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로 옆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집의 구조, 살림살이의 위치, 장보기, 색다른 소음, 생판 모르는 이웃 등등 많은 게 어색하다. 이사한 후 힘이 쑤욱 빠져서 자꾸 눕고만 싶었다. 

옆지기가 주말에 이것저것 다양한 김치를 담가 김치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이때 비로소 나의 몸과 마음도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김치가 나의 지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일까. 

1박2일 동안 김치를 담근 옆지기

이사 바로 전에 옆지기는 김치 냉장고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사한 곳의 엘리베이터 공사로 배송이 점점 미루어졌다. 드디어 지난주 토요일 배송! 그는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야채가게로 달려갔다. 얼마 후 산더미 같은 짐을 안고 돌아왔다. 오이 2꾸러미, 열무 3단, 얼갈이 1단, 쪽파 2단, 부추 1단, 깻잎, 양파, 소금, 고춧가루, 마늘... 김장이라도 하려나. 

오이 100개, 하나하나 씻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품이 들겠다. 흙도 없고 깨끗하니 씻지 말고 절이라고 귀띔했다. "그럼 그럴까?" 그도 좋아했다. 어느 세월에 씻나 싶었던 모양이다. 꼭지 따고 2등분하는 작업 100번, 십자 모양을 위한 칼질 400번.
 
그가 오이를 두 꾸러미나 사와서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가 오이를 두 꾸러미나 사와서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 박미연

관련사진보기

 
그는 저녁을 먹은 후 소금물을 끓였다. 끓는 소금물로 오이를 절이면 곯지 않고 오랫동안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나. 그 과정에서 소금물이 그의 손가락에 튄다. 앗, 뜨거워! 찬물에 손가락을 적신 후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잘 모른다. 내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밤 12시까지 만들었다며 오이소박이 통을 열어 보인다. 가지런히 담아놓은 것이 일단 비주얼은 만점! 맛은 조금 짭쪼름하다. 점심 때 밥이랑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어느새 오이소박이는 밥도둑으로 변해있었다. 

제 2라운드! 일요일 느지막한 오후 그는 열무김치 담기에 돌입했다. 얼마 전 열무 김치를 만들 때 밭에서 뽑아온 열무는 흙이 많이 묻어 있었다. 그는 흙을 털어낸다고 열무를 물에 푹 담가놓았었다. 그리고 여러번 헹구었다고 하는데... 열무 김치에서 흙과 돌이 씹히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지난번 실패로 이번 열무는 흙이 없는데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는다. 

그는 취향껏 25cm 정도 되는 열무를 통째로 절인다. 양파, 마늘, 고춧가루, 찹쌀풀, 멸치액젓, 까나리액젓으로 양념을 만들어 열무를 버무린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파김치, 깻잎 김치... 뒷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 30분! 이틀에 걸친 옆지기의 고된 노동으로 우리 집 김치 냉장고는 배송이 오자마자 배가 부르다.

월요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깻잎 김치를 감탄하며 먹는다. 우리는 다 조금 짜다고 하는데, 그는 하나도 안 짜다고 한다. 김치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친다.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다듬고 씻고 자르고 버무리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 다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의 수고를 알기에 나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자랑질도 열심히 한다. 
 
그가 만든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깻잎김치, 파김치..이사로 지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가 만든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깻잎김치, 파김치..이사로 지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 박미연

관련사진보기

 
그도 나의 가사노동에 대해 고마워할까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든다. 내가 그의 가사노동에 감탄하는 만큼, 그도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가. 그가 요리를 하면 대단한 것이 되고, 내가 요리를 하면 당연한 것이 되는 이 요상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내 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사회 문화적으로 남성의 가사 무능력은 권장 사항이지만, 여성의 가사 무능력은 혐오 대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는 가사 노동이 면제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부엌에서 요리하지 않아도 특별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엄마, 형수, 아내, 누나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드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아왔다. 

애너벨 크랩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그의 가사 무능력은 사회문화적으로 이미 허용된 것이요, 기대된 것이요, 권장된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가사노동에 젬병이 아닌 그를 보고 매번 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여자들의 가사 무능력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가사가 여자들의 일로 규정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이 본능적으로 가사 노동에 적합한 것처럼 회자된다. 그러니 칭찬과 감사는 여성의 집안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가사 노동에 대해 성별에 따라 들이대는 잣대가 이렇게 다르다. 잣대가 다르니 똑같은 노동을 해도 보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칭찬을 받으며 자존감이 높아지는데, 그녀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어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럴 바에야 그가 요리하는 쪽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그는 점점 더 대단해지고, 그녀는 요리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옆지기가 다음 주말에는 배추 김치를 담가보겠단다. 지난번에 그가 만든 배추 김치는 절여지지 않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이것이 과연 김치가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짜지 않고 맛있었다. 배추도 그의 편이다. 그가 배추김치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이렇게 차고도 넘친다. 벌써부터 그의 배추김치를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