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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경남 거제도에 갔었다. 우리가 묵은 펜션 본관건물 옥상은 이벤트 존이었다. 조명이 켜지는 커다란 하트모양 조형물이 있고 청혼이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손님들을 위한 버진로드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창문으로 이벤트 존을 바라보며 연신 "예쁘다"를 연발했다.

그때 아이가 "그런데 저기서 뭐 할 때 좀 조용히 해야겠어"라고 말했고 나는 이유를 물었다. "옆집 옥상하고 1미터도 안 떨어져 있는데... 여기는 층간소음이 아니라 옆집소음이네"라고 아이는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펜션 건물들 사이에 가정집이 있었다. 우리가 간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는 문을 열어놓고 생활하기에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겠다 싶었다.

내가 살던 주택가에서의 어린 시절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단독주택에 살았다. 우리집은 골목에서 다시 골목으로 들어와야 대문이 있었다. 옆집과 나란히 두 집만 사용하는 골목이라서 양쪽집의 아빠들이 자가용을 구입하기 전까지 골목은 나와 동생들의 전용 놀이터였다. 마당과 옥상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놀이터, 쉼터, 사랑방의 역할을 했다.

엄마들은 빨래 널다가 옆집 아주머니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옥상에서 놀다가 친구가 친구네 옥상에 올라오면 난간을 사이에 두고 수다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그때 옆집 옥상과 우리 집 옥상의 거리는 1미터 남짓이었다. 마당은 더 가까웠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옆집 마당 반대쪽은 우리 마당이었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굳이 대문을 통해 나갈 필요가 없었다. 담에 서서 친구를 부르면 되었고, 대문열쇠가 없을 때는 옆집으로 들어가 담을 넘어가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만약 우리 집이 전망 좋은 곳에 있어서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옆집 옥상이 루프탑 카페가 되거나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 마당이 카페 정원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휴일 오전 늦잠을 자다가 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켜다가 카페 손님과 눈이 마주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 옥상에 캔 맥주를 들고 올라갔는데 흥겹게 음악을 듣는 카페 손님들이 나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면 마당과 옥상은 더 이상 휴식처가 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은 계속 주택가였다.
 
남아있는 선로와 집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
▲ 철길마을2 남아있는 선로와 집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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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군산시 경암동에는 그 유명한 철길마을이 있다. 1994년에 운행을 시작해 군산역과 '북선제지' 공장만 오가는 화물기차를 위한 철도였다. 그 당시 철길 주변은 논밭이었고 방 한 칸 없는 사람들에게 오두막집을 지어 살기에 좋았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장이 있었고, 구암국민학교(현 구암초등학교)도 있었다. 누군가가 철길 바로 옆에 오두막집을 지었고 선로에서 겨우 1미터도 안 되는 거리만큼 떨어져 지은 무허가 집들이 늘어나 동네가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오전 8시 30분~9시 30분과 오전 10시 30분~정오 사이, 일정하지 않은 시간에 기차가 지나갔다. 철로와 집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만약 기차 안에서 사람이 손을 내밀고 철길마을 사람이 집안에서 손을 내밀면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은 손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이 가까운 거리에서 기차가 지나가면 온 집안이 흔들린다.

기차 운행은 중단되었지만 관광객은 늘어났다
 
철길마을 입구에 그려진 벽화(기차가 다니는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 철길마을 벽화 철길마을 입구에 그려진 벽화(기차가 다니는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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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에 기차는 64년 만에 운행을 중단했다. 철길마을 사람들은 기차가 사라진 철길 옆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집집마다 빨갛고 커다란 '다라이'를 내놓고 고추나 상추 등을 대놓고 길렀다. "비켜요! 위험해요!"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사라진 철길마을은 평화로워졌을까?

드라마 <고맙습니다>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주인공들이 철길마을의 선로 위를 걸었고,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철길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옛 향수를 추억하며 철길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주민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대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차츰 동네 사람들과 방문객 사이에는 실금이 생겼고 참다못한 동네사람 몇몇은 동네를 떠났다.
 
주민들이 떠나간 자리에 들어선 상점들
▲ 철길마을3 주민들이 떠나간 자리에 들어선 상점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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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난 자리엔 특색 있는 가게들이 생겼다. 교복을 대여해주고 추억을 떠올리는 옛날 물건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겼다. 주말 TV프로그램 <1박2일>에 철길마을이 나오자 전국구 여행지가 되었다.

나는 열차 운행이 중단된 2008년도에 철길마을을 처음 가보았다. 그 동네에 친구가 있지도 않았고 그 선로에는 여객열차가 다니지 않았다. 군산에 살면서 철길마을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차운행이 중단된 후에 알게 되고 방문한 철길마을, 동네 그대로가 주는 풍경은 아주 한적했고 예뻤다.
 
선로 옆은 여전히 누군가의 보금자리이다.
▲ 철길마을4 선로 옆은 여전히 누군가의 보금자리이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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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서 철길마을을 본 나도 재방문을 했다. 전국구 관광객 수에 보탬이 된 재방문에서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들이 마당이나 옥상에 설치한 경계를 나타내는 담을 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철길과 집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건 방문객이 접근할 수 있는 거리도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다. 대문이나 마찬가지인 덧문을 열면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골목을 만난다. 그렇게 마주친 동네주민의 표정이나 말투는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전국 여러 곳에 이런 관광지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관광지 안에는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자 방문할 때마다 그곳이 누군가의 집 앞, 그들의 마당이라는 걸 기억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태그:#철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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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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