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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에 문을 여는 우당 기념식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도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이날 윤 전총장의 일정은 퇴임이후의 첫 공개 행보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에 문을 여는 우당 기념식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도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이날 윤 전총장의 일정은 퇴임이후의 첫 공개 행보이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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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자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윤석열식 정치'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기념촬영, 의미 있는 장소 답사에 더해, 스피커 역할을 해줄 '대변인'까지 갖췄다.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이상록 전 <동아일보> 법조팀장을 영입해 투톱 대변인 체제를 꾸렸다.

대변인은 다수로 구성된 조직체에 어울린다. 하지만, 개인이 공식 대변인을 두는 게 자연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 전직 대통령들처럼 최고위직을 지내고 은퇴한 경우, 활발한 사회적 접촉이 필요한데도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거동하기 힘들거나 언어소통이 어려운 경우, 거대한 재산을 갖고 있어서 다수의 이해관계인들을 상대해야 할 경우엔 개인일지라도 공식 대변인을 두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움직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위와 같은 사례에 딱히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분신들을 내세워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있다. 윤석열의 메시지가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를 보면, 대부분 주어가 '윤석열 측'이다.

윤석열 측

그런 와중에 윤석열 전 총장이 대변인을 통해 표현한 메시지가 있다. '압도적 정권교체'에 대한 의지가 바로 그것.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동훈 대변인은 윤석열이 '압도적 정권교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동훈 대변인은 "윤 전 총장께서 생각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탈진보 세대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 "왜 그러냐 하면, 지금 국민의힘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내년에 대선에서 민주당을 압도해야지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대선 승리가 아닌 민주당을 압도하는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압도적 정권교체'라는 표현은 이동훈 대변인 자신이 윤석열의 생각을 정리해서 만든 개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의 생각을 대변인으로서는 '압도적 정권교체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은데"라고 전제한 뒤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아울러 승리해야지 이게 집권 이후에 안정적 국정운영까지 도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죠"라고 말했다. 2022년 대선 승리뿐 아니라 2027년까지의 안정적 국정 운영까지 계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월 15일 김대중도서관 방문에서 보이는 '압도적 정권교체' 구상
 
지난 1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를 만나 김대중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지난 1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를 만나 김대중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윤석열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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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지지층뿐 아니라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층에까지 광범위한 흐름을 일으켜 이들을 하나의 큰 텐트에 모으겠다는 윤석열 측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 지난 11일 김대중도서관 방문이 그 사례다. 

지난 11일 그는 서울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을 약 4시간 동안 방문했다. 이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로부터 김대중의 삶과 정책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도서관 방명록에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문구만 놓고 보면 그가 주목하는 가치가 정보화나 인권인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그가 얻고자 했던 효과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은 6월 15일이다. 6월 15일 자 언론 보도에 나온 윤석열의 김대중도서관 방문 사진들도 윤석열 측이 제공한 것이다. 방문 사실을 언론에 알린 것도 윤석열 측이다.

이는 김대중도서관 방문 사실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주역 김대중과 연관돼 함께 다뤄지길 바라는 의중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6.15 선언을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 진영까지 아우르겠다는 다짐을 반영하는 답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디테일을 보면 다소 부족한 점이 보인다. <김대중 자서전> 제2권에 따르면 김대중은 '6.15 선언을 계기로 불신과 대결을 제거하고 상호 신뢰와 평화 공존의 기틀을 다지자'고 했다. 또 6월을 6.25의 달(비극의 달)이 아닌 6.15의 달(희망의 달)로 만들자고 했다. 이 책에서 2000년 6월 14일과 15일을 설명하는 대목의 소제목은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이다.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쓰고 6월을 전혀 다른 달로 바꾸는 새 지평선 같은 선언이 나왔기에 그런 소제목을 붙인 것이다.

김대중도서관 방문을 6월 15일에 공개한다는 것은 앞으로 6.15 정신에 맞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어야 자연스럽다. 단순히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를 깊이 새기겠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과 북이 상호 신뢰하고 평화 공존하는 길을 만들고자 했던 김대중 정신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맥락이 맞는다. 

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의 대북관은 어땠는지 
 
2019년 7월 8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했을 당시 모습.
 2019년 7월 8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했을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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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석열이 정말로 6.15 정신을 실천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례가 있다.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있었던 2019년 7월, 그의 보수적 안보관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는 점을 복기해보자.

그달 5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서면답변서에서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주적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부르는 인사들이 남북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해 왔는지, 아니면 상호 신뢰와 평화공존을 조성해 왔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적'도 아닌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남북정상회담의 해인 2018년을 경험한 대한민국 공직자 후보에겐 그닥 어울리는 발언이 아니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에 관해 김창수 전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이 2001년 <황해문화> 제31호에 기고한 '주적 개념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이렇게 말한다. ​
 
주적이란 정확한 개념 정의도 없고, 학문적으로 검증된 개념도 아니며, 국민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친 개념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어느 나라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중략)… 미국·일본·호주·캐나다·중국과 같이 현재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주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를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적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 현실이다.
 
2019년 서면답변에서 윤석열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 폐지 문제에 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결정을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합헌결정을 언급하는 것으로써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역시 대북관계에서만큼은 보수적이거나 혹은 좀 더 오른쪽에 있어 보인다.

그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서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헌재(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북한 주적론 및 국보법 제7조 합헌론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국민은 직접 들어야겠다

2019년 '북한은 주적'으로 압축되는 대북관을 보여준 윤석열과 2021년 6.15 선언에 맞춰 김대중도서관 방문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윤석열은 차이가 있는 걸까? 2년 사이에 압도적인 인식 교체가 있었을까? 아니면 2019년의 윤석열과 2021년의 윤석열 중 어느 하나는 진짜가 아닌 걸까? 그래서 윤석열은 6.15 선언을 어떻게 평가할까? 북한은 여전히 주적일까? 국가보안법은 존재해야 하나?

사실 이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 본인의 직접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도서관 방문 사례 말고도 각종 현안이나 국민의힘 입당 시기 등에 대한 '윤석열의 생각' 역시 대변인이라는 창구 혹은 윤석열이 선택한 언론 지면을 통해서만 나오기 때문에 명징하게 알 길이 없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17일 오전 윤석열 측은 "<윤석역 총장 워딩> - 내 갈길만 가겠다. 내 할 일만 하겠다. 여야의 협공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김진욱 공수처장의 취임 첫 기자회견 날이다. 김 처장은 윤석열 고발사건 수사와 관련해 "아직 본격적으로 수사 착수를 하지 않은 상태"라며 "선거에 영향이 없도록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대변인 체제까지 갖춘 사실상의 정치인이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곤란하다. 대중이 자신의 생각을 추론하도록 유도하는 모양새라 더욱 그렇다.

태그:#윤석열, #압도적 정권교체, #2022년 대선, #김대중도서관, #6·15 남북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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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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