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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결혼이주여성 민민애씨
 미얀마 결혼이주여성 민민애씨
ⓒ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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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에서 걸어서 10분, 수원이주민센터에서 미얀마 이주여성 민민애(33)씨를 만났다.

"저는 쌀농사를 많이 짓는 미얀마 에야와디 관구에서 왔어요. 현재는 한국인 남편 그리고 큰 딸과 함께 수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배에 있는 아이는 4개월 되었어요. 딸이에요."

누군가가 미얀마어로 길게 말하는 걸 몇 년 만에 듣고 있자니 미얀마에서 지냈던 때가 떠올랐다. 2009년 8월부터 미얀마의 양곤에서 해외봉사단원으로 2년 동안 살았더랬다. 미얀마 공무원분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게 주요 활동이었다. 살았던 곳이 대도시인 양곤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여서, 미얀마 시위 현장 스케치에서도 살았던 곳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몇 큰 건물이 생긴 것을 제외하곤 그대로였다.

열심히 배웠던 미얀마어를 망각해버린 자신을 탓하며 통역해주시는 분의 힘을 빌려 이야기를 진행했다. 우선 어떻게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가족들의 삶

"한국에서 지내는 미얀마인 친구가 현재 남편을 소개시켜줬어요. 남편은 미얀마를 방문했고 후에 함께 한국으로 와서 2019년 12월에 결혼했어요. 남편은 건설업에 종사해요. 주로 인테리어 쪽 일을 하는데,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야 들어와요. 남편은 착하고 저를 많이 이해해줘요."

비교적 최근에 한국에서 살게 된 민민애씨. 따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진 않다. 미얀마에서 같이 온 7살 큰딸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국에서 학교는 다니고 있을지.

"큰딸은 한국말을 잘 못 해요. 그리고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아요. 남편이 가르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요. 게다가 거주 비자 발급이 늦어지고 있어서 아직 학교에 갈 수 없어요. 미얀마에 방문해서 서류로 처리할 것도 있는데 현재 상황에서 방문하긴 어려워 걱정이에요."

예상은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자라지만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이주해 온 민민애씨의 큰딸의 일상도 걱정이다. 언어도 낯설고 모든 게 아직 낯선 곳일 테니 말이다. 몇 달 후에 태어날 작은 딸의 육아도 걱정이라고 한다.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독박으로 육아해야 할 상황이라며. 여러 상황으로 힘들어 중간에 눈물을 보였다. 미얀마에 있는 가족과는 연락하고 지낼까.

"미얀마에 있는 가족과는 주로 전화 혹은 인터넷으로 연락해요.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걱정이 되어 가족과 자주 연락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4월 이후 미얀마 군부가 인터넷을 끊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국제전화를 해야 해요. 국제전화 비용은 너무 비싸요."

인터넷이 끊긴 이후로는 비용 때문에 걱정이 되어도 자주 연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핸드폰 요금이 몇십만 원 나오기도 한단다. 군부 쿠데타 이후 가족들과 미얀마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가족은 엄마, 아빠, 남동생이 있어요. 가족, 친척들은 다 농사를 해요. 보통 농사를 짓기 위해 대출을 하는데, 현재 군부에서는 생산된 벼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공출해가고 있어요. 벼 20kg 정도에 50짯(한화로 34원)을 주고 가져가고 있어요. 다들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요. 교육도 엉망이에요. 쿠데타로 인해 그나마 진행되고 있던 교육도 멈춘 상태에요."

한화로 34원인 50짯에 벼 20kg이라니. 10년 전, 길거리 국수가 저렴해야 200짯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헐값이다. 갚아야 할 빚도 있을 텐데,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휴, 대도시는 좀 나을까?

"대도시인 양곤에서도 많은 사람이 길거리 장사를 해요. 대부분 일수로 대출받아 빚을 갚아가며 장사하고 있는데, 현재는 장사도 못 하고 이자를 못 갚아서 대부업체로부터 도망 다니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어요. 대부분 지방에서 도시로 와서 장사하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해요. 너무 힘들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군부에 돈을 갈취당하고 있어요. 그나마 고향에서는 없는 밥이라도 사람들끼리 나눠 먹는데 도시에서는 그러기도 어려워 하루에 한 끼 먹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이 걱정되어 미얀마에 한번 가보고 싶어도 가족들은 오지 말라고 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미얀마에 응원이 더 많이 필요해요"

쿠데타 이후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매일매일 소식을 확인해왔던 민민애씨. 다행히 가족이나 친척 중에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지만 많은 국민의 죽음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SNS상에서 소식 보는 걸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좀 어려운 질문이지만, 어떻게 해야 시민들이 승리할 수 있을지도 물어봤다.

"이거(쿠데타 군부)를 뿌리 뽑아야 해요. 무기를 이용해서 잘 싸우기도 해야 했지만 머리를 잘 써야 해요. 군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절대 믿을 수 없어요. 이런 거짓을 폭로하고 더 알려야 해요.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국민의 열정이 식을까봐 걱정도 돼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 해요.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해요."

맞다.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끝까지 싸울 힘은 어디에서 날까? 민민애씨의 시어머니께선 미얀마 국민 자체의 힘이 중요하다고 하셨단다. 민민애씨는 이에 동의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사진이나 가족들을 통해 6·25전쟁 후 한국의 상황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그때 많은 나라의 정부, 시민들이 한국을 도와줬어요. 미얀마도 많이 도와줬고요. 지금도 비슷해요. 한국 정부, 시민들이 응원해주시는 것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여전히 미얀마는 응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군부 쿠데타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응원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응원과 연대는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민민애씨와의 인터뷰라는 이 작은 만남이 응원과 연대로 이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서태성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해외봉사단으로 미얀마 양곤에서 2년 간 활동했으며, 현재는 기본소득당 경기도당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미얀마, #이주여성,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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