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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 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 장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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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망명생활 내내 홍암 나철이 중광한 대종교인으로 활동하고 사상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철이 1916년 8월 15일(음)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명(순교)하였다. 신규식은 「홍암 선생 추도문」과 「만장」에 이어 「애도시」 다섯 수와 2주기에는 별도의 추모시를 지었다. 

           애도시 (1)

 백옥 같은 마음에 무쇠 간담으로
 근심스런 나라 걱정에 혼신 다하였도다
 의로운 목소리 맹약 어긴 죄를 질책하였고
 조약 체결한 간적들 주살하려 칼을 품었네
 두옥 속에도 우리 대중의 고통을 어이 견뎠으랴
 신분 밝히고 대신 중형 받아도 태연하였느니
 티끌세상 요망한 기운데 어둡게 막혀 버렸거늘
 이 사람 나오지 않았다면 세도 험난했으리.

            애도시 (2)

 하늘에서 오는 희소식은 소생하여 돌아옴인데
 산악이 선생을 내심에 큰 어려움 시험함이라
 신령한 성정의 공부는 천제에까지 통하였고
 묘향은 그에게 인간세상 구제하게 했어라
 마치고 나니 사람들 신시로 돌아가고
 진단(震壇, 우리나라)에 내려온 삼한을 조술하였어라
 가시덤불 헤치면서 그 옛날 자취를 찾아
 훨훨 지팡이 짚고 백두산으로 향하시리.

              애도시 (3)

 북쪽 대륙 갔다가 다시 남한을 향하니
 세상의 목탁 되어 천하를 두루 다니시려 했네
 악마들 번번이 십자가로 메우려 꾀하였고
 큰 영웅 어찌 삼한에 이름을 두려워하리
 인간만사 앞으로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하늘에서 신령의 목소리 느닷없이 들려왔네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꺾이어졌으니
 차마 아사달산으로 머리 돌리지 못하겠네.
              
홍암 나철선생
▲ 홍암 나철선생 홍암 나철선생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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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시 (4)

 지난 십년동안 서로 속마음 터놓고
 비바람 속 함께하며 금란(金蘭之交의 약칭)을 맺었어라
 한 목숨 살린 은혜 이제 갚고자 하였는데
 순명삼조(殉命三條, 나철의 유서)를 차마 볼 수 없어라
 장수를 바라며 높은 산처럼 늘 우러렀더니
 8월 난새 타고 가시니 쫓아갈 수 없어라
 해 넘어가는 하늘가에 처량히 서있자니
 동에서 오는 호연한 기운 천지에 가득하여라. 

              애도시 (5)

 손 씻고 유서를 읽자니 눈물 절로 떨어지고
 봄바람 때맞은 비처럼 어둔 우릴 감동시켰네
 외로운 충정은 언제나 이 겨레를 염려하셨고
 대종교의 도는 저 중생들에게 무량하였네
 원수들은 이제 강적을 제거했다 말들하고
 우리들 무엇으로 신명께 보답하리오?
 중중첩첩 끝없는 이 감회 속에
 종국(倧國, 우리나라) 앞길에 이 같은 이 없으리. (주석 1)


주석
1> 이부문, 『전집①②』, 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신규식, #신규식평전, #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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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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