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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군대를 제대하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던 20대 중반, 당시 나는 다소 비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때 내가 사는 곳에 있었던 시립도서관은 그야말로 '만남의 광장'이었다. 다들 전역 후 새로이 인생을 만들어가던 때인지라 도서관에 가게 되면 중고교 동창부터 또래들까지 전부 모여 있었다. 따로 누군가를 찾는다던가 연락을 취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 반갑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 화장실, 휴게실로 가는 복도에서 오랜만에 만나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맞다. 다들 도서관에 나오는 이유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은 복학을 위해, 벌써 졸업을 했거나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거기에 필요한 자격증 혹은 국가고시 공부를 하고있었다.

나? 나는 좀 엉뚱했다. 글을 썼다. 당시 컴퓨터 전원도 못 켜고 타자도 칠 줄 몰랐던 나는 A4용지 묶음을 가지고 다니며 소설 정확히 말하면 무협 소설을 쓰고 있었다. 고교 시절에 재미있게 봤던 김용의 무협 소설이 문제였다. 대학도 중퇴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나는 군대 말년 독서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무협 소설 작가로 성공해보자는 배포(?)를 가지게 됐다. 
 
사람은 제각각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제각각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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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그냥 내가 만들면 됐는데…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친구의 도움으로 금방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고 타자도 15일 정도 열심히 치니까 글 쓰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설프게 게시판에 올린 글을 한 인터넷 업체가 좋게 봐줘서 어느 정도 생활비를 벌면서 연재도 할 수도 있었다. 2쯤 지나자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내게 됐다. 반응도 신인 작가치고 나쁘지 않아 출판사 쪽에서 칭찬도 받았다.

'아, 이게 되는구나' 자신감을 얻는 나는 미래에 대한 밝은 꿈을 꿨다. 하지만 기초도 없이 무작정 무협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라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좀처럼 스토리의 진도를 빼기 힘들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존 틀에 내용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무협 소설은 이른바 공식같은 게 너무 많았다. 배경은 되도록 중원이 되어야 하고 정파를 이끄는 '구파일방(九派一幇)'부터 그들이 쓰는 각종 무공과 옷차림, 주요 행동 양식까지, 공부할 게 넘쳐났다. 무협 소설을 쓰면서도 당시의 난 현실성을 좀 부여하고 싶었다.

천년 전에 죽은 대마두가 부활하고, 장력 한 방에 수십명 병사가 나가떨어지는 등의 당시 유행하던 패턴은 너무 싫었다. 안 되겠다 싶어 배경만 중원이고 내용 자체는 저잣거리 싸움꾼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도 써봤는데 '이것은 무협이 아니잖아?'라는 핀잔만 출판사나 작가 선배들에게 듣기 일쑤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것이 너무 많다.

'어차피 기본은 '픽션'인데 왜 꼭 그렇게 기존 세계관에 맞춰서 쓰려고 아등바등했을까? 전 세계적으로 히트친 어벤져스 시리즈는 기존에 없던 세계관도 붙여서 재창조해내는데…'

현실성을 살리고 싶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러려면 공부를 해서 역사소설을 쓰면 됐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캐릭터인데 엉뚱한 부분에 혼자 발목이 잡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세계관? 색깔에 맞춰 내가 만들었어도 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나만의 세계관을 잘 형성해 놓았다면 제2, 제3의 스토리도 끊임없이 나왔을 공산이 크다.

물론 당시 소설 쓰기를 그만둔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뭔가 그때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 부분을 이제 글과는 관계 없는 입장이 되고나서 깨우쳤다는 게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친구들이 세계관, 세계관 할 때 좀 더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아기들은 어른들의 작은 것도 곧잘 따라한다.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야하는 이유중 하나다.
▲ 애착인형을 메고 돌봐주는 행동을 하고있는 아들 아기들은 어른들의 작은 것도 곧잘 따라한다.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야하는 이유중 하나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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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현실속에서도 무수히 존재한다

최근 세계관은 영화나 소설, 웹툰 등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더 이상 작가들은 기존틀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참고할 것은 참고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세계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해당 작품을 보는 팬층 역시 마니아적인 성향을 가진 케이스가 많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재미만 있으면 알아서 이해하고 알아서 해석까지 해준다.

이러한 세계관은 우리네 현실 속에서도 존재한다. 간혹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과 조금 다르다 생각될 경우 '저 친구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나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얘기를 했는지 속속들이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내 귀에는 '넌 현실적이지 않아. 좀 이상해'라고 들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다. 세계관을 무슨 만화나 영화에서 많이 써서 그렇지 누구나 각자가 바라보고 느끼고 원하는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나. 내가 화가 났던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 본인은 지극히 정상이고 자신과 다른 존재인 나를 이상하게 보는 배려 없는 태도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노총각 일기에 이어 초보아빠 적응기를 써내려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세계관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노총각일기를 쓰던 당시는 총각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봤고, 현재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가진 아빠 입장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사고한다.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는 아동범죄에 대한 분노의 차이(?)다. 총각 시절에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진짜 나쁜 놈이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다. 각종 매체에서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한 이야기를 들으면 총각 때보다 10배는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심한 학대 기사는 차마 끝까지 다 보지도 못할 때도 많다. 아이가 있으니 자꾸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이 되어서 그런 듯 싶다.

인기 웹툰 송곳에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이들은 현재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세계관 자체가 달라져 버린다.

아빠가 된 후 총각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총각 때는 온전히 나의 입장이 대다수였다면 현재는 가족 그리고 주변으로 폭이 많이 넓어졌다. 초보 아빠는 오늘도 배우고 또 배운다. 그리고 더 나은 세계관을 구축해 자라나는 아들이 좋은 세계관을 형성하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

태그:#세계관, #각자의 풍경, #오늘의 기사 제안, #아빠세계관,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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