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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5월, 홀로 사시는 친정엄마가 걱정되어 CCTV를 설치했습니다. 휴대전화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를 볼 수 있어 한동안 설렜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과 죄송함이 커졌습니다. 엄마의 시간들이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무료해 보일 때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농촌의 부모님에겐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TV가 고작, 문화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신문과 책을 읽었습니다. 지역의 중요한 일을 맡아 의미 있는 날들을 보내셨고요. 하지만 엄마는 낮이면 마을회관에서 어울려 놀고, 저녁이면 TV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엄마는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나이가 많아져 시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취미로 뭘 한다는 게 쉽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집안일이 줄어든 데다,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더욱 늘어난 것이고요.

우선 아쉬운 대로 큰 글씨 책을 비롯하여 퍼즐, 숨은그림찾기, 색칠공부처럼 혼자서도 재미를 붙여 해볼 만한 것들을 사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해보지 않던 것들이라서일까요? 뭔가를 새로 하기에는 너무 늙으신 걸까요? 처음엔 재미를 붙이시더니 언젠가부터 책을 잡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그리 오래지 않아 아예 놓고 말았습니다.

최근의 엄마는 TV조차 켜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런 엄마를 보며 조금이라도 젊으셨을 때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소일거리를 왜 만들어드리지 못했을까?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만 것 같아 후회되곤 합니다.

저는 저대로 '엄마처럼 노후를 보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좋을까?'와 같은 생각들로 복잡해지곤 하고요.

물건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삶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책표지.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책표지.
ⓒ 열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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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열매 하나 펴냄)은 부제에 적힌 문구, '씨앗 할머니의 작은 살림 레시피' 때문에 끌렸습니다. 복잡한 생각에 도움이 될 무언가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시아 소수민족이 짠 직물로만 작품 활동'을 한다는 일본의 한 직물작가가 쓴 책입니다. 그의 가족은 30여 년 전인 1998년에 고치현 산꼭대기 다랑이 마을로 귀촌, 현재 작은 과수원과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은 저자가 지난 30여 년간 다랑이 마을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쓴 살림레시피이고요.
 
1월부터 다 자란 브로콜리를 수확하기 시작해서 봄이 될 때까지 매일 먹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몸에 달고 살던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가벼워졌어요. 지금까지 여러 방법을 써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나중에 조사해보니 브로콜리에는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이 있어서 항산화 효소의 생성을 강화하고, 알레르기 증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또한 브로콜리 어린잎에는 브로콜리의 7배에 달하는 설포라판이 함유되어 암 예방이나 간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올해는 브로콜리의 어린잎을 먹으면서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려고 해요. 다시 한번 우리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밭과 부엌이 연결되어 몸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보람되고 설레기까지 하네요. 계속해서 브로콜리 요법의 효능을 체험해 볼 생각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30~31쪽.
 
책은 5부로 나눠져 있으며, 씨앗 뿌리고 가꾸고 수확해 음식을 만들기까지 과정이나 추억, 저자의 생각 등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각각의 음식 레시피를 소개하는데요. 책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네요.

두유요구르트나 생강초절임, 우메보시처럼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이 많습니다. 또 완두콩과 브로콜리, 단무지무처럼 가꿔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고요. 언제 씨를 뿌릴 수 있을까? 생강을 사다 초절임을 해볼까? 계산하거나 알아보느라 바쁩니다. 

사실 전원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들은 종종 출간됩니다. 노후를 자연 가까이에서 보내고자 귀촌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의 이야기가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소개되고요. 그러니 고만고만한 책으로 지레짐작,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좀 지나 구입한 책인데요.

이 책을 '보다 건강하고 멋진 노후를 위해 50살부터 읽으면 좋을 책'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이제까지 접했던 전원생활 관련 이야기들과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30대 중반에 산꼭대기 마을로 이주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최소한의 것만 가지거나 누리는 단출한 삶', 그리고 '물건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쓰레기를 덜 만들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은 가급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필요한 만큼만 심어 가꾼다고 하네요. 대신 보다 다양한 작물이나 식재료를 얻을 수 있는 나무들을 가꿔 자급자족률을 높인다고요. 무엇이든 심고 가꿔본 사람들은 잘 알 겁니다. 식물 하나가 우주 하나라는 것을. 같은 식물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그러니 다양한 것들을 심고 가꾸는 만큼 그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기쁨과 행복도 커지겠지요.
 
저자가 바람직하며 아름다운 삶의 방식으로 지향하며 실천한다는 것 중 하나는 자신에게 필요한 간단한 생활용품들은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이다. 속옷, 수세미, 걸레, 냄비잡이, 앞치마, 벌레쫕는 약 등의 생활용품 레시피들도 실려 있다. 습관들이면 도무지 무료할 시간이 없겠다.
 저자가 바람직하며 아름다운 삶의 방식으로 지향하며 실천한다는 것 중 하나는 자신에게 필요한 간단한 생활용품들은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이다. 속옷, 수세미, 걸레, 냄비잡이, 앞치마, 벌레쫕는 약 등의 생활용품 레시피들도 실려 있다. 습관들이면 도무지 무료할 시간이 없겠다.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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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백 가지 일을 해낸다고 하여 백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밭을 일구고 매실을 따거나 잼을 담그고 옷을 지으며 바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바지런한 사람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튼튼합니다. 움직이니까 더 건강해지는 것이겠지요. 몸은 바지런히 놀리지 않으면 녹슬어 버리니까요.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214쪽.

책을 읽으며 생각하곤 했습니다. 올해로 86세인 엄마는 대부분의 농촌 여성들이 그렇듯 농부 아내이자 농부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누구보다 고단한 워킹맘의 삶이었습니다. 이런 엄마에게 농사는 고단한 노동일 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편안한 노후를 위해 아예 그 일을 손에서 놔야만 했을 겁니다. 평생 해온 일이라 어떤 일보다 훤히 꿰고 있을 것인데도 말이지요.

우리 형제 모두 가정을 이루며 삶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을 때, 노후를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로 농사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면 지금쯤의 엄마는 훨씬 즐거운 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고향 집에 커다란 꽃밭이 있습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선화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꽃들이 가을까지 피고 집니다. 해마다 여름쯤 알뿌리를 캐뒀다가 가을에 심어야 봄에 꽃을 볼 수 있는 튤립도 있답니다. 꽃밭은 오래전부터 엄마 몫입니다. 지난 몇 년 엄마의 목소리에서 생기가 가장 많이 느껴질 때는 튤립이 싹을 틔울 때부터 꽃이 활짝 폈을 때였으니까요.

엄마의 최근 모습은 일손을 놓은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책 마지막 장에는 건강하며 다채로운 삶을 위해 우리 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고민들과, 습관을 들이면 노후에도 도움될만한 것들에 대한 울림 큰 단상과 제안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 씨앗 할머니의 작은 살림 레시피

하야카와 유미 (지은이), 류순미 (옮긴이), 열매하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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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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