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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금지된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차별의 일상을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지역 차별 등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차별의 경험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하기로 했습니다. 5월 25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됐습니다. 5월 17일부터 '차별금지법 나만 필요해?' 기획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우리가 바꿀 세상을 제안합니다.[기자말]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이야기를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이야기를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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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의 정의를 처음 배운 것은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였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정의에 나는 속으로 '쳇, 그러면 사투리 쓰는 나는 교양이 없다는 건가' 하며 심통이 났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마음 한 켠에는 '서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았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이야기를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일종의 격언처럼 통용되는 이 이야기는 '탈제주'이자 '인서울'로 수렴된다. 사람 살 곳이 아닌 땅을 벗어나, 저기 꿈과 행복이 있는 서울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가 끝나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는 지역에 남았다. 가장 먼저 마음의 문이 닫혔다.

심각한 청년 인구 유출, 그들은 왜 제주를 떠날까
 

나는 한동안 열패감에 빠졌다. 미디어에서는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이 떠돌아다녔고, 공교육 과정 내내 인서울과 지방대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들었던 마음은 수시로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한때 '로컬 콘텐츠' 흐름을 타고 지방에서 나고 자란 것을 어드밴티지로 삼아보고자 했으나, 움츠러든 마음은 그런 자신감보다 훨씬 더 자주 튀어나왔다.

2019년 국가인권위가 진행한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차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21.3%가 학력·학벌, 16.9%가 출신 지역을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 내 가장 심각한 차별을 묻는 질문에서도 32.5%가 학력·학벌 차별, 24.7%가 출신 지역 차별이라 답했다. 많은 한국인이 학력·학벌, 출신 지역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력·학벌 차별은 여전히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 정도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직무와 학벌이 반드시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19년 6월 고용노동부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SKY 출신 줄고 비수도권 대학 비중 늘어'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도입된 나이, 성별, 학벌, 외모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을 때 명문대 출신의 비율이 4.8%p(15.3%→10.5%) 감소하고, 비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이 4.7%p(38.5%→43.2%) 증가했다는 지표를 보면, 채용 시에 '학벌'은 그리 좋은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을 것도 같다.
  
2019년 기준 제주지역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 비중은 61.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반면 임금 대비 집값은 전국 최고를 기록한다.
 2019년 기준 제주지역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 비중은 61.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반면 임금 대비 집값은 전국 최고를 기록한다.
ⓒ 한국은행 제주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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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역의 청년들은 꾸준히 지방을 떠난다. 제주도의 청년 인구 유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2020년 7월 8일 발표한 '제주지역 고용구조 변화와 향후 과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제주지역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 비중은 61.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반면 임금 대비 집값은 전국 최고를 기록한다. 좋은 일자리가 없고, 살 집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려는 것이다.

지역 유출을 막으려 지자체에서는 취·창업 지원, 공공임대주택 보급, 참여 및 활동 지원 등 나름의 다양한 청년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취·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된들, 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차별과 불평등은 그대로다.

'청년 맞춤형 일자리'의 범주가 한정된 것도 문제다. 여전히 1차 산업 비중이 큰 지역에서 무작정 공공기관이나 사무직 일자리를 늘리면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를 해결할 수 있을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수도권으로 간다고 해서 무작정 지역을 '수도권화'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일자리들은 전형적인 '4년제 대졸 사무직 남성'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어디서도 행복하지 않다
  
지역을 떠난 청년들이 지역에서도 행복하지 않고, 서울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불평등과 차별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떠난 청년들이 지역에서도 행복하지 않고, 서울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불평등과 차별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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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간 청년들은 행복할까. 수도권의 살인적인 거주비는 서울로 간 청년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임금 수준에서의 차별은 없을까.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5년에 발표한 '청년층 취업난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사 평가 1~10위 대학 출신 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임금(290만 원)과 21위 이하 지방대 출신의 월평균 중위임금(180만 원)의 차이가 110만 원이다. 일자리가 다르고, 승진 여부가 다르다. 중위임금은 전체 근로자를 임금 기준으로 1위부터 최하위까지 줄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받는 임금을 말한다.

지역을 떠난 청년들이 지역에서도 행복하지 않고, 서울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심지어 지역에는 청년들이 사라진다. 어디서든 불평등과 차별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꿔, 왜 지방대를 나온 것이, 지역 출신인 것이, 농어촌에서 일하는 것이 개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수도권은 꾸준히 지역에 개발사업을 뱉어내고 자본을 빨아갔다. 1차 산업의 산물들을 꾸준히 가져갔으나 지역의 농민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관광객과 함께 뱉어낸 각종 오염물질은 제주 생태를 꾸준히 오염시켰다. 그 사이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갔다. 학력·학벌, 출신 지역 차별이 '능력에 따른 공정' 쯤으로 여겨지며 계속되고 미디어에서 지방대, 지역, 농어촌 혐오를 쏟아내는 동안 말이다.

차별금지법의 이유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차별의 행위 중 하나로 '학력'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꼽는다. 차별금지법안에서 말하는 '고용 형태' 또한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다양한 근로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반드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일을 제공하고 대가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면 차별금지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하는 청년들의 일터도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지역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고한 학력·학벌, 출신 지역 차별, 그리고 지방 혐오가 차별금지법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간다면, 수도권 중심주의에도 함께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다양한 삶과 노동의 모습들을 만들어가는 사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 나도 말하고 싶다, 겪었던 이야기!

방법 1.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와 함께 경험 적기
방법 2. 구글 설문지에 경험 적기! https://forms.gle/HVaSZUqgABSgUxqW7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을 목표로 각자의 차별경험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 가기 https://bit.ly/equality100000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쓴 신현정님은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법, #지역불균형, #지역청년
댓글5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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