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집행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집행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22년 역사 중 최근 2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 아래서 진행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중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 전주국제영화제는 전면 무관객 및 장기 상영회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올해는 제한된 인원 대상으로 오프라인 및 온라인 상영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개막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현재까지 순항 중이다. 지난 3일 영화제 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상영 회차 중 약 97%가 매진을 기록했고, 국내 OTT 업체와 협업한 온라인 상영 역시 지난해보다 약 30% 상승한 4천여 건(상영횟수)을 달성했다.

영화제 중간 평가에 앞서 사무국에 마련된 인터뷰룸에서 이준동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코로나 19 창궐과 동시에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그는 "정상 개최를 한 게 잘 한 결정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OTT에 전향적 자세

"관객도, 영화 창작자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들은 감독님들의 첫 연출작이거나 두 번째 연출작인데,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 분들이 긴장한 모습을 보는 것도 영화제의 맛이다. 진작 이런 기회를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까지 사용했던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Film Goes On'(영화는 계속된다)로 바꾼 데에서도 뭔가 결기가 느껴진다. 방탄소년단의 'Life Goes On'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로 내부 합의를 거쳐 결정한 새로운 슬로건이라고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 등을 겪으며 표현의 해방구를 자처한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이 예전의 슬로건이었는데 이제 유효기간이 됐다고 본다. 코로나19가 닥치고 OTT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위기인 건 알겠는데 결국 영화라는 건 총체적 경험이잖나. 극장까지 직접 가서, 표를 사고, 누구와 같이 관람하고, 여운을 누군가와 나누는 경험이 바로 영화 관람이라고 본다. 집에서 넷플릭스나 웨이브를 보는 것과는 다르지. 그래서 영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 것이다. 삶이 계속돼야 하듯 말이지."

지난해 전주영화제가 전격 도입한 OTT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상영 방식에도 이 집행위원장은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극장 관람 원칙을 지키면서 온라인은 보조적으로 활용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전주영화제를 시작으로 지난해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이 국내 OTT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상영 방식을 활용했다.

"코로나 때문에 여전히 크게 걱정하는 분도 있고, 전주에 접근 자체가 불가한 해외 거주자도 계시고, 게다가 방역 지침을 보수적으로 적용해서 상영관의 30% 수준의 좌석만 풀어놓고 있으니 표를 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도 온라인 상영은 유효하다. 극장이 주된 공간인 건 명확하지만 보조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각 영화제들이 개별적으로 업체를 선정하고 협상하는 방식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적 플랫폼을 만들어 영화제들이 활용하게 하는 방식을 여러 집행위원장들이 건의하고 있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모습.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모습. ⓒ 전주국제영화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모습.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행사 모습.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영화제를 향한 우려와 비판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멀게는 20년 전부터 가깝게는 2년 전까지 전주영화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도 적지 않았다. 2년 전엔 전임 프로그래머 동반 사퇴가 있었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한 프로그래머 해임 과정에서 불거진 이사회와의 갈등, 2001년 조직위원회와 갈등을 빚은 프로그래머들의 동반 사퇴 등이 그것이다. 이사회 구성 및 정관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고 인원이 자주 바뀌기에 영화제가 중장기적 목표를 과연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전주시가 관광발전도시로 지정돼 5년에 걸쳐 정부 예산 지원을 많이 받게 됐다. 외국인 대상설문에서 전주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한 답이 영화였다. 한옥, 비빔밥 등 다른 게 많은데 전주영화제가 시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거지. 전주가 대중적 영화들, 다른 영화제와 비슷한 작품만 틀었다면 과연 이런 이미지 구축이 가능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실험적, 도전적 영화를 틀어 온 선택이 맞았다는 거다. 나도 인정한다. 전주영화제 정체성에 대해 세계 영화인들도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다만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밀착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트라이베카 영화제 등 전 세계의 작은 영화제를 보면 지역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네 행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도 그런 인식을 높이기 위해 올해 골목상영도 하고, 전주 지역 영화인에 한해 제작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을 만들었다. 앞사람들이 영화에 집중했다면 이젠 지역 밀착성을 높이고자 한다. 전주 시민이 전주영화제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야 한다."


개막식에서 강조한 전주 독립영화인의 집 또한 3년 뒤 완공될 것이라 그는 내다봤다. 전주시에서 해당 부지를 완전 매입했고, 2022년 착공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2019년부터 일을 시작한 문성경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지난해 새로 영입한 문석, 전진수 프로그래머를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수석 프로그래머 직함을 없애고 세 명이 수평적으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여러 훌륭한 프로그래머들이 국내에 있지만 내겐 일단 안정성이 중요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인 만큼 팀플레이가 있어야 하는데 수석이란 직함을 붙이는 건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영화제 프로그램에 대해 책임지는 건 내가 지면 되지. 한 사람에게 다른 직위를 주는 게 지금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문성경 프로는 젊은 만큼 에너지도 좋다. 두려움 없이 여러 제안도 하고 일에 참여하는데 사실 적당히 하자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게 없다. 위원장 입장에선 참 좋지. 내가 시키면 부담일 테니 말이다. 문석, 전진수 프로그래머도 기대 이상으로 해주시고 있다. 사무국이야 본래 안정적이었고. 기존 전주영화제가 가져온 정체성을 나도 그렇고, 프로그래머들도 동의했다. 거기에 맞는 영화를 찾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실험적 영화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2년 만에 활기를 띤 영화의 거리를 보며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하나의 바람을 드러냈다. "올해 전주영화제가 참 소중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창작자들이 교감하는 순간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행사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점점 영화 담론을 깊이 있게 담을 매체가 없어지고 한 줄짜리 평점만 남고 있는데 올해 담론 생산 기지가 돼 보자는 취지로 컨퍼런스에 힘을 줬으니 꼭 들러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영화제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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