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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창백한 푸른 점'이 떠올랐다. 지난 10일 안과에서 본 내 두 눈의 안저(眼底, eyeground)는 어두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지구처럼 일부 시신경만 창백하게 빛을 냈고 나머지는 어두웠다.

의사는 왼쪽 눈은 시신경이 23% 정도, 오른쪽 눈은 46% 정도만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망막에서 받은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내 시신경은 일부만 일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어둠 속에 가만히 있었다. 어쩌다 내 시신경은 상당수가 기능을 멈췄을까.

작년 말에 이미 시신경 손상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녹내장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이날 시신경이 죽은 안저 촬영 사진을 다시 보게 되니 마음이 심란했다. 

제대로 몰랐던 녹내장
 
2021년 세계 녹내장 주간을 맞아 7일 오후 남산서울타워가 녹색등으로 점등돼 있다. 2021.3.7
 2021년 세계 녹내장 주간을 맞아 7일 오후 남산서울타워가 녹색등으로 점등돼 있다. 2021.3.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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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내장이 정확히 무슨 병인지 몰랐다. 병명부터가 어렵다. 찾아보니 시력을 잃은 눈동자의 색이 푸르게 보인다 해서 쓴 '녹'에다가, 수정체에 탈이 생겨 무엇으로 가린 것처럼 잘 볼 수 없게 되는 눈병을 가리키는 '내장'을 합쳐 녹내장이라고 한단다(내장이라고 하면 간이나 위 등을 생각하지 누가 눈을 떠올린다고 이름을 이렇게 지었나 모르겠다).

녹내장이 생기는 원인은 눈알 내부에 작용하는 일정한 압력인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을 누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압이 정상(12-20mmHg)이어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 가족력, 기저질환, 고도 근시가 원인일 수 있단다(나를 포함해 우리나라 녹내장 환자의 대부분은 정상안압이라고 한다). 

녹내장 진단을 받은 때는 2020년 11월 초순이었다. 건강검진 결과표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소한 말이 적혀 있었다.
 
안저 검사상 유두함몰이 의심됩니다. 유두함몰은 선천적인 경우도 있으나 녹내장의 소견일 수 있으므로 안과진료를 받으신 적이 없다면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1차 병원 안과 진료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눈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은 처음이었다. 찾아보니 '유두'(optic disk)는 시신경이 안구에 진입하는 곳을 말했다(아프면 찾아볼 것이 참 많다). 여기가 함몰했다니 심각하다 싶어서 동네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더니 녹내장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여러 검사를 마친 후 의사는 "녹내장인 것 같다"라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유두함몰은 뭐고 녹내장은 뭔지, 그리고 여러 검사를 다 해서 내린 결론이면서 왜 또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의사는 모니터 화면에 검사 결과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유두함몰은 녹내장이 진행됐다는 뜻이며, 녹내장은 평생 치료해야 하는 병이라 신중히 진단을 해야 하기에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더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의아했다. 보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친구들은 돋보기나 다초점렌즈를 쓰지만 난 그냥 안경만 쓰고도 글을 읽는 데 불편한 게 없었다. 그러나 몇 차례 서울대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는 동네 안과 의사 말 그대로였다. 내 두 눈은 녹내장이 많이 진행돼 있었다. 다시 말해 시신경이 많이 손상돼 시야가 많이 좁아져 있었다.

의사는 시신경이 더 손상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손상된 시신경은 원상복구가 안 된다면서도 현 수준에서 진행 속도를 늦추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병원에서 안압을 낮추는 점안액을 처방받았다. 내 두 눈의 안압은 검사할 때마다 약간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3.5mmHg로 정상이다. 그런데도 안압을 낮추는 약을 매일 넣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사는 시신경 추가 손상을 막으려면 안압을 더 낮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루 두 번 점안액(일반 안약과 달리 이 약을 넣으면 눈이 순간적으로 맵고 쓰리다)을 넣고 있다. 더는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며.   

혹사당한 눈

지금도 긴가민가하다. 앞서 말했듯이 아무 불편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시야 검사 결과만 보면 난 일부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전방, 상하좌우가 다 보인다. 물론 그것만이 내 세상일 수도 있다. 정상 시야인 사람은 나와는 보는 게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 있다. 아무 불편을 못 느끼는 것. 이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는 것.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다 보니 그때그때 적응해서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이 때문에 뒤늦게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손쓰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가기도 한단다. 다른 병도 그렇지만 녹내장이야말로 예방이 중요하다. 

이럴 때 흔히 그렇듯 왜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나 싶어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럴 때 흔히 그렇듯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현재 상태를 잘 유지할 수만 있어도 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녹내장은 과거에는 노인의 병이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여러 신체 기능의 퇴화와 함께 눈도 퇴화하면서 일어나는 병이었다고. 그러나 요즘은 젊은 녹내장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요인은 스마트폰. 눈 뜨고 있는 내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시신경이 과로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 스마트폰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볼 거면 주변을 밝게 하고 봐야 한다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썼다. 고도 근시다. 잘 안 보이는 눈이 뭔가를 보느라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니 마음이 다 아프다. 비록 일부만 남아있지만 남아있는 시신경에 휴식 시간을 많이 줄 생각이다. 그동안 볼 것 많이 봤으니 이제는 그만 보고 눈을 가만히 감고 있어야겠다. 꼭 보고 싶은 게 있어도 아껴 볼 생각이다.  

돌이켜 보면 난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걸 되찾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왔다. 이제는 이 바보 같은 짓도 그만해야겠다. 있을 때 잘해!  

태그:#녹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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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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