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 커넥트픽쳐스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조차 내내 울컥했다. 함께 봤던 여선생님 한 분은 아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 역시 연신 눈에 손이 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이 사람을 품고 서로 사랑한다는 건, 인종과 국적, 나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쩌면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미 감독의 2018년 작품 <폴란드로 간 아이들> 이야기다. 통일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나날이 사그라드는 현실을 보다못해 시작한 교내 통일 영상제의 세 번째 영화다. 1편은 북한에서 직접 제작한 영화였고, 2편은 6.25 전쟁 당시 정치적 망명을 택한 북한 청년들의 삶과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이었다. 

앞선 두 편은 '실패'했다. 웬 뜬금없는 북한 관련 영화냐며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통일 관련 영화는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이 생겨버렸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는 '인내력 테스트'라며 조롱을 해댔다. 요즘 아이들은 호흡이 긴 영화라면 질색한다.

물론, 상영 시간이 수업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때라 아이들의 눈꺼풀은 시작하기도 전에 천근만근이다. 더욱이 자극적인 유튜브에 길들어진 탓에, 웬만큼 재미있지 않고서는 그들을 깨울 수가 없다. 통일 동아리 회원이거나, 자발적으로 신청한 아이들인데도 그렇다. 

이번만큼은 달랐다. 똑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였지만, 아이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낯설어하진 않았지만, 영화 속 내용 하나하나가 생전 처음 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현대사를 가르쳐온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6.25 전쟁에 대해선 아이들 모두 '전문가'다. 수능과 모의고사에 단골 문제이며, 부러 물어보면 교과서 외에도 6.25 전쟁과 관련된 책 한두 권쯤은 대부분 읽었다고 답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국제시장> <고지전> <인천상륙작전> <장사리> 등 관련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아이가 드물 정도다. 

그들은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줄줄 읊는다. 한강 철교가 폭파됐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고, 인천상륙작전 후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함양과 거창 등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고, 심지어 임시 수도 부산에서 정치 파동이 일어났다는 것까지도 아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6.25 전쟁은 아이들에게 '필수 교양'이다. 

교사인 나도 미처 몰랐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 커넥트픽쳐스

관련사진보기

 
"6.25 전쟁 중에 수천수만의 전쟁고아들이 동유럽 나라들로 갔다고요?"

아이들은 죄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전쟁고아의 숫자에 놀랐고, 와중에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 보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했다. 당시 동유럽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로 폐허가 된 곳인데, 그 많은 전쟁고아를 수용할 여력이 없었을 거라는 이유도 댔다. 

고백하건대, 교사인 나도 미처 몰랐다.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참혹한 전쟁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그만큼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으리라는 당연한 귀결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저 어디에선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으면서 견뎌냈을 거라고 여겼을 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폴란드에만도 1500여 명의 아이들이 보내졌다고 한다. 당시 전후 복구 중이었던 폴란드의 상황은 전쟁 중이었던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었다. 알다시피, 10여 년 전인 1939년 독일 나치의 바르샤바 폭격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을 알리는 신호탄 아니었나.

이후 수도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전역은 일순간 폐허로 변했다. 교전 중 전사자가 속출했고, 유대인 등 민간인 집단 학살까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 치를 떠는 유대인 학살의 현장 오시비엥침(독일명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폴란드에 자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44년 독일 나치의 패망 직전에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도 폴란드를 미소 냉전의 희생 제물로 만들어버렸다. 폴란드 영토를 차지하려던 소련군은 나치의 무력 진압을 의도적으로 수수방관하며 봉기군을 와해시켰다. 나치의 힘을 빌려 폴란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폴란드에 공산주의 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불과 6년 만에 이름조차 생소한 남의 나라 전쟁고아 수천 명을 건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공산주의 형제국'이라는 명분도 전후 복구 과정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 속에서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전쟁고아에 대한 폴란드인의 환대를 단지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설명하는 건 게으른 분석이다. 

아이들은 묻고 또 물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 커넥트픽쳐스

관련사진보기

 
"휴머니즘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영화를 본 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의심하게 됐어요."

아이들의 한결같은 감상평이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문해봤다고 한다. 남의 나라 전쟁고아를 자기 자식처럼 품어준 저들의 성품이 남다른 건지, 아니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인류애가 발휘되는 건지를. 또, 자신에게 맡겨졌다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지를. 

숱한 폭격과 죽음을 겪었던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낸 위대한 사랑은 삭막한 아이들의 가슴을 덥히기에 충분했다. 당시 전쟁고아들에게 마마(엄마), 파파(아빠)로 불렸던 폴란드 선생님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아이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이들은 폴란드에 간 전쟁고아 중에 38선 북쪽이 아닌 이남에서 태어난 경우가 절반이라고 밝힌 부분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남침 후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된 이들이 전사한 뒤 남겨진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냐며 놀라워했다. 그들의 존재를 우리 정부는 왜 몰랐는지 묻고 또 물었다. 

"전쟁을 겪으며 남과 북이 모두 잿더미가 됐잖아요. 전쟁 통에 북에서는 전쟁고아들을 적어도 다른 나라에 위탁하려는 노력이라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다니 황당해요. 정작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우리 정부의 무관심과 매정함만 탓하진 않았다. 북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어느덧 한 가족이 된 폴란드 선생님과 아이들을, 8년 만에 북으로 강제 송환한 김일성의 지시는 야만적이라고까지 했다. 당시 북에서는 오로지 노동력으로 생산 증대를 꾀하는 '천리마 운동'이 한창이었다. 동유럽에 보내진 10대 아이들의 노동력까지 동원하려 했던 거다. 

가족과 함께 보면 더 좋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나오는 추상미 감독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나오는 추상미 감독
ⓒ 커넥트픽쳐스

관련사진보기

 
한 아이는 교과서에 적혀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개 과정만 외우는 거라면 수험 준비일 뿐 역사 공부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어쩌면 전쟁고아 문제야말로 6.25 전쟁이 다루어야 할 핵심 주제가 아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6.25 전쟁 71주년을 맞아 간단하게나마 계기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으로 대체할 생각이다. 인종과 국적, 나이를 초월한 헌신과 사랑을 담고 있어, 가족과 함께 보면 더 좋을 영화다. 

사실 계기 수업을 하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데 있다. 가슴 아픈 역사라면 상처의 치유와 해결을 위한 작은 노력일 수 있다. 그런데, 6.25 전쟁과 동유럽에 보내진 전쟁고아처럼 정작 상흔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끝으로, 영화를 매개로 감춰진 역사를 찾아내 보여준 추상미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올해 6월 25일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림과 동시에 지워진 전쟁고아에 대해 기억하는 뜻깊은 기념일이 될 것 같다. 영화 한 편이 통일 교육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셈이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