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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에는 도축장이 없다. 5월 28일 오전 5시 30분, 도살장에 가기 위해 지하철 첫차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하여 도살장 부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막 내리자마자 돼지를 실은 트럭들이 눈앞에 보였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돼지를 실은 트럭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전 8시 40분 도살장에 도착했다. 이동할 때만 하더라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정도였는데 도살장 앞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졌다. 바지와 신발이 다 젖었다. 우리 활동가들보다 먼저 도착한 건 단연 돼지를 실은 트럭들. 트럭 3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 트럭들은 먼저 도착한 트럭들이 돼지를 계류장에 내리는 동안 차도변에서 대기 중이었다. 
 
바닥에 깔리거나 몸이 낀 돼지들은 비명을 지른다
 바닥에 깔리거나 몸이 낀 돼지들은 비명을 지른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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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돼지에게로 다가갔다. 4.5톤 트럭 한 대에 실려 있는 돼지는 40마리에서 50마리 정도. 사실 정확히 몇 마리의 돼지가 트럭에 실려 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택배 차량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박스처럼, 차량 안에 살아 있는 돼지들이 욱여넣어져 있었다. 서로의 몸이 뒤엉켜 있는 모습은 마치 출퇴근길 지하철 속 많은 인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좁은 곳에서도 어떤 돼지는 다른 돼지들을 짓밟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1m라도 이동하려면 3, 4마리의 돼지를 짓밟아야만 한다. 바닥에 깔린 돼지들은 비명을 질렀다. 몇몇의 돼지들이 코를 바깥으로 내밀어 냄새를 맡거나 입으로 철창을 깨무는 행동을 보였다. 냄새를 맡는 행위는 반려견 똘이와 해피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과정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실제로 돼지는 개보다 후각이 뛰어나며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을 사용하여 사물을 인식한다고 한다. 철창을 깨무는 행동은 별다른 자극 거리가 없는 돼지들에게 지루함을 견딜 놀이로 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의 정형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돼지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돼지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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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친 젖소는 도축한다

젖소를 실은 1톤 트럭도 도살장에 도착했다. 소를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도살장에서 방역복 차림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그는 서류를 확인하며 소를 싣고 온 주인에게 물었다.

"어디가 다쳐서 왔어요?"

소 주인은 다리가 다쳤다고 짧게 대답한 뒤에 "원래 400만 원 하는 앤데..."라며 푸념했다. 소를 실은 차량은 소 도살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유독 소를 실은 차량이 많이 왔다. 나는 방역복 차림의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유독 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을까요?"     

알고 보니 방역복 차림의 그는 수의사였다.      

"비가 오면 축사에서 미끄러지는 소가 많아요. 바닥이 콘크리트이다 보니... (흙과 분변이 빗물에 섞여)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미끄러져서 오는 소가 대부분이에요."
 
우리가 먹고 입는 건 바로 이 소이다.
 우리가 먹고 입는 건 바로 이 소이다.
ⓒ 김명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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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실린 소는 우유 광고에서 보이는 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앙상한 몸에 뼈가 훤히 드러난 모습. 무기력해 보였다. 도축장에 온 젖소는 어떤 삶을 살다 왔을까? 농장에서 젖소는 인간에 의해 강제 임신을 당한다.

임신 후 출산을 한 젖소에게서 우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도 똑같지 않은가. 그리고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송아지는 인간들이 데려간다. 왜냐하면 소의 젖, 우유는 인간이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수컷 송아지는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며칠의 짧은 생을 살고 도축장으로 향한다. 운 좋게 살아남은 암컷 송아지는 엄마처럼 인간을 위한 우유 기계가 된다. 젖소는 대형 착유 축사에 들어가 하루 2~3차례 착유된다. 이런 젖소가 건강할 리 없다. 젖에서 고름이 나오기도 하고 수명도 줄어든다.

자연 상태의 젖소의 평균 수명이 20년인데 반해 착유되는 젖소의 평균 수명은 4~8년이다. 평생 착취당한 젖소가 우유 생산력이 떨어지면 도축장으로 온다. 평생 젖만 짜이다가 결국 죽어서 고기가 된다. 우리 인간들은 지성과 지식을 활용해 젖소의 모든 걸 남김없이 착취한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진 위대한 지성인 걸까.

비질 당일처럼 비가 와서 소가 다치면 도축장으로 온다. 죽은 상태의 소는 도축할 수 없기 때문에 소 주인들은 소가 죽기 전에 부리나케 도축장으로 실어 온다. 죽은 소는 돈이 안 되지만 다친 소는 돈이 된다. 다친 소를 도축장에 파는 주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업이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소는? 소의 생애를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했다. 비질에 참여한 한 시민은 말했다. "함부로 동정하고 함부로 연민해서는 안 되는데 너무 슬프고 불쌍하다." 너무나 공감되어 눈물이 났다. 
 
도축장 관계자가 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도축장 관계자가 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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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날'의 이면  

6월 1일은 세계 우유의 날이다. 우유의 영양학적 가치를 알리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날이다. 우유에 대한 영양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만에 하나 우유가 인간의 몸에 좋더라도 인간이 인간의 젖이 아니라 소의 젖을 먹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 송아지는 소의 젖을 먹고 강아지는 개의 젖을 먹는다.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의 젖을 먹는다.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다.    
  
우유는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서 오는가. 우유의 날은 매우 끔찍한 날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인간이 마실 우유를 위해 매년 40만 마리의 젖소들이 사육되고 있다. 우유팩에 담긴 새하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젖소들이 착취되고 있다. 매년 다치고 죽어서 고기가 되는 젖소가 있음에도 새로 태어난 젖소들이 그 수를 채우면서 우유 생산량과 사육두수는 유지되고 있다.

돼지와 소는 도살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돼지와 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도살장 안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막아 세울 수 없었다. 돼지와 소를 꺼내 구조할 수도, 그 누구에게 항의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운송, 도살 과정 자체가 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돼지들에게 물을 주는 것뿐이었다.

도살장에서 풍기는 피와 오물이 섞인 특유의 냄새가 온몸에 배었다. 이와 함께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몸에 덕지덕지 묻힌 채 서울로 향했다. 같은 장소에서 한때 함께 같은 공기를 마셨던 돼지와 소는 도살되었고 나는 산 채로 뚜벅뚜벅 걸어 연구실로 돌아왔다.
 
동물권리장전
 동물권리장전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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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옷에 큰 글씨가 쓰여 있는 옷을 입진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에 수치심이 든다고 해야 달까. 과잠(대학교 과 잠바)이나 동아리 잠바 한 번 입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기분 때문에 그날 입은 '동물권리장전' 옷을 입은 채로 학교에 갔다. 단 한 사람이라도 등판에 새겨진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통과 착취로부터 구조될 권리
인간에 의해 착취, 학대,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서식지 혹은 생태계를 가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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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질(vigil)은 Animal Save Movement 단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활동입니다. 비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2021년 6월 기준, 비질은 동물권 활동가들의 소모임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질은 모든 도살장을 지켜보며 모든 착취당하는 동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비질 소모임 계정(https://www.facebook.com/groups/470566474214410)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발행하였습니다


태그:#비질, #도살장, #젖소,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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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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