 될 '나'일 수도 있습니다. 쓰는 사람 머리 속에 '나'는 있을까요. 그게 있는 상태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글을 써야겠는데, 쓸 것이 없어요'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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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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