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1 12:10최종 업데이트 21.05.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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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 Pixabay

 
비둘기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인 탓에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채 떠도는 속설들도 많다. SNS에서는 지난 4월 말부터 '나 원래 비둘기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말의 준말)했는데 생각 바꾼 이유'라는 제목의 익명 게시글이 1만 5000번 이상 리트윗되며 널리 퍼졌다.

이 게시글 내용은 크게 3가지다.
 
①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비둘기를 인위적으로 많이 풀어서 개체 수가 늘어났다.
② 비둘기는 원래 높은 절벽에서 사는 동물인데 빌딩을 절벽이라 생각해서 도시에 사는 거다.
③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도 비둘기들이 안 비키는 것은 소음 때문에 청각을 잃어서다.
 

한 카페에서 작성된 게시글이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유됐다 ⓒ 익명의 작성자, 다음카페 '토리의 비밀일기'

 
[검증방법] 조류 생태 전문가들 자문

과연 이같은 속설이 사실인지, 권영수 국립공원연구원 생태조사부 부장, 남형규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 권혁두 한국조류보호협회 소속 전 생물교사 등 조류 생태 전문가들에게 확인했다.

[검증사실 ①] 88서울올림픽 때 개체 수 늘었다?... 대체로 사실

현재 국내 서식하는 비둘기 개체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지난 2009년 당시 서울시 '집비둘기 서식 실태조사 결과'에는 서울시에만 약 3만 5575마리가 있다고 돼 있지만, 한국조류보호협회는 국내 100만 마리 이상 서식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비둘기 개체수가 늘어난 건 언제부터일까? 남형규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88올림픽에서 (비둘기를) 도입하면서 급증한 것은 맞는 것 같다"면서 "(현재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는) 우리나라 고유종 비둘기와 혼종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봤다.

1980년대만 해도 올림픽 개막식이나 대통령 취임식 같은 주요 행사에서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날리는 연출이 잦았다.

서울시와 대한체육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2년 전부터 일본에서 희귀종인 흰 비둘기 100쌍을 수입해 개체 수를 늘리고 야외비상 훈련을 시켰다. 서울올림픽에서 실제로 날려보낸 비둘기는 약 2400마리로 추정된다.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에도 '비둘기 날리기' 행사가 자주 열렸다. <경향신문>은 그해 5월 7일 어린이날 행사나 프로야구 개막식 등 각종 행사에서 날릴 비둘기들을 빌려주는 '파출 비둘기'를 보도하기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어린이대공원에 2500마리, 서울시청 옥상에 1200마리를 사육했고, 그 밖에 서울 시내에서 약 5000마리를 사육해 행사용 '파출 비둘기'로 민간에 빌려줬다고 한다. 
 

하늘높이…行事(행사)무드 높여줍니다 서울市(시) "派出(파출)비둘기" <경향신문> 1986년 5월 7일자 7면 보도 ⓒ 경향신문

 
당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비둘기가 서식할 수 있도록 비둘기집을 만들어 관리한 것도 개체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는 1988년 한강시민공원에, 대전시는 1983년 보문산공원에, 부산시는 1987년 부산역 광장에 각각 비둘기집을 설치했다.
 

한강시민공원 비둘기집 설치 <경향신문> 1988년 6월 4일자 13면 보도 ⓒ 경향신문

 
전문가들은 88올림픽을 거치며 비둘기 개체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보면서도, 그전부터 이미 비둘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동물생태학 전문가인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비둘기는 88올림픽 이전에도 공원에서 많이 살았다"라고 말했다.  

비둘기 대량 사육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서울시청 옥상에서 비둘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한때 정부와 지자체에서 번식력이 높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추앙하며 집단 사육했지만,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자 지난 2009년에는 환경부가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충무로역 근처에 모여있는 비둘기들 ⓒ 임안젤

 
[검증사실 ②] 높은 절벽 같은 빌딩 때문에 도시에 서식?... 근거 부족

그렇다면 비둘기가 빌딩을 높은 절벽처럼 여겨서 도시에 산다는 건 사실일까?

비둘기의 기원을 고려하면 '비둘기 절벽 서식설'도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비둘기의 조상은 '락 도브(Rock Dove, 학명 Columba livia)'라는 종이다. 남형규 연구사는 "락 도브는 해안이나 내륙 절벽에서 번식했다"면서 "그 습성이 아직 남아 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집비둘기'를 과거 야생 비둘기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집비둘기는 각종 행사용으로 집단 사육되면서 개량 과정을 거쳤다. 비둘기가 빌딩이나 건물 옥상을 서식지로 선택한 것도 원래 습성보다는 사람이 많은 도심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소속된 전 생물교사 권혁두씨도 "비둘기가 과거 절벽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에서 마음 높고 살 만한 곳이 없어 건물 옥상에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념과 달리 집비둘기 서식지도 도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립중앙과학관 자료에 따르면 집비둘기 서식지는 "산림, 강과 하천 수변, 공원, 도심 등"으로 다양하다.

개량되기 전 집비둘기 조상의 서식지에 절벽도 포함되는 건 맞지만, 지금 비둘기가 도시에 서식하는 이유가 절벽이 연상되는 빌딩 때문이라고 볼 근거는 없었다. 

[검증사실 ③] 비둘기가 안 비켜나는 건 청각을 잃은 탓이다?... 거짓

비둘기가 차나 사람이 다가와도 잘 비켜나지 않는 이유는 도시 소음으로 청각을 잃은 탓일까?

권영수 국립공원연구원 생태조사부 부장은 "터무니 없는 얘기"라면서 "사람이나 차가 흔히 지나다니는 길에서 살면서, 자기에게 특별히 해코지를 안 한다는 경험이 쌓여 크게 경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형규 연구사도 "학습에 의해서 익숙해진 경우"라면서 "비둘기는 사람이 먹이를 줘도 피하지 않고 머리까지 들이밀고 먹는데, 이런 도전적인 행동으로 살아남은 케이스"라고 분석했다.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도 비둘기들이 안 비키는 것은 소음 때문에 청각을 잃어서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거짓
  • 출처
  • 근거자료
    권영수 국립공원연구원 생태조사부 부장 인터뷰자료링크 남형규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 인터뷰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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