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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초딩계의 얼리어답터다.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장난감들을 누구보다 빨리 수집하고 먼저 써보는 것이 취미다.

시작은 슬라임이었다. 물컹대는 덩어리를 하루 종일 조몰락조몰락 대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애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그런가 싶어 심각하게 심리상담을 고민했다. 그런데 슬라임이 초딩계의 '잇템(누구나 꼭 갖고 싶어하는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거참 희한하다 희한해...' 하며 할머니 같은 말투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어디 장난감뿐이랴. 테이프 모양의 과자, 색종이 모양의 과자, 지구 모양의 젤리... 대체 저걸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들에 집착하기도 했다. 열 살 딸아이의 뇌구조는 마흔 줄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넌 누구냐, 푸시팝
 
'뽁뽁' 누르는 기능 외엔 특별히 뭐가 없다
▲ 딸 아이의 푸시 팝  "뽁뽁" 누르는 기능 외엔 특별히 뭐가 없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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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딸이 최근 꽂힌 장난감이 있다. 바로 '푸시팝'이다. 푸시팝이 뭔고 하니 실리콘 틀 위에 튀어나온 반구를 손가락으로 눌러대면 끝인 장난감이다. 포장재로 쓰이는 포장용 에어캡, 우리가 흔히 뽁뽁이라 부르는 그것과 비슷하다.

기능은 단순하지만 크기와 모양, 색깔이 무궁무진하다. 딸아이는 여러 개의 푸시팝을 소장하고 있는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책상 크기만한 대형 푸시팝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아직 거기까진 용납하지 않았다.

푸시팝의 인기는 문구점에 가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초딩 얼리어답터 딸을 둔 부모는 마트보다 문구점 출입이 더 잦다. 그곳에서 구경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딸을 위해 병풍처럼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초딩계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문구점에 들어오는 부모와 아이마다 '푸시팝'을 사가는 것을 보면 인기는 인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푸시팝은 한 완구 유튜버가 채널에 소개하면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푸시팝으로 재밌게 노는 법'이라는 영상이 퍼지고 아이들이 따라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희한하다 희한해).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이 단순한 놀잇감에 아이들이 빠지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리 집 얼리어답터님께서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톡톡 누르면 기분이 좋아져"라고. 딸 아이의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더니 다들 엇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여기에서 내가 주시한 것은 '기분이 좋아져'가 아니라 '아무생각 없이' 였다. 푸시팝은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아이템에 가까운 것이었다. 

본디 아이들은 자극적인 장난감에 현혹되기 마련인데 그저 손가락으로 뽁뽁 누르며 멍을 때리는 것으로 재미를 얻는다니... 그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친구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바깥 나들이도 쉽지 않은 이유도 있을 거다.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높은 걸까.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니(천 원~ 만 원대까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꼰대스러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벼운 장난감이 넘쳐난다, 쓰레기도 넘쳐난다

나는 대체로 요즘 아이들의 장난감들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푸시팝을 처음 봤을 때 별다른 기능 없이 그냥 누르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허무했다. 그야말로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가면 언제든 주워올 수 있는 뽁뽁이를 돈 주고 사는 셈이니까.   

푸시팝처럼 하나의 유행템이 생기면 너나할 것 없이, 주위에 없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행은 잠깐. 유행이 끝나면 이내 예쁜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환경 문제가 머리를 스쳐간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이 없으면 무리에 끼지 못하고, 관련 영상을 보지 않으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노는 것조차 돈을 주고 체험하는 곳을 찾는다. 잘못된 놀이문화라곤 할 순 없지만 물질만능주의에 젖거나 창의성 발달에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이들이 "놀 게 없어"라고 말 할 때가 있다. 어린아이가 놀 것이 없어서 못 논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아이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놀거리여도 시원찮을 판에 '가지고 놀 물건'이 없다고 놀지를 못한다니...

나는 아이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진심으로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억지로 옛날처럼 자연 속에서 알아서 놀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세하는 유튜버들에게 제안한다.

'푸시팝보다 100배 재밌는 포장 에어캡 놀이', '액괴 촉감 저리 가~! 진흙 놀이 즐기기', '돌멩이로 공기놀이, 월마나 재밌게요~' 같은 아이들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자연 속에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백프로 무공해 놀잇감 정보'를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 말이다. 

물론 신상 장난감으로 노는 것은 재밌을 것이다. 또 요즘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마땅한 창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하늘의 색깔, 흙의 촉감, 바람의 냄새, 친구와의 소담스런 대화 같은 것... 작고 여린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 차곡 차곡 쌓였으면 하는 것은 작은 화면 속 장난감이 아닌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였으면 좋겠다.

태그:#푸시팝 , #초딩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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