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30 13:21최종 업데이트 21.06.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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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의 차원을 넘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단계에 진입해 있다. 소녀상이 표상하는 의미는 한두 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서 있다.
 
그래서 소녀상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경계심과 방해 활동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쿄에서 자동차도로로 서남쪽 2시간 반 거리인 나고야에서 7월 6일부터 11일까지 열릴 소녀상 전시 행사에 대해서도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소녀상 전시에 맞선 극우 전시회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나고야시 문화진흥사업단이 관리하는 건물에서 이 기간에 행사를 열고자 하는 시민단체는 '표현의 부자유전·그후를 잇는 아이치 모임'이다. 이들은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그후'라는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맞서 극우세력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9~11일 사이에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전시회를 연다. 소녀상 전시회를 훼방 놓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019년 8월 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당시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는 개막 사흘 만에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 ⓒ 연합뉴스

 
이 극우세력은 작년에도 비슷한 행사를 열었다. 위안부 피해자 시설인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을 '나눔의 돈'으로 표기한 전시물과 "성매매는 일(work)"이라는 현수막이 묘사된 그림 등이 이들의 전시회에 등장했다. 이들은 위안부는 성노예로 착취된 게 아니라 성매매를 한 것이며 성매매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매매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냈던 것이다.
 
도쿄와 본토 남단의 중간쯤인 오사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소녀상 등을 전시하는 '표현의 부자유전-간사이전'이 7월 16~18일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전시장 측이 '항의가 쇄도해 이용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사용 승인을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이처럼 소녀상 훼방 활동에 나서는 극우들 중에는 "소녀상은 매춘부상이다"라고 말하는 사쿠라이 마코토(桜井誠) 일본제일당 당수 같은 남성들도 있지만, 스키타 미오(杉田水脈)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나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 나데시코액션 대표 같은 여성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극우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나데시코액션(なでしこアクション)은 '일본여성 행동'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체다. 나데시코는 패랭이꽃도 뜻하지만 '일본 여성'도 뜻한다.
 
나데시코액션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가는,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4월 24일에 영상 편지를 보낸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상 편지를 들어보면, 문제적 위안부 논문을 작성한 램지어 교수가 이 단체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데시코액션 홈페이지(http://nadesiko-action.org)에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일본법학 교수의 2021년 4월 24일자 영상 편지(Video Message from John Mark Ramseyer,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 at Harvard Law School / APRIL 24, 2021)'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에서 램지어는 자신이 금년에 받은 국제적 비판과 관련해 "이는 단순히 개별 교육자에 대한 괴롭힘의 문제가 아니다(This is not a simple matter of the harassment of an individual educator)"라며 "훨씬 더 깊이 뿌리박힌 문제"라고 자평했다. 그는 "내가 참고한 자료의 대다수는 한국인들의 반일 편견 때문에 손상됐다(The majority of the material I consulted was marred by Korean anti-Japanese bias)"는 말로써 자신과 나데시코액션의 공동의 적인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을 거론했다. 그런 뒤 '일본 친구들'의 격려에 사의를 표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폭풍 같은 공격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친구들, 일본 친구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램지어가 이렇게까지 비장한 태도로 나데시코액션에 감사를 표시한 것은 이 방면에서 일본 여성들의 활약이 상당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이 위안부 운동을 주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일본 여성들도 그들 나름의 '위안부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쟁범죄와 관련한 극우 목소리를 내는 일본 여성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애국여성' 혹은 '애국여자'가 그것이다. 스키타 미오나 야마모토 유미코도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도쿄에서 열린 일본 극우의 시위 사진. "조선인은 몰살"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 퍼블릭 도메인

 
역사수정주의로 무장한 '애국여자'의 등장

2018년에 <역사비평> 제123호에 실린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의 논문 '현대 일본의 애국여성과 반(反)위안부 활동'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대 일본 여성의 인식이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젊은 여성들이 거리와 인터넷상에서 소리 높여 애국을 외치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면서, 이들을 '애국여자'라고 지칭하게 되었고 '애국여성'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애국여자 혹은 애국여성은 이전에 여성운동을 벌인 인물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전후(戰後) 일본에서 이른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은 주로 페미니즘을 비롯한 진보적인 시민운동에 속해 있던 반면, 대체로 보수적인 인식을 가진 주부나 직장여성들은 굳이 거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국제정치나 역사 문제와 같은 이슈, 혹은 애국과 보수 같은 주장들이라면 더더욱 여성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광범위한 분야의 여성들이 극우 혹은 보수 목소리를 내면서 거리로 혹은 인터넷으로 몰려나오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가 양국 정부 차원을 넘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국여성들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가 위안부 및 소녀상 문제다. 2019년 7월에 개봉된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영화 <주전장>에도 소개된 것처럼, 애국여성 스키타 미오는 "자칭 위안부라는 할머니들의 증언밖에 없어요"라는 말로써 피해자들의 신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물증을 보여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소녀상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배후의 중국입니다"라며 "돈을 대고 있는 것도 중국이죠"라고 말한다. 소녀상 운동 배후에 중국 자본이 있으며, 일본 산업을 꺾기 위한 중국 자본의 음모가 소녀상 건립을 추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키타 미오. <주전장> 스틸컷. ⓒ 노맨 프로덕션

 
스키타 미오 같은 애국여성들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 문제의 전면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보수·극우세력도 그런 판단 하에 이들을 지지한다. "남성이 나설 경우, 또 다른 가해로 여겨지기 쉽다", "위안부 문제의 성격상 여성이 발신하는 편이 좋은 인상을 주고, 따라서 설득력도 높아진다"는 등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위 논문은 분석한다.
 
이들 애국여성들이 소녀상 건립을 저지하거나 철거하는 활동을 벌일 때에 명분으로 내세우는 논리가 있다. 이민자가 많은 미국과 호주 등에 소녀상이 세워지면 한·중·일 이민자들 사이에 분열이 조장된다, 이런 소녀상이 일본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낳을 수 있다, 등등의 논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동기만으로 소녀상 훼방 활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역사관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이들은 '역사 수정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미 정설로 굳어진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극우적 역사관이 이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로 무장한 애국여성들이 위안부 범죄를 부인하고 소녀상 활동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들의 목표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데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소녀상을 지키는 연대 활동이 한층 더 강력해질 필요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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