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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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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외교'가 북한을 점점 압박하는 모양새다. 북한인권특사가 조만간 임명되리라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G7 외무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도 북한 인권이 비중 있게 거론됐다.

런던 시각으로 지난 5일 발표된 공동성명은 "우리는 북한이 모두를 위한 인권을 존중하고 관련된 모든 유엔 기구와 협력할 것"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권상황 특별보고관(the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DPRK)의 접근을 허용하고 납치 문제를 즉각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표명했다. 일본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납치 문제까지 포함해서 인권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이다.

미국 내부의 아시아계 및 흑인의 인권 실태 역시 심각하지만, 미국은 외국 인권 문제를 자신 있게 거론하고 있다. 동맹국인 한국을 상대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으로 약칭되는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나'가 아닌 '남'을 상대로 호통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월 15일, 화상 회의로 진행된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한반도 인권에 대한 시사점'이란 청문회에서 톰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국회에서의 압도적 다수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권력이 도를 넘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이 통과되는 것뿐 아니라 북한 문제에 관여해온 시민사회단체를 괴롭히기 위해 검찰 권력을 정치화하는 것을 우리는 봤다"라고 비판을 가했다.

국무부 역시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4월 30일에 국무부 대변인이 "미국은 북한 내 인권문제와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증진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및 탈북민 단체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바이든의 인권외교는 중국과 러시아도 겨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시각 2월 11일 시진핑 주석과의 첫 번째 전화통화에서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백악관 홈페이지의 '브리핑룸'은 통화 내용 일부를 이렇게 소개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이징의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경제적 관행, 홍콩에서의 탄압, 신장(위구르)에서의 인권 침해, 타이완(대만)이 포함된 지역을 향한 점증하는 적극적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미국 시각으로 1월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야권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탄압에 우려를 표하고 그를 석방해줄 것을 요청했다. 바이든의 인권외교가 의욕적이고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인권외교가 본격 부각된 것은 1970년대다. 이 시기의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잘못된 개입과 예상외의 패배로 인해 영향력 감소와 도덕적 권위의 추락을 경험했다. 닉슨 대통령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 역시 미국 정부의 윤리적 위상을 떨어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인권외교의 필요성이 부각됐고, 이를 배경으로 1976년 11월 2일(미국 시각) 인권외교를 표방하는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미국은 베트남전쟁 패전이나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력 약화와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자국의 권위가 현저히 낮아지는 현실을 체험했다. 그에 더해 트럼프의 과도한 '아메리카 퍼스트'로 인해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상황도 체감했다.

이로 인한 미국 내부의 위기감 속에서 조 바이든이 등장해 '인권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바이든은 대통령후보가 되기 전부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인권이 외교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을 구하고자 인권외교를 표방한 카터에 이어 바이든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인권외교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자국의 도덕적 위신 및 영향력 약화에 직면해 인권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미국 행정부 혹은 민주당 정권의 패턴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윤리적으로 자신감 넘치는 상태에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나'가 아닌 '남'을 상대로 도덕적 호통을 치는 일이 일상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카터의 인권외교와 다른 점

미국의 위상이 추락한 상태에서 미국의 권위를 되살리고자 인권외교를 비장의 카드로 꺼내들었다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바이든의 인권외교와 카터의 인권외교에는 현저히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일례로, 바이든의 경우에는 인권 문제를 매개로 상대 진영을 압박하고 친미 진영의 결속력을 높인다는 목표가 꽤 명료하다. 대북전단금지법을 고리로 동맹국인 한국까지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이 의도하는 것은 동맹국인 한국의 인권 개선이 아니라 대북 압박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외부의 개입이 좀더 수월한 상태를 만들고자 함이지, 정말로 한국의 인권을 개선하고자 함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카터 행정부는 인권 문제로 상대 진영을 압박하기보다는 상대 진영과의 협력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실었다. 2019년 8월 <역사비평>에 실린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의 논문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카터 대통령은 상호의존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공산국가와도 협력할 수 있고 세계가 상호의존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결국 세계의 협력을 증진할 것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군사적 요인을 줄이고 지배적인 국가로부터 개별 국가의 자율성을 증대하여 협력을 통해 공존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카터는 동맹국 인권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일침을 던졌다. 적대 진영을 비판하기 위한 고리로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맹국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렇게 했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정권이 호된 경험을 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감축을 연계시켰다. 돈을 더 안 내면 미군을 감축시킬 수도 잇을 것처럼 겁을 줬다. 반면,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을 박 정권의 인권 탄압과 연계시켰다. 위 논문은 카터 행정부가 출범한 1977년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한 정책의 양대 축인 철군 정책을 인권과 연계하고, 카터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방법 등을 통해 출범 직후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으로 사형이 선고된 김철현을 무기징역으로 감형케 하였다.

특히 카터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보인 사안은 '명동사건 구속자 석방'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스나이더 주한미대사에게 직접 석방운동을 하도록 지시하였고, 본인도 3월 박동진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가 미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한국에 압력을 가했다."

훗날 박근혜 비서실장을 지내게 될 김기춘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1975년에 발표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된 일에 대한 박 정권의 탄압에 대해 카터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국대사 등을 움직여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그 전과 그 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위의 사례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박 정권의 초헌법적 국민지배 수단인 긴급조치의 철회를 요구하기는 일도 있었다. 1979년에 야당 총재인 김영삼이 탄압을 받자 카터 대통령이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미국대사를 항의 차원에서 소환하는 일도 있었다. 카터 행정부는 북한을 압박할 목적이 아니라 한국 국민을 돕고 독재정권을 압박할 목적으로 한국 인권을 거론했던 것이다.

물론 카터의 인권외교 역시 완전하지 않았다. 동맹국인 이란 팔레비 정권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미국 국가권력이 전두환을 사실상 돕는 것을 차단하지 못했다. 이런 모순이 있기는 했지만, 카터의 인권외교가 어느 정도는 바람직한 모습을 띠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15일 밤(한국시간)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고 있다.
▲ 미 의회 인권위,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개최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15일 밤(한국시간)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고 있다.
ⓒ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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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바이든의 인권외교는 훨씬 더 불철저하다. 이것은 상대 진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그냥 무시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 이것이 세계 외교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세계 외교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가치 외교'의 부각이다. 인권이나 자유 혹은 대양의 자유항행 같은 가치를 앞세워 국제적 연대를 구성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으로는 더 이상 국제적 연대가 힘들어진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미국과 일본 등이 남중국해 등에서의 자유항행 보장 등을 명분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나, 일본 외교부의 발표문에서 전통적인 동맹국 표현과 별도로 동지(同志)국 표현이 나오는 것 등이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종래의 주의·이념보다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최근의 외교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의 인권외교는 카터의 인권외교보다 불완전하지만, 이를 가벼이 대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세계적 흐름인 가치외교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 인권이나 대북전단 등을 매개로 단순히 김정은 정권을 압박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이런 이슈들을 활용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있기에 가벼이 대할 수 없는 것이다.

패권국들의 인권외교 혹은 가치외교로부터 일반 국가들이 살아남는 길은 적극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은 이렇다'며 해명을 표하는 수준에서 소극적으로 대응만 한다면, 한국 같은 일반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소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패권국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반 국가들의 인권 개선이 아니라 세계질서의 재편성이므로, 그에 맞게 대응하지 않으면 일반 국가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국가들도 내정간섭 금지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세계 인권 상황에 대해 선제적 문제제기를 하거나 패권국들의 인권외교에 담긴 모순을 폭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 대응을 강구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자국 내부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패권국들의 압박에 맞서기 위한 노력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인권외교가 남을 간섭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류를 살리기 위한 도구가 되도록 만들려면, 인권외교를 빙자한 강대국들의 내정간섭과 패권 추구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태그:#바이든 인권외교, #카터 인권외교, #미국 인권외교, #가치외교, #대북전단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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