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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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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으로 정치권 세대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도 없지 않다. 종전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대표가 등장했다고 해서 정당 세대교체가 곧바로 이뤄지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대표 경선이 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언젠가 반드시 오는 것이 세대교체다. 시간의 힘으로 일어나는 세대교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의미의 세대교체 말고, 단기간에 인위적 권력투쟁을 통해 주도 세력의 연령대를 광폭으로 낮추는 세대교체로 한정한다면, 이런 의미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사례는 생각 외로 많지 않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런 의미의 세대교체가 성공한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인위적·자연적 세대교체의 사이, '40대 기수론'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3주 뒤인 1969년 11월 8일 만 42세인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가 느닷없이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이로써 촉발된 40대 기수론은 제1야당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효과는 생각 외로 천천히 나타났다. 김영삼의 도전은 김대중·김영삼·이철승이라는 1920년대 태생의 대권 후보들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1905년 생인 유진산 당수의 철통같은 당권에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했다. 40대 기수론의 제창자인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가 된 것은 유진산 총재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뒤인 1974년 8월 23일이다.

결국에는 신민당 대권뿐 아니라 당권에서도 세대교체가 성사됐지만, 당권 세대교체는 40대 기수론 제창에 더해 유진산의 사망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인위적인 세대교체의 결과인 측면이 컸지만, 자연적인 세대교체의 결과인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40대 돌풍으로 일어난 신민당 세대교체는 당권에는 곧바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짐과 더불어, 훗날 문민정부의 등장 및 평화적 정권교체를 도출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세대교체였다.

물론 신민당 세대교체로 인해 1920년대 생들이 단독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확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김영삼은 12.12 신군부 세력(민자당 민정계)의 힘을 빌려 1992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김대중은 5.16 구군부 세력(김종필과 자민련)의 힘을 빌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신민당 세대교체는 평화적 방식으로 지도부의 연령대를 낮추고 야당의 대여 투쟁력을 높여 민주화 투쟁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한편, 2000년 16대 총선 전에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이 이인영·임종석·우상호·오영식 등을 영입함으로써 본격화된 386세대의 진출은 정치권을 젊게 하는 데는 기여했다. 그렇지만, 인위적인 광폭의 세대교체를 촉발하진 못했다. 이들이 정당 지도부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시간이 흘러서 일어난 일이지, 인위적 세대교체 시도로 일어난 일이라고 평가하긴 힘들다.

인위적인 광폭의 세대교체, 5.16과 12.12

신민당 세대교체에 더해, '확실한' 세대교체의 사례로 들 수 있는 두 사건이 있었다. 대권은 물론이고 당권에서도 즉각적인 세대교체를 이룬 두 사건은 1961년과 1979년에 발생했다. 그런데 이 2건은 모두 다 쿠데타의 결과였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총과 탱크를 들고 위협한 결과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가 얼마나 광폭의 세대교체로 연결됐는지는 연령대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건은 보수세력 지도부는 물론이고 집권세력의 연령대까지 확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5.16 쿠데타 1년 전인 1960년에 4.19 혁명으로 붕괴된 자유당 정권의 이승만 대통령은 만 85세, 이기붕 부통령은 64세였다. 그해에 새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의 윤보선 대통령은 63세, 장면 총리는 61세였다. 4.19 혁명은 '정치세력 간의 교체'는 낳았지만 '세대 간의 교체'는 낳지 못했다.

그에 비해, 1961년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는 44세, 김종필은 35세, 김형욱은 39세였다. 5.16 기획자인 예비역 중령 김종필은 지금의 이준석 대표보다도 1살 적었다. 이들은 1960년 당시의 집권세력이 볼 때 자녀나 조카뻘 정도였다.

1979년 10.26 사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62세였다. 행정부를 이끄는 최규하 총리와 신현확 부총리는 각각 60세, 59세였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공화당)의 유력 대권후보인 김종필은 53세, 의장서리인 박준규는 54세였다. 또 다른 여당인 유신정우회(유정회)의 태완선 의장은 64세, 최영희 원내총무는 58세였다.

그해 12월 12일에 50세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의 주역들은 40대였다. 전두환은 48세, 노태우·정호용은 47세였다. 전두환이 가장 아끼는 장세동은 43세였고, 전두환의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참모들이자 정권장악 플랜의 기획자들인 허화평과 허삼수는 각각 42세, 43세였다.

만약 5.16과 12.12 주역들이 원대 복귀를 했다면, 쿠데타로 인해 집권세력의 연령대가 확 낮아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군복을 벗고 청와대와 정부청사로 들어갔기에, 두 건의 쿠데타가 보수세력 및 집권세력의 인위적인 광폭의 세대교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5.16 군부 집단의 주축은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육군사관학교 단기과정을 졸업한 장교들이었다. 이들은 후배 집단인 전두환의 신군부와 대비돼 흔히 구군부로 불린다. 이들 구군부의 집권과 종말을 가리켜 흔히 '총으로 시작해 총으로 망했다'는 말을 한다.

관점을 달리하면, 구군부는 1961년 세대교체로 흥했다가 1979년 세대교체로 쇠했다고 볼 수 있다. 총으로 시작해 총으로 망했을 뿐 아니라, 세대교체로 시작해 세대교체로 몰락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흥망은 이처럼 세대교체의 역사로도 설명될 수 있는 일이다.

이준석의 세대교체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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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광폭인 두 건의 세대교체는 위와 같이 보수 진영에서 일어났다. 하극상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세력이 민주적·진보적 혹은 민족주의적 정권을 만드는 일이 한국에서는 없었다. 전통적인 수직적 상하 관념에 상대적으로 더 익숙한 보수진영 내에서 젊은 세대가 무기를 들고 연장자를 몰아내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권장할 만한 세대교체 방식이 아니었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12.12 쿠데타에 뿌리를 둔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이를 계승한 민주자유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잇고 있다. 1979년 세대교체에 기원을 둔 정당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은 보수정당 지도부가 2016년 촛불혁명으로 타격을 받고 약화되던 와중에 발생했다. 국민의힘의 입장에서는 이번 일이 이준석의 개인적 성공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힘 주축 세력의 전면적 세대교체로 연결돼야 바람직하다. 이준석이 김영삼식의 세대교체를 시도한다면, 그것이 한국 보수정당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쿠데타에 의한 세대교체가 두 번이나 일어난 정당에서 그런 세대교체가 일어나려면, 당원들과 이준석 대표뿐 아니라 보수적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까지 전폭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세대교체로 두 번이나 흥한 보수정당이 그런 지원을 받으며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의 세대교체를 통해 또 한 번 흥할는지 지켜볼만 하다. 

태그:#이준석 돌풍, #국민의힘 세대교체, #5·16 쿠데타, #12·12 쿠데타, #하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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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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