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에게 연결되기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지금, 무게감 있는이야기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 곁의 음악을 이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십전심'이 많은 분들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기자말]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글로벌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2억 회를 돌파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히트곡이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글로벌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2억 회를 돌파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히트곡이다. ⓒ Olivia Rodrigo 뮤직비디오 캡쳐

 
'사춘기 감성'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노래해 스타가 된 신인 가수가 있습니다. 데뷔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8주 연속 1위를 거머쥐었고, 첫 정규 앨범에 '2021년 가장 거대한 팝스타'(BBC), '강력한 신인 후보'(포브스)라는 극찬이 쏟아지는 아티스트죠. 2003년생, 올해로 18살이 된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가 그 주인공입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열두 살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다 디즈니 채널의 드라마 '핵꿀잼 비짤봙(Bizaardvark)'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죠. 2019년부터는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 스쿨 뮤지컬 : 뮤지컬: 시리즈' 주연으로도 활동하던 차였습니다.

이런 로드리고를 전 세계에 알린 노래가 바로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입니다. 1월 8일 발매와 동시에 스포티파이, 아이튠즈,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더니 같은 달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2억 회가 넘고,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횟수는 7억 5천만 회를 돌파했죠. 촉망받는 디즈니 스타에서 글로벌 팝스타가 된 겁니다. 
 
 5월 21일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발표한 첫번째 정규 앨범 '사우어(SOUR)'는 18살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감정을 투명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5월 21일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발표한 첫번째 정규 앨범 '사우어(SOUR)'는 18살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감정을 투명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로드리고의 음악은 흔히 10대 하면 떠올릴 법한 밝고 신나는 무드와 거리가 멉니다. 잔뜩 날이 서있고 우울하며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21일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사우어(SOUR)'는 제목처럼 톡 쏘다 못해 얼굴을 찡그릴 정도의 쌉싸름한 노래들로 가득합니다. 앨범을 시작하는 노래 '브루탈(Brutal)'부터 당돌합니다.

"열일곱은 지겨워. 빌어먹을 틴에이지 드림은 어딨는데?
'젊음을 즐기세요'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난 그냥 울어버릴 거야."


올리비아를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가사를 볼까요. 빨리 운전면허를 따서 남자 친구를 차로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정작 면허증을 받은 지금 그 친구는 다른 여자애와 사랑에 빠져 떠나버렸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진 않았지만, 나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어', '교외로 차를 몰고 가면서 울었어'라 슬퍼하면서도 '걘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내가 못 가진 것들을 가졌잖아'라 질투하기도 합니다. 

이어 공개한 노래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신스팝 '데자뷰(deja vu)'는 나와의 데이트 경험을 다른 여자 친구와 똑같이 즐기는 전 남자 친구를 비꼬는 곡이죠. '굿 포 유(good 4 u)'는 또 어떻고요. 한심한 남자 친구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며 '빌어먹을 소시오패스'라고까지 합니다.

미국 10대 팬들은 올리비아의 노래를 실제 이야기로 가져옵니다. '하이 스쿨 뮤지컬'의 상대 배우 조슈아 바셋과의 관계를 담고 있다는 해석인데요. 조슈아는 올리비아와 헤어지자마자 배우 사브리나 카펜터와 교제를 시작했는데, 올리비아가 이를 바람 혹은 환승 이별이라 생각하며 가슴 아픈 노래를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소문에 대해 조슈아 바셋은 '라이 라이 라이(Lie lie lie)'라는 노래를 냈는데요, 제목처럼 올리비아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거죠. 사브리나 카펜터도 '스킨'이라는 노래로 로드리고를 에둘러 비판했고요. 로드리고도 지지 않고 '트레이터(traitor)'라는 노래를 실었습니다. 배신자라는 거죠.

사실이든 아니든 흥미로운 삼각관계에 함께 가슴 아파하던 10대들은 이윽고 틱톡(TikTok) 같은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첫사랑과 이별, 짝사랑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발매 이후 1월에만 7억 2천만 회 이상의 영상이 쏟아졌습니다. 20대와 어른들은 힙합, 댄스곡 중심으로 진행되던 차트에 차분한 곡이 올라왔다는 사실에 놀랐고, 십 대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로드리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굿 포 유'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Z세대의 감정을 숨김 없이 솔직하게 노래하여 전세계 10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굿 포 유'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Z세대의 감정을 숨김 없이 솔직하게 노래하여 전세계 10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Olivia Rodrigo 뮤직비디오 캡쳐

 
지난해 우리는 빌리 아일리시를 통해 Z세대의 우울을 마주했습니다. 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으로 음악을 만들어온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테마 아래 날 선 노랫말을 음울하게 읊조리는 새 시대의 스타일이었죠.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 때론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감정. 빌리는 사춘기 감정이라 무시받고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던 마음을 소셜 미디어와 음악을 통해 거름망 없이 표현했습니다. 

로드리고의 매력도 솔직함입니다. 어린 사랑의 가사가 유치하다고도 하지만 정말로 어린 사랑인 걸요. 모든 게 불안하고 나만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옮겨 노래합니다. 사랑, 우울, 걱정, 무기력 등 다양한 이야기를 발라드, 포크, 댄스, 록 등 다양한 장르로 옮깁니다. '롤링 스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드리고의 음악은 '십 대들의 캔터베리 이야기'처럼 진솔하고도 폭넓습니다.

'사우어'를 들으며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십 대 시절을 돌아봅니다.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라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드름 자국으로 흉한 얼굴에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다니던 제게 첫사랑은 짝사랑만으로 끝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 괴롭고,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미래는 불안하고…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는 말만 믿고 야간 자율학습실에서 밤을 새우던 나날들이었죠. 부모님께 투정 부려도, 어른들께 하소연해도 '중2병 감성', '사춘기 감성'이라며 나의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더욱 속상했습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테일러 스위프트 팬'을 자청할 정도로 테일러 스위프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의 히트를 견인한 것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SNS 홍보가 있었다. 사진은 브릿 어워즈 2021 시상식에서 만난 올리비아와 테일러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테일러 스위프트 팬'을 자청할 정도로 테일러 스위프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의 히트를 견인한 것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SNS 홍보가 있었다. 사진은 브릿 어워즈 2021 시상식에서 만난 올리비아와 테일러 스위프트. ⓒ Olivia Rodrigo 인스타그램

 
솔직하게 자신의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또 멋지게 표현할 줄 아는 Z세대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네요.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항상 제일 존경하고 또 닮고 싶어 하는 가수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언급합니다. 많은 한국 신인 가수들이 아이유를 롤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이외에도 1996년생 가수 로드와 래퍼 카디 비에게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모두 제 또래들입니다.

당장 내일을 내다볼 수 없는 20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지만 10대 친구들, 막 스무 살이 된 친구들에게는 우리도 어른입니다. 로드리고처럼 10대들이 더 '유치한' 노래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또 그들의 목소리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받지 않게 세상을 만들고 또 바꿔나가야겠죠. 좌충우돌 갈팡질팡한 마음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니까요. 

요즘 부쩍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 젊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진짜 첫걸음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작게나마라도 도움을 주고 함께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더 제대로, 더 열심히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겠노라 다짐을 해봅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새콤한 음악,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네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603/)에도 실렸습니다.
올리비아로드리고 음악 Z세대 테일러스위프트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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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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