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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이 나와 다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타인이 나와 다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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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학교에 피부색이 어두운 학생이 있다고 한다. 등굣길에 금방 눈에 띄었다고, 그런데 한국말을 곧잘 하는 것 같아 신기했단다. 아마 다문화 가정 아이인가 보라고,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라며 모녀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5년 전 작은 아이 초등 4학년 때 전학 왔던 금발머리 여자 아이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엄마가 러시아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호기심 어린 호의를 베풀며 친절히 대했지만, 호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눈에 띄는 외모와 발음이 약간 다르다는 걸 핑계 삼아 몇몇이 아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아이는 한 영악한 아이의 주도로 왕따에 내내 시달리다가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한 채 2년여 만에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 가고 말았다. 어두운 얼굴로 늘 혼자 어디론가 바삐 향하던 아이를 우연히 지나칠 때면 마음 한구석에 안쓰러움이 차오르곤 했지만, 내 아이와는 반이 달라 관련 없는 아이라며 외면하곤 했다.

그 아이의 괴로운 심사가 충분히 헤아려졌으면서도 우리 아이에게 잘 대해주라고 선뜻 권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도 어렵게 빠져나온 그 영악한 아이의 괴롭힘에 다시 휘말릴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가끔 금발 아이 생각이 나면 적잖이 미안했고 용기 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떠나간 곳에서는 마음씨 좋은 친구도 만나고 잘 자라기만을 뒤늦게 바랄 뿐이었다.

최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다문화 청소년 2245명과 그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정 10가구 중 3가구가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또 10가구 중 7가구는 차별에 대해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한다(헤럴드 경제, 2021년 4월 23일 보도 참고).

기사를 보고 궁금해지는 건, 차별받은 일이 있는데 사과를 요구하지도,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그저 참고 넘어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섬처럼 단절된 사람들

나와 뭔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깎아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출신 대학이 달라서, 세대가 달라서, 직업이, 사는 동네가, 생각이 달라서 등등, 타인이 나와 다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얄팍한 기준들을 들이대며 타인을 나와 위계 지어 갈라놓고는 불손한 우월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변치 못한 우월감을 무리와 공유하며 약자를 밟고 올라서서 느끼는 폭력의 왜곡된 즐거움을 주변에 전염시킨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물 위에 떠있는 작은 불처럼 늘 위태롭다. 나도 언제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든 당한 조롱과 수모는 이해받고 공감받지 못한다면 상처가 되어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다시는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며 살 수도 있고, 나 하나 지켜내기에도 버거워 타인을 이해할 여력까지는 도저히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설령 누군가 당하는 걸 목격한다 해도 외면할 수 있고 말이다.
 
   그림자가 되어 홀로 아파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림자가 되어 홀로 아파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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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너도 나도 주위 사람들을 그림자 대하듯 하다가 안타깝게도 섬처럼 단절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다들 각자도생으로 이 차가운 세태를 버티느라 홀로 아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가 김애란은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가리는 손'에서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아빠에게서 태어난 15살 재이를 통해 세상의 이런 세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상처를 이해받지 못한 아이가 폭력을 당하는 타인을 어떻게 외면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기도 모르게 폭력의 왜곡된 즐거움에 전염될 수 있는지를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재이는 어두운 피부색을 가리기 위해 비가 와도, 늦은 밤에도 얼굴에 선크림을 하얗게 바른다. 10살 즈음 교회 친구들에게 받은 수치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재이를 기르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재이가 수치를 당했을 때 그 아픔을 모르고 지나친다. 뒤늦게 안 뒤에도 재이에게 물어보지 못한다. 재이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인데 말이다.

소설 속의 재이 엄마는 말한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품이 드는 일이라 피곤해지면 언제든 던져 버릴 수 있다고. 그런 세태에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세상의 냉혹함을 견디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않는다면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만약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할 수 있다면 반대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뜨겁게 노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곁에 있는 누군가 아파할 때, 진심으로 마음을 물어봐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곁에 있는 누군가 아파할 때, 진심으로 마음을 물어봐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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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책 <당신이 옳다>에서 사람의 최소 생존 조건으로, 실력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또는 비상한 머리와 출중한 외모가 없어도,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중요성을 이렇게 전한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떤 거니?', '네 고통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니?' 만약 그의 대답이 없어도, 그가 대답을 피하거나 못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 존재에 주목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존재를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 요인이다. (중략) 자신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p.107~108)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서로 헐뜯고 홀로 아파하며 그림자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옳다>에서 전하는 것처럼, 누군가 아플 때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고 마음에 마음을 포개어 그 존재에 주목하려 노력해 보고 싶다. 

내가 아플 때도 누군가 진심으로 마음을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줄 수 있을 만큼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그림자,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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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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