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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갖가지 나물들이 식탁에 오르며 겨우내 닫혀있던 식감과 미감을 되살린다.
나 역시 무겁고 텁텁한 입맛을 살려볼까 하고 텃밭을 갈기 전에 사방에서 솟아난 나물들을 캤다. 동장군을 잘 이겨낸 대표적인 봄나물인 냉이와 어린봄동배추, 시금치를 가져와서 나물무침, 된장국, 쌈으로 맛있게 먹었다.

최근 영화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의 에피소드가 연일 화제다. 봄나물로 미나리가 상종가를 쳐서 미나리 농사를 하는 농부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인터넷 기사도 읽었다. 학생들의 중간고사가 끝나는 주간이라, 내친김에 영화 <미나리>를 보고 싶다고 하니 아들이 예약했다.

코로나 이전 해 영화관에 갔으니 햇수로 3년 만에 영화관에 간 것이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영화관의 관객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단 2쌍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영역이 예술분야라는 말이 실감 났다. 영화도 이럴진대, 지역에서 작은 음악단을 이끄는 후배가 소독업체를 병행하는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영화 <미나리> 속 한 장면
 영화 <미나리> 속 한 장면
ⓒ 영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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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흥미롭게 바라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들이 말하는 대사,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세대든지 이민자라면 겪었을 그 나라 말의 습득을 위한 어려움과 문화적 차별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민 역사 40년을 넘어선 이모와 삼촌 가족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했다. 나의 가족들 중 큰이모는 국제결혼을 해서 가족들을 초청했다. 젊은 삼촌과 이모들은 미국에 대하여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기에 그 초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인세대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곳에 가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가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럽고 서러운 사연이 가득했다.

주인공 부부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가 이민을 결정하며 서로의 구원자로서 꿈꾸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병아리 감별사라는 일을 하며 10년을 보낸다. 한국에서 전문직에 있었어도 이민하는 순간, 세탁소 일, 식당 서빙 일, 마트 캐셔 일을 포함해,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하며 이민생활에 정착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얘기다. 나의 가족들도 10년 이상 영화와 같은 삶 속에서 살았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영어습득이 어려웠던 성인들에 비해 삼촌, 이모의 자식들은 영어를 빨리 배우고 익혔다. 10년이 넘도록 영어로 일상생활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어른들을 대신해 영어를 생활도구로서 활용하고 부모들을 도와주었다. 하다못해, 아파서 병원에 가도 부모가 말을 못 할 때,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통역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모들은 소위 브로큰잉글리쉬(Broken English)를 구사해야 했다. 영화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나 부모와 아이들과의 대화에는 불완전한 영어 문장이 많다.

할머니 : 아구, 넌 pretty boy, pretty boy야!
손자 : I'm not pretty. I'm good looking.

할머니 : 미나리는 wonderful이란다.
손자 : Wonderful Minari.


일반적으로 Broken English(브로큰 잉글리쉬)는 정해진 문법규칙을 벗어나서 올바른 표현으로 인정되지 않는 문장이나 단어를 뜻한다. 이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용어로 콩글리쉬(Konglish)도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수업을 하다가 자주 인용하는 콩글리시의 예로서 에어컨(air-con: air conditioner 줄임말), 리모컨(remo-con: remote control), 셀카(sel-ca: selfie), 아파트(apart: apartment) 등을 설명한다.

브로큰 잉글리쉬의 예로, 학교시험 볼 때 남의 것을 훔쳐보는 것을 뜻하는 커닝(cunning)의 원래표현은 '치팅(cheating-부정행위를 하다)', 과식하거나 잘못 먹은 것을 토할 때 쓰는데 오바이트(over eat)의 바른표현은 '보밋(vomit-토하다)'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꼭 한 가지를 덧붙인다. 콩글리시든 브로큰 잉글리쉬든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과 '용기'라고 말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정확한 표현구사에만 매달리다 보면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서 아무 말도 못 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영어시장에 쏟아붓는 교육비(공사교육포함)와 학습스트레스, 그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 수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영화 <미나리>에 대한 뉴스는 학생들에게도 탑이었다. 그중 배우 윤여정씨의 인터뷰 기사에서의 영어표현에 관심이 많았다. 그 배우의 말솜씨가 어땠는지 물어보니, 대답은 거의 동일했다. "우리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었어요. 단지, 말을 하라고 하면 틀렸을까봐 떨려서 못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는 질문에 윤여정씨가 답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소통이 목적이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영어도 역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단어를 몰라도 내가 아는 범위의 단어를 사용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윤여정씨의 영어를 두고 '브로큰 잉글리쉬의 당당함'이란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 '아마추어(Amateur)'란 말은 원래 비전문가를 뜻하기 이전에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즐기는 사람' 이란 표현이 있다. 우리 모두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되는 프로페셔날(professional)이어야 되는가. 때론 그냥 프로(pro)만 가지고도 소통이 되는 세상이 더 정겹다.

영화 <미나리>는 진짜 원더풀(wonderful)이다. 보기만 해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달 오월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미나리>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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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화미나리, #윤여정영어, #소통과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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