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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튀겨져 나와 설탕옷을 막 입은 오리지널글레이즈드 도넛을 한 입 베어물자면, '우유, 계란, 버터 도대체 왜 넣지?'라는 생각이 든다.
▲ 갓 나온 비건 오리지널글레이즈드 도넛 방금 튀겨져 나와 설탕옷을 막 입은 오리지널글레이즈드 도넛을 한 입 베어물자면, "우유, 계란, 버터 도대체 왜 넣지?"라는 생각이 든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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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에 밀가루 들어가나요?"
"강아지도 먹을 수 있나요?"
"칼로리가 어떻게 되나요?"


비건도넛가게에서 일하면서 들은 흥미로운 질문 BEST 3를 꼽아봤다. 순서대로 답을 하자면, 우리 도넛은 밀가루로 만들고,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개와 함께 먹는 것을 권하기는 어려우며, 기름에 튀겨 설탕옷을 입혔기에 칼로리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런 질문들을 할까? 따져 묻고 싶은 것은 아니고, 물음의 배경이 순수하게 궁금해진다. 혹시나 무례해 보일까 싶어 의중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추측하건대 '도넛'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비건' 도넛임에 초점을 맞추고 건넨 질문들일 것이다. 

비건을 지향하는 음식점은 기본적으로 다양성과 건강 등을 존중하는 면이 있다. 글루텐(밀가루를 반죽했을 때 쫄깃한 식감을 내는 단백질 덩어리)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글루텐프리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동물뿐만 아니라 농업과 생태계 전체를 착취하지 않으려 유전자조작(GMO)식품을 소비하지 않거나, 유기농 재료 사용을 지향하기도 한다. 또한 콩이나 견과류에 알러지가 있는 비건채식인을 위해 성분 표시를 정확하게 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으면 밀가루로 만든 도넛이냐는 첫 번째 질문이 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비건도넛가게 또한 다양성과 환경보호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렇지만 '속세의 맛'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비건들을 위한 길티플레저(칼로리 걱정 등과 같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것을 즐기는 행위)라는 메인 슬로건을 걸고 있는 만큼, 맛있는 비건 도넛을 만들어 비건에 관한 편견을 깨고 문턱을 낮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동물성재료 없이도 부드럽고 촉촉한 베이킹을

우유나 버터, 달걀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빵은 소위 '건강한 맛'이 날 것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건강한 맛이 무엇인가 하면 퍽퍽하고, 텁텁하고, 거칠다는 거다. 유명 빵집에 비건 딱지가 붙은 빵들을 보면 깜빠뉴 같은 호밀빵, 통밀빵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담백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식사빵을 좋아하겠지만, 모든 비건채식인이 담백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부드럽고 촉촉한데 비건일 수는 없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우유 대신 두유나 귀리유를, 버터 대신 코코넛 오일과 같은 식물성오일을, 달걀 대신 두부나 병아리콩 혹은 아마씨 등을 넣으면 논비건(Non-vegan)과 다를 바 없는 식감을 만들 수 있다. 

사실 이런 '대체재료'를 사용하는 곳이 아니더라도 촉촉한 비건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 치아바타이다. 밀가루, 물, 소금, 올리브유로 만들기 때문에 토핑으로 치즈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이 비건이다. 배고파하는 비건 친구에게 급하게 빵을 사다 주고 싶다면, 치아바타를 찾으면 된다. 참고로 바게트와 베이글도 이론적으로는 비건이다(국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는 우유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으므로 원재료명을 살펴야한다).

계산을 마치고 막 도넛을 한 입 베어 문 손님에게 "그거, 비건인 것 아세요?"라고 묻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지나가는 길에 도넛가게가 있기에 들렀을 뿐 비건인 줄은 몰랐다는 손님은 방금 입속에 들어간 도넛의 맛이 우유, 달걀, 버터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놀라곤 한다. 

혹은 비건이라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맛을 보고는 박스로 사가는 손님도 많다. "나는 도넛은 안 먹을래"하고 커피만 주문했다가 친구의 도넛을 한 입 맛보고는 단골손님이 된 사람도 있다. 동물성재료 없이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이 손님들이 다른 곳에서도 비건 메뉴를 주문해보는 용기를 내보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밀가루로 만들고 기름에 튀깁니다, 도넛이니까요 
 
비건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크림이 올라간 도넛이다. 시중의 크림은 대부분 동물성재료(우유, 생크림)로 만드는 탓에 비건들은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을 즐기기가 어렵다. 식물성크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다를 바 없는 맛이 난다.
▲ 크림이 올라간 도넛 비건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크림이 올라간 도넛이다. 시중의 크림은 대부분 동물성재료(우유, 생크림)로 만드는 탓에 비건들은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을 즐기기가 어렵다. 식물성크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다를 바 없는 맛이 난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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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도넛은 다이어트에 좋을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비건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후식을 먹으면 안 된다. 

도넛(donuts)이 무엇인가? 미국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고향에서 즐겨 먹던 '올리코엑(olykoek, 기름진 케이크)'을 재현하다, 잘 익지 않는 반죽 가운데에 견과류(nuts)를 넣어 먹고 나중에는 아예 구멍을 뚫어 튀겨버린 것이 도넛의 탄생이다. 그러니까 도넛이란 자고로 빵 반죽을 기름에 튀긴 것이다. 

가운데에 구멍이 있는 모양은 유지하고 오븐에 구워내는 방식으로 기름기를 줄인 '건강한 도넛'이 최근 등장하기는 했다.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로 만드는 곳도 있다(글루텐프리). 저칼로리 디저트, 건강한 디저트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그것에 이어 우리가 팔고 있는 비건도넛에도 비슷한 기대를 하게 되는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일하는 곳의 비건도넛은 밀가루로 만들고 기름에 튀긴다. 도넛의 기원에 충실하게 말이다.

가끔 우리 도넛을 맛본 이후에 "오븐에 구운 것이냐"고 묻는 손님들이 있다. 기름에 튀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뒷맛이 깔끔해서이다. 그건 좋은 재료로 만들어 좋은 기름에 튀기기 때문이다. 기름지지 않은 게 아니고, 맛있게 만든 탓이라고 말해두겠다. 

비건은 맛있고 또 즐겁다

정크비건이라는 말이 있다. 비건은 풀만 먹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질린 비건 당사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 식사를 하고 있는지를 열렬히 표현하고 싶을 때에 자주 쓰는 표현이다. 열량이 높고 영양적으로 균형잡히지 못한 비건 음식을 두고 정크비건이라고 부르지만, 비건이 곧 금욕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비건도 달콤한 맛을 원한다. 비건도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다. 앞의 두 문장에서 비건을 사람으로 바꾸어 읽어보길 바란다. 

동물착취를 줄이며 순환하는 지구를 되찾기 위한 생태운동으로써의 비거니즘(Veganism) 활동을 하다가, 정크비건을 권하는 일을 하는 것이 때로는 멋쩍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비거니즘 활동, 기후정의 활동과 더불어 비건디저트가게에서 노동을 하기로 선택했는지를 생각한다. 다양한 채식 선택지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비건은 맛이 없다'는 편견은 비건채식인들이 만든 게 아니다. 육식중심적인 사회가 만든 상상력의 결여일 뿐. 

점점 더 무궁무진한 비건 음식, 비건 선택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성 식재료를 대체할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는 수많은 비건요리사들의 도전을 지지하며, 나는 비건노동으로 채식하기 편한 사회로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겠다. 맛있고 즐거운 비건을 위해!

태그:#비건노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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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가족, 그리고 채식하는 삶에 관한 글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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