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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백상예술대상이 13일 오후 무관중으로 열렸다. 재재 인터넷방송인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백상" 재재, 기분 좋은 날 제57회 백상예술대상이 13일 오후 무관중으로 열렸다. 재재 인터넷방송인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백상예술대상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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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인 재재가 시상식에서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손동작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엄지와 검지로 '작다'를 표현하는 듯한 손 모양이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결국 재재 측은 해당 손동작이 초콜릿을 집어 먹는 동작에 불과하다고 해명해야 했다. 얼마 전에는 편의점 GS25나 치킨 프랜차이즈 BBQ에서도 같은 맥락의 논란이 불매운동으로 번졌고, 그 역시 남혐의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이 이어졌다.

보다 혹독한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세상
 
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왼쪽)는 교체됐다
 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왼쪽)는 교체됐다
ⓒ G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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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차례 이어진 '남혐' 논란은 문제의 손동작에 집중하고 있다. 해당 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일상에서 흔하게 쓰일 수 있는 손동작인 만큼 오해에 휩싸인 쪽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남성 혐오의 의도가 있다는 지적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결국 논란에 대한 해명은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남혐에 대한 의도는 없었으며, 앞으로는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겠다는 것이다. 유명인이나 브랜드 입장에서 남성 혐오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발빠른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논란이 계속된다면 결국 앞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요소를 세심히 살피고, 그 근처라도 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자기검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각종 혐오가 담긴 단어는 당연히 쓰지 않는 것이 옳다.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게 실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그걸 깨닫고 스스로 돌아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요구되는 자기검열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지금의 '남혐에 대한 지적'은 실제로 무엇이 혐오로 작용하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억압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논란을 부풀려 '내가 남성 혐오를 한다고 오해받으면 어쩌지?', '혹시 페미니스트로 보이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이끌어 낸다.

반대로 기존에 여성 혐오의 대표적인 단어로 여겨졌던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단어는 실제로 여성의 자유로운 소비나 표현을 위축시켰다. '오또케 오또케'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해결하거나 수습하지 못한다는 실질적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해 여성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애쓰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 손가락 모양은 지금까지의 여성 혐오와는 맥락을 달리한다. 남성들은 그 손가락 모양이 만드는 사회적 편견이나 억압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가. 도리어 지금의 논란은 혐오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마저 흐리고 있다. 단순한 손동작이 대표적인 혐오의 일종인 것처럼 지적되면서, 약자 혐오를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은 악(惡)'이라는 세뇌


얼마 전에는 교사들이 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세뇌하고 있다며, '교사 비밀 조직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교사를 주축으로 한 비밀 단체가 은밀히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주입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으로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묻고 싶다. 남성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도전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숙청하려 드는 이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세뇌하려 하고 있지 않은지. 남성 혐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페미니즘은 감히 의견을 드러낼 수 없도록 세상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페미니스트 채용 거부'로 논란이 된 편의점 공고
 "페미니스트 채용 거부"로 논란이 된 편의점 공고
ⓒ 편의점 공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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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한 편의점 점주가 '페미니스트는 채용하지 않겠다'는 공고를 당당히 내놓는 일이 있었다.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동반해 논의한 여성 혐오가 자기검열로 이어지기는커녕, 그러느니 차라리 페미니스트 자체를 배제하겠다는 의지로 이어진 케이스다.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여성 혐오에 대한 검열은 대대적으로 논의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전반적으로는 '이런 것까지 문제 삼다니 예민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초콜릿을 집어먹은 재재의 손동작은 남성 혐오에 대한 해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마 그들도 이게 맥락과 상관없는 막무가내식의 주장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타당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인 위협이 가해지는가가 핵심인 듯하다.

심지어 여러 차례의 논란은 마치 손동작을 빌미 삼아 세상을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권력이 작용하여 세상은 그들에게 사과하고, 검열한다. 여성 혐오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회에 이만큼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적은 있었던가.

남성 혐오에 대한 협박식 으름장은 앞으로 일상 곳곳에서 더 많은 검열과 해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들은 막무가내식의 진영 다툼을 유발하고 페미니즘을 위협하고 있고, 대중의 반응이 중요한 유명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당한 위협을 수용하고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맥락 없는 혐오를 검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진짜 혐오에 대해서는 건강하게 논의할 기회조차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실은 '앞으로는 주의하겠다'는 수용보다 단호한 거절도 필요하지 않을까. 남성 혐오에 대한 부당한 지적만큼이나 그에 대한 해명과 사과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논란이 투박하고 거세질수록 대세에 거슬리는 의견을 내기는 두렵다. 그러나 혐오를 멈추고 보다 올바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논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태그:#재재, #남성혐오,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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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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