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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출장길 KTX열차에서 코레일 잡지에 실린 연천 소개 기사를 읽었다. 마침 그곳에서 지방의회 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 선배가 생각나서 페이스북에 소개를 했다.

그리고 봄기운이 절정을 지나던 5월 첫 주말, 정말로 기사의 내용들이 궁금해서 결국 연천 구경을 나서게 되었다. 아내도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남다른 편이라 선뜻 동의한 나들이였다. 다만 코로나 시기임을 감안하여 실내 시설은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서해로 가다가 임진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파주를 거쳐 내륙으로 가나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 서울 상암동에서 연천가는 길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서해로 가다가 임진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파주를 거쳐 내륙으로 가나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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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파주를 거쳐 연천으로 가는 길은 한강과 임진강변을 따르든 파주를 관통하는 길로 가든 그리 멀지 않다. 대략 마포 상암동을 기준으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지만 연천군은 경기도의 최북단 지역으로 군 전체가 휴전선으로 잘려 북서와 남동으로 나뉘어 우리가 밟아 볼 수 있는 지역은 남동에 한정된다. 예전보단 덜하지만 여전히 분단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곳인 셈이다.

이번에 둘러 본 곳은 당포성, 전곡 선사유적지, 임진강 주상절리, 숭의전 정도다. 반나절이지만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라 이 보다 더 둘러 볼 수도 있겠지만,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리기에 다들 대단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라 그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반복되는 긴장의 역사 현장 - 당포성
 
동벽 바깥에서 바라본 당포성
▲ 연천 당포성 동벽 바깥에서 바라본 당포성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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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들른 곳은 당포성이다. 당포성(시적 468호)은 외관상으로 탄성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동벽의 일부만 남아 이곳이 중요한 성이었음을 혼자서 버겁게 증명하고 있다. 이 일대를 정비하고 관광 안내를 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 분위기다.

동벽의 강 쪽 상단부에 전망대를 꾸며놓았고 바로 옆에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아래에서 보면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성의 풍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리쯤에 전망대와 함께 조성된 듯한 관광안내소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아직 사용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연천 방문의 해(2020-2023)를 기해서 야심 차게 준비했다가 코로나를 만난 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 안내하는 이는 없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관광안내판이 아쉬우나마 여행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삼각형 모양 성의 동쪽만 성벽을 쌓고 나머지 두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 삼각형 모양의 당포성 삼각형 모양 성의 동쪽만 성벽을 쌓고 나머지 두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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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은 임진강과 당개 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 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 성으로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절벽 자체가 성벽 역할을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면만 성벽을 쌓아 올린 아주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석축으로 만들어진 동벽이 이 곳이 성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 당포성 동벽 석축 석축으로 만들어진 동벽이 이 곳이 성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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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을 빼앗겨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부터 120여 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아 하류에서 상류 방향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 개의 성을 배치했다.

당포성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물살이 느려져 도강이 가능한 여울목으로 신라군이 양주 쪽에서 북상하여 개성으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전략요충지이다. 고구려가 만든 성이지만 신라 땅이 된 이후에도 성벽을 수리하여 사용되었다.  
 
성의 한쪽은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서 자연 성벽 역할을 한다.
▲ 당포성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 성의 한쪽은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서 자연 성벽 역할을 한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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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 내부에서는 고구려 기와와 함께 신라 기와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관광안내소는 개점 휴업 상태지만 당포성을 둘러보는 이들은 간간이 눈에 띄었다. 임진강과 성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벽 전망대에 올라보니 성의 특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동벽의 성벽이 그냥 저수지의 둑처럼 흙담만 보이는 것은 고증 결과에 따라 석축 바깥에 점토로 보강을 했기 때문이다.  
 
흙담처럼 보이는 동벽 내부에는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석축이 존재한다.
▲ 당포성 동벽의 구조 흙담처럼 보이는 동벽 내부에는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석축이 존재한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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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은 임진강 주상절리를 성의 한쪽 벽으로 사용하기에 결국 주장절리와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자연이 빚어낸 놀라운 풍광에 역사 이야기까지 보태지면서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올 가치는 더 풍성해진다. 
임진강 주상절리 위에 서 있는 당포성의 모습
▲ 강건너에서 바라본 당포성 임진강 주상절리 위에 서 있는 당포성의 모습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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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것은 당포성 근처에 우리 국군이 사용하는 참호나 방어진지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수천 년 전 한반도가 여러 국가로 나뉘어 서로 작거나 큰 전쟁을 치르고 겨우 통일이 되어 하나의 나라가 되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다시 분단국가가 되어 그 당시 방어 지점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최초의 당포성은 북쪽의 고구려군이 사용하던 방어 시설이어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주로 했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임진강을 건너 양주 방면으로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기록으로 알 수 없는 한반도의 역사 - 임진강 주상절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직벽들이 바로 임진강 주상절리이다
▲ 임진강 주상절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직벽들이 바로 임진강 주상절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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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 전망대에서도 임진강 주상절리의 풍광을 감상 할 수 있지만 조금만 발품을 더 팔면 눈이 즐겁고 가슴이 벅찰 정도인 자연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 당포성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동이리 소재) 전망대가 그곳이다.

당포성에서 임진강을 따라 상류로 두어 번 정도 굽이쳐 오르는 지점인데, 전망대에서 좌우로 머리들 돌리면 그야말로 어떤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12폭 병풍이 펼쳐졌다. 땅 위의 이런저런 푸른 나무들을 떠받치고 있는 땅속의 모습이 마치 칼로 베어낸 듯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직벽이 형성되었는지는 신기할 따름이다
▲ 동이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건너 임진강 주상절리 모습 어떻게 이러한 직벽이 형성되었는지는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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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내판에 의하면 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지질시대의 암석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형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한반도 지질교과서로 불린다고 한다. 또한 현무암으로 된 주상절리는 대부분 바다에서 발견되는데 강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특이하단다.

동이리는 북동쪽 철원 방면에서 내려오는 한탄강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이 만나는 삼각지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탄강을 타고 내려오던 용암이 이곳에서 임진강을 거슬러 일부 올라갔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임진강 주상절리를 포함하여 이 일대의 지질학적 가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동이리 임진강 주상절리 전망대 안내판 임진강 주상절리를 포함하여 이 일대의 지질학적 가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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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설명을 머리에 두고 건너편 주상절리를 보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복잡해지는 부분이 더 많았다. 안내판에 표시된 주상절리의 형성 과정은 용암이 강을 따라 흐르면서 식어서 현무암 지대를 형성하게 되고 그 위로 다시 물이 흐르면서 침식 작용이 일어나 좌우로 주상절리를 형성하는 강이 다시 생기는 식이었다.

그런데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층 위로 다시 물이 흘러 점점 넓은 강을 형성한다면 결국 침식 작용인데, 일반적인 침식은 유속이 빠른 중심부가 깊게 파이고 유속이 느린 강의 좌우 가장 자리는 덜 침식되어 얕아지기 마련이다.

왜 이곳은 여름철 갈라진 논바닥 마냥 좌우 강둑이 주상절리와 같은 절벽을 형성하는 것일까? 이 정도는 지질학도가 아니라면 충분히 가져볼만한 의문이기에 안내판의 주상절리 형성 과정을 고개만 끄덕이기는 힘들었다.  
 
그림으로 주상절리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 임진강 주상절리의 형성과정 그림으로 주상절리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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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으로 메꿔져 평평해졌지만 다른 평지와는 결속력이 다른 현무암 길을 따라 지층 아래로부터 어떤 힘이 작용하여 크랙이 생겼고, 이로 인해 땅 속 현무암 응결 체인 주상절리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는 추론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역시 지질학에 대한 지식이 짧으니 품을 수밖에 없는 의문이겠지만 이런 의문은 결국 안내판의 정보가 누구나 충분히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참고로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주상절리는 풍화 작용의 결과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면서 급격히 응고되어 강도가 높은 외벽을 형성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응고되면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 내부는 다면체의 결정들을 형성하게 되는데 바닷물의 풍화 작용으로 외벽이 깎여 나가면서 안쪽의 다면체 결정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의문이 남으면 또 어떠하리. 요즘 서점을 가보면 지리 혹은 지질학에 대한 교양서들이 생각보다 눈에 많이 띈다. 나의 임진강 주상절리 방문은 결국 그 책들을 꼭 몇 권 사 봐야겠다는 지적 호기심의 발동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발걸음이 되고 말았다.

선사시대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 - 전곡리 선사유적지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토층전시관, 선사유적 박물관, 구석기 체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안내도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토층전시관, 선사유적 박물관, 구석기 체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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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곡리 선사유적지였다. 중학교 다닐 때 국사 공부하면서 전곡리에 대해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구석기 돌도끼가 나온 선사 유적지. 아마도 기억력이 조금만 남다른 분들은 대부분 전곡리라는 작은 마을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곳엔 엄청난 선사유적 테마파크가 존재하고 있었다.

선사유적박물관과 구석기 시대 체험장, 토층 박물관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진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안배하다 보니 짧은 시간만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메탈 소재의 둥근 원통형 모양의 건물이 바로 선사유적 박물관이다.
▲ 전곡리 선사유적 박물관 메탈 소재의 둥근 원통형 모양의 건물이 바로 선사유적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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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허허벌판에 불시착한 외계인 우주선처럼 생긴 메탈 소재의 둥근 원통형 선사유적 박물관 건물은 거의 압권이었다. 다만 박물관이 제대로 보이는 위치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박물관은 실내 시설인지라 호기심을 달래어 다음 기회로 남겨 두고, 그냥 너른 들판을 천천히 산책만 하다가 돌아 나왔다. 돌계단이며 여러 구조물들이 현무암 재질인 경우가 많아서 마치 제주도를 온 거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선사유적지 안에서 구석기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전곡리 선사유적에서 만난 구석기 시대 사람들 선사유적지 안에서 구석기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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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게 시간을 쓰지 못하는지라 다음을 기약하긴 했지만 구석기 유적 중심이면 전시는 분명 약할 수밖에 없을 테니 기획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선사유적지인 만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하는 캠핑이 아니라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최소한의 캠핑 장비만으로 야생에서 생존 체험을 해보는 그런 캠핑장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부쉬크래프트에 가까운 캠핑 유형일 것이다.

부쉬크래프트의 경우 자연훼손 및 화재의 우려가 있어 캠핑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진정한 야생은 아니지만 선사유적지에서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면 찾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편에는 고려 송악으로부터 가까운 연천에 고려 왕조의 종묘격인 숭의전이 왜 세워졌으며, 그곳의 풍광은 어떠한지 전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와 동시에 게재됩니다.


태그:#연천, #당포성, #임진강, #주상절리, #전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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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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